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에서] 의혹 기각하고도 “기각” 말 못한 ‘홍길동 사참위’의 마지막 책무

2022년 06월 10일 14시 48분

▲ 사참위 조사결과 발표 기자간담회 현장

“세월호 침몰 원인 못 찾은 것이 결론”

지난 6월 9일 사회적참사특별조사위원회(사참위)는 조사 종료를 하루 앞두고 조사결과 보고 기자간담회를 열었습니다. 기자들의 질문은 세월호 침몰 원인에 대한 사참위의 정확한 결론이 무엇이냐는 데에 집중됐습니다. 이틀 전 대다수 매체들이 “‘외력 가능성 확인’과 ‘외력 가능성 낮음’이라는 두 개의 결론이 모두 보고서에 담긴다”고 보도한 반면, 한겨레만이 “외력 가능성이 낮다고 결론 내렸다”고 엇갈리게 보도한 상황이었기 때문입니다. 
이에 대해 문호승 위원장은 “두 개의 결론이 나왔다는 것은 오해”라면서 조사위원 6명이 보고서에 쓰기로 합의한 두 개의 문장을 읽어 줬습니다. “외력 가능성도 있지만 다른 가능성을 배제할 정도에는 이르지 못하였다”, 그리고 “외력 가능성을 조사했으나 외력이 침몰 원인인지 확인되지 않았다”였습니다. 
앞의 문장은 조사국의 세부 조사 내용들(좌현 핀안정기 과회전 원인, 선체 좌현 외판 손상 원인, 화물칸 차량 블랙박스 녹음 소음 분석 등)에 대한 ‘소결’을 쓸 때 사용하는 문장입니다. 이를테면, “선체 좌현 외판의 손상은 외력 때문일 가능성도 있지만 인양이나 직립 과정에서 발생했을 가능성을 배제할 정도에는 이르지 못하였다”는 식으로 쓴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런 ‘소결’들을 묶어 조사위원들이 판단한 종합 결론에는 뒤의 문장을 쓰기로 했습니다. 문 위원장은 “두 문장이 상반되는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고 덧붙였습니다. 
그럼에도 기자들의 질문은 계속됐습니다. ‘외력 가능성도 있지만’이라는 표현은 외력설 측에, ‘외력이 침몰 원인인지 확인되지 않았다’는 표현은 내인설 측에 유리하게 읽힐 수 있는 게 아니냐, ‘다른 가능성’이란 구체적으로 무엇이냐는 등의 질문이 이어졌습니다.
문 위원장은 “조사관들이 외력에 대해 치열하게 조사를 벌여 간접적 증거와 정황들은 찾았지만 명확한 직접적인 증거는 발견하지 못했다”면서 “확보된 증거가 불충분한데 무리해서 명확한 결론을 내리면 많은 문제를 낳겠다고 생각해 이 정도로 정리했다”고 대답했습니다.
사참위의 최종 결론은 조사국을 지휘‧감독하는 조사위원 6명의 판단으로 결정됩니다. 문 위원장 말을 종합하면, 사참위는 세월호가 외력으로 침몰했을 가능성을 집중 조사했지만 이를 입증하는데 실패했다는 것입니다.
▲ 문호승 사참위 위원장

