2022년 1월 11일 오후 2시, 서울행정법원에 가서 재판장의 판결 선고를 들었다. 2019년 11월 18일 소장을 접수했으니 무려 26개월 만에 판결이 선고되는 것이었다. 재판장은 ‘대검찰청의 특수활동비, 특정업무경비, 업무추진비 집행내역과 지출증빙서류는 모두 공개하고, 서울중앙지검의 경우에는 일부 개인식별정보만 제외하고 모두 공개하라’는 판결을 내렸다.
‘검찰 예산에 대한 최초의 정보공개 소송’이라고 검찰 스스로가 밝힌 사건에서 원고 승소 판결이 내려진 것이다. 가슴이 벅찬 순간이었다.
특활비 등 공개는 검찰 민주화를 위해 반드시 필요
특수활동비, 특정업무경비, 업무추진비의 공개는 검찰 민주화에 결정적인 기여를 하게 될 것이다. 검찰을 특권적인 권력 집단에서 ‘보통의 행정기관’으로 만드는 계기가 될 것이고, 검찰도 국민의 감시와 통제를 받아야 하는 기관이라는 것을 확인하는 의미가 클 것이기 때문이다.
그동안 검찰은 막대한 국민 세금을 쓰면서도 관련 정보를 국회의원에게도 공개하지 않아 왔다. 이번에 소송 대상이 된 대검찰청 특수활동비의 규모만 하더라도 2017년 160억, 2018년 127억, 2019년 10월까지 83억 원에 달하는 어마어마한 규모다. 2020년 11월 검찰의 특수활동비 오·남용 논란이 일자,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위원들이 대검찰청에 직접 가서 특수활동비를 검증하겠다고 하는데도, 검찰은 제대로 된 자료를 내놓지 않았다.
또한 특수활동비는 검찰 조직 내부에서도 전혀 투명성이 보장되지 않는 예산이었다. 이번 소송 과정에서 대검찰청 공판 담당 검사는 ‘대검찰청 안에서도 검찰총장과 극소수의 담당자만이 아는 보안 사항’이라면서 '자신도 서류를 본 적이 없다'고 실토했을 정도다.
이렇게 불투명하게 사용되는 특수활동비이니, 그동안 이 예산이 제대로 사용됐을 리 없다. 그래서 과거에 검찰총장, 서울중앙지검장 등이 돌린 돈 봉투의 출처가 특수활동비라는 것이 드러나서 논란이 되기도 했던 것이다.
수사·감사 등의 과정에서 사용할 수 있는 또 다른 예산 항목인 특정업무경비도 마찬가지이다. 대검찰청에서 사용하는 특정업무경비는 2017년 31억, 2018년 31억, 2019년 10월까지 25억 원에 달한다. 그런데 검찰의 특정업무경비도 어떻게 사용되는지 한 번도 드러난 적이 없었던 것이다.
또한, 다른 기관들은 대부분 공개하고 있는 업무추진비 지출증빙서류(영수증)를 유독 검찰만 공개하지 않는 것도 이상한 일이다. 이처럼 국민 세금을 쓰면서도 자료를 공개하지 않는 행태는 ‘검찰이 스스로를 특권 집단으로 생각한다’는 것을 잘 보여주는 것이다. 이런 생각을 반드시 깨야만 한다.
검찰은 시간끌기를 멈춰야
문제는 시간이다. 이번 소송에서 검찰은 소송을 늦추기 위해 온갖 방법을 다 써 왔다. 지난해 3월, 윤석열 전 검찰총장이 사퇴하자 ‘검찰총장이 공백이어서 변론기일을 연기해달라’고 했고, 지난해 7월, 검찰 인사발령이 나자 ‘담당 부장검사가 바뀌어서 변론기일을 연기해달라’고 했다. 심지어 재판 마지막에는 '담당 공익법무관의 다른 재판 일정과 겹쳤다면서 변론기일을 연기해달라'고 요구했다.
그러다 보니, 통상적인 정보공개 관련 행정소송 1심이 1년 남짓이면 끝나는 것에 비해, 두 배 이상의 시간이 걸렸다. 이제 남은 것은 검찰의 항소 여부이다.
재판부, "공개해도 수사에 지장 없어"
검찰이 항소한다면, 그것 역시 시간끌기일 뿐이다. 1심 재판부는 검찰의 주장을 전혀 받아들이지 않았다. 검찰은 특수활동비 관련 자료가 ‘부존재’하다고 주장했지만, 재판부는 특수활동비 관련 자료는 존재할 수밖에 없다고 인정했다. 또한 검찰은 자료가 공개되면 수사에 지장할 초래한다고 주장했지만, 1심 재판부는 ‘정보가 공개된다고 해서 향후 수사업무의 공정하고 효율적인 수행에 직접적이고 구체적으로 지장을 초래할 고도의 개연성이 있다고 볼 수 없다’고 판단했다.
그렇다면 검찰이 항소해본들, 결론이 바뀔 가능성은 거의 없다. 그저 시간을 끄는 것일 뿐이다. 지금 검찰 수뇌부는 항소를 포기하고 국민의 알권리를 위해 자료를 공개하는 결단을 내려야 한다. 그것이 그동안 국민 세금을 불투명하게 사용해 왔던 관행에서 벗어나는 길이고, 국민 앞에 과거의 잘못을 사죄하는 길이다.
국회도 항소 포기하고 공개한 전례 있어
2018년 뉴스타파와 3개 시민단체(세금도둑잡아라, 투명사회를 위한 정보공개센터, 좋은예산센터)가 협업해 국회에서 사용하는 입법 및 정책개발비, 특수활동비, 특정업무경비, 업무추진비 등의 예산을 감시할 때에도, 연이어 정보를 공개하라는 법원의 판결이 나오자, 국회는 항소를 포기하고 정보를 공개하는 쪽으로 방향을 선회했다.
검찰은 이런 국회의 선례를 참고해야 한다. 본인들이 국민 세금을 제대로 썼다면, 공개 못할 이유가 없을 것이다. 만약 국민 세금을 잘못 써 왔다면, 앞으로 제대로 쓰기 위해서라도 정보를 공개하는 것이 옳다.
그런데도 검찰이 항소한다면, ‘지금까지 국민 세금을 엉터리로 써 왔고, 앞으로도 엉터리로 쓰겠다’는 얘기밖에 안 된다. 검찰은 더 이상 시간 끌지 말고 항소를 포기하고, 정보를 투명하게 공개하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