사실상 외력설 기각하고도 “확인 안 됐다” 스스로 축소

6명의 조사위원들이 이런 결론에 합의한 데는 대한조선학회의 자문과 네덜란드 해양연구소 마린의 보고서가 결정적 역할을 했습니다. 
대한조선학회는 올해 초 사참위로부터 조사결과보고서에 대한 검토 자문을 공식 요청 받았습니다. 검토 대상은 1) 핀안정기와 선체 외판 변형에 대한 조사 2) 급선회의 원인과 침몰 경위에 대한 조사, 그리고 3)조타장치 고장에 관한 조사 등 3개 과제에 대한 조사결과보고서였습니다. 앞의 두 보고서는 ‘잠수함 충돌설’을 뒷받침하는 결론을, 마지막 보고서는 선조위 내인설의 핵심 논지인 조타장치 고장 가설을 기각하는 결론을 담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대한조선학회 검토가 진행 중이던 4월 13일, 사참위는 세번째 보고서, 즉 “조타장치 고장이 세월호 급선회를 일으켰을 가능성이 낮다”고 결론 내린 조사결과보고서를 전원위원회에서 채택했습니다. 이민, 이재원 두 위원은 보고서의 결론에 동의하지 않는다며 ‘소수안’을 제출했습니다. 즉 대한조선학회에 검토를 요청했던 세 개의 보고서 가운데 세 번째 보고서는 검토가 끝나기도 전에 이미 채택을 해버린것입니다. 
이에 따라 대한조선학회는 이미 채택된 세 번째 보고서, 즉 조타장치 고장 보고서는 검토를 중단하고 다른 두 보고서만 검토해 지난 5월 사참위에 제출했습니다. 잠수함 충돌 가능성은 시나리오 자체가 성립 불가능하고, 선체 손상 원인, 급선회 원인 등 조사도 과학성과 합리성이 결여돼 있다는 지적이 담겼습니다. 장범선 서울대 교수의 경우는 이미 채택된 조타장치 고장 관련 보고서에 대해서까지 문제점을 지적했습니다. 장 교수는 2018년 선체조사위원회 열린안 보고서에 서명했던 바 있습니다.
이 무렵 사참위는 올해 초 마린에 의뢰해 실시했던 ‘‘외력 모형항주시험’ 보고서도 제출 받았습니다. 마린의 결론은 “외력의 성격과 동학에 대한 가설이 명확하게 정립되지 않는다면 외력의 영향을 평가하는 것은 의미가 없으며, 세월호의 급격한 횡경사는 외력을 가정할 필요 없이 내재적 요인들로 충분히 설명된다”는 것이었습니다. 즉, 취약한 복원성과 방향타의 선회, 화물 이동이 세월호가 크게 기울며 급선회한 주요 요인이라는 것입니다. 대한조선학회 해양안전위원장 정준모 인하대 교수는 “마린 보고서의 결론은 대한조선학회의 공식 입장과 100% 일치한다”고 밝혔습니다.
이런 과정을 거치면서 조사위원 6명의 개별적 입장이 정리됐습니다. 5월 26일 제149차 전원위원회 발언을 토대로하면, 이민, 이재원 위원은 “외력 가능성 전혀 없음”, 문호승, 문현웅, 황필규 위원은 “외력 가능성 낮음”이고, 강기탁 위원만이 “외력 가능성 배제하기 어려움” 정도였습니다. 만약 ‘표결’을 했다면 “외력 가능성은 매우 낮다”가 “배제하기 어렵다”를 5대1로 압도했을 터였습니다. 
이렇게 본다면 사참위의 최종 결론은 “침몰 원인을 명확히 밝혀내진 못했지만 외력 가능성은 매우 낮다”로 정리되는 게 오히려 합당했습니다. 만약 그랬다면 세월호 관련 대표적 의혹인 ‘잠수함 충돌설’을 국가조사기구가 공식적으로 기각하는 의미를 남길 수 있었을지 모릅니다.   
하지만 사참위는 “외력 가능성을 조사했으나 침몰 원인인지 확인되지 않았다”는 애매한 결론을 내놓았고, 문 위원장은 “침몰 원인을 왜 확실하게 못 밝혔느냐는 비판은 달게 받겠다”며 고개를 숙였습니다. 문 위원장이 정말로 미안해야 할 것은, 실질적으로 기각된 잠수함 충돌설을 사회적 공론장에 계속 잔존시킬 수 있는 최종 결론을 내놨다는 점입니다.
▲ 박병우 사참위 진상규명국장 (2019. 3. 28)

기각된 ‘증거 조작 의혹’ 일절 언급 없어

지난 5월 24일 제148차 전원위원회에서는 AIS 데이터 조작, DVR 바꿔치기, CCTV 영상 파일 조작 등 ‘증거 조작’ 관련 조사결과보고서 채택이 부결됐습니다. 이에 따라 국민에게 공개될 종합보고서에는 관련 조사 내용과 결과가 전혀 인용될 수 없게 됐습니다. 
이날 회의에서 일부 위원은 “조작으로 볼 만한 정황 증거를 일부 확인했지만 조작이라고 최종 판단하기는 어려웠다”는 취지로 결론을 수정해 보고서를 채택하자는 의견을 냈습니다. 그러나 다수 위원들이 “채택 불가” 입장을 표명해 최종 부결됐습니다.
이때 문현웅 위원은 “위원회가 공식적으로 ‘불채택’이라는 선택을 통해서 ‘증거 조작이 아니다’라는 의사를 명확히 표현해 줄 필요가 있다”면서 “그것이 위원회의 의미 있는 활동”이라고 말했습니다. 그러니까 조작 가능성을 치열하게 조사했음에도 입증하지 못했다면, 조작이 아님을 확인했다고 분명하게 밝혀 사회적 의혹을 해소해 주는 것이 사참위의 책무라는 의미입니다. 
문 위원의 발언처럼 관련 보고서가 채택되지 않음으로써 사실상 AIS 조작과 DVR 바꿔치기, CCTV 영상 파일 조작 의혹은 사실이 아닌 것으로 공식 확정됐다고 볼 수 있습니다. 검찰 특별수사단과 특별검사 수사에서 무혐의 결론이 났음에도 온전히 해소되지 않았던 의혹들에 사참위가 종지부를 찍은 셈입니다. 이런 측면에서 ‘최소한의 성과’라는 평가도 받을 만합니다.
그런데 6월 9일 기자간담회에서 사참위가 발표한 ‘세월호 조사 관련 8개 성과’ 중에는 이 내용이 담기지 않았습니다. 위원들에게 ‘증거 조작’ 의혹을 해소시킨 것을 성과라고 보지 않느냐고 질문해 봤습니다. 강기탁 위원이 답변했습니다. 
저희들이 제기한 증거 조작이라는 것이 사실로 확인된 것이 있어야 저희들의 활동 성과라고 할 수 있는 것이지, 어떤 적극적인 결과가 없는 상태에서 소극적으로 그걸 놓아버렸을 때 그걸 성과라고 표현하진 않지 않습니까? 제가 ‘증거 조작’ 관련 조사 담당자로서 많은 인력과 예산을 투입해 조사하고도 보고서 채택이 부결된 점에 대해 국민들께 사과 드리고 싶습니다.

강기탁 사참위 상임위원 (2022. 6. 9)
강 위원의 발언은 ‘증거 조작’은 분명히 있었지만 제대로 밝혀내지 못해 송구하다는 의미로 국민들에게 전달될 여지가 있습니다. 국가조사기구가 기각된 의혹을 기각됐다고 분명히 밝히지 않으면 완전한 사회적 해소가 될 때까지 더 많은 시간이 필요할지 모를 일입니다. 
▲ 강기탁 사참위 상임위원

국민 앞 ‘종합보고서’에는 ‘해소된 의혹들’ 담겨야

세월호 잠수함 충돌설, AIS 조작 의혹, DVR 바꿔치기 의혹, CCTV 영상 파일 조작 의혹은 사참위가 3년 반 동안 집중적으로 조사해온 사안들이었지만 사실상 모두 기각됐습니다. 사참위 조사에만 수백 억의 예산과 수십 명의 인력이 투입됐고, 검찰 특별수사단과 특별검사 수사로 소요된 물적‧인적 비용까지 감안하면 너무나 초라한 결과입니다. 나아가 이 의혹들에 매달리느라 구조 실패 이유 등 다른 조사에 대한 지원은 상대적으로 부족했고, 더 크게는 가습기 사건 조사가 뒷전이 되다시피 했다는 점에서도 비판을 피하기 어렵습니다.  
사참위가 출범 초기부터 관련 전문가들의 견해를 청취해 합리적인 조사 과제를 선정하려 노력했다면 이 의혹들은 애초에 조사력을 투입할 가치가 없다고 판단되었을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시간을 되돌릴 수 없는 이상, 사참위는 지금의 결과가 세월호 진상규명이라는 사회적 과제를 완수하는 과정에서 최소한의 의미를 남길 수 있도록 마지막 노력을 기울일 필요가 있습니다. 그것은 의혹들의 ‘기각’과 ‘해소’ 사실을 국민들에게 분명하게 전달하는 일입니다.
지난해 1월 검찰 세월호 특별수사단은 최종 수사 결과를 발표했습니다. 해경 지휘부의 구조 지휘 부실과 박근혜 청와대의 특조위 방해 등 2건만을 기소하고, AIS 조작 의혹과 임경빈 군 헬기 이송 지연 의혹 등 대부분의 의혹 사안들에 대해 ‘무혐의’ 처분했습니다. 초라한 결과를 질타하는 기자들에게 임관혁 단장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유가족 분들이 보실 땐 기대하는 결과에 미치지 못하기 때문에 굉장히 실망하셨다고 생각을 하지만, 저희는 법률가로서 검사로서 되지 않는 사건을 억지로 만들 수는 없는 것이고, 있는 그대로 법과 원칙에 따라 수사할 수밖에 없었다는 점을, 그리고 그 과정에서 저희가 할 수 있는 수사는 다 했다는 점을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임관혁 검찰 세월호 특별수사단장 (2021. 1. 19)
지난해 8월에는 세월호 특별검사가 최종 수사 결과를 발표했습니다. DVR 바꿔치기 의혹과 CCTV 영상 파일 조작 의혹에 대해 모두 ‘무혐의’ 처분했습니다. 부실 수사라고 항의하는 세월호 유가족들에게 주진철 특검보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수사팀을 이끌었던 수사 책임자로서, 저희는 있는 사실을 못 밝혀낸 게 아닙니다. (조작이) 없다는 것을 밝혀낸 거예요. 충분한 수사가 이뤄졌고 모든 자료들을 검토했고 모든 대상자를 조사했습니다. 미진한 부분은 없으리라고 자신합니다.

주진철 세월호 특별검사보 (2021. 8. 10)
모든 의혹은 최종적으로 사실로 확정될 수도, 사실이 아닌 것으로 해소될 수도 있습니다. 이를 확인해 나가는 과정에 최선의 노력이 투입됐다면 그 결과물도 최선의 것이 나올 가능성이 높습니다. 사참위 조사관들이 3년 넘도록 최선을 다해 조사했는데도 입증되지 않은 의혹이라면 사실이 아닌 것으로 해소되었다고 판단하는 것이 더 합리적입니다.   
사참위는 오는 9월 10일 이전에 국민에게 공개될 종합보고서를 발간합니다. 종합보고서의 집필진은 사회적 재난‧참사에 대한 학자와 연구자들로 구성돼 있습니다. 과학적이고 전문적인 사참위의 조사 결과물들을 국민들의 눈높이에 맞게 서술하기 위해서입니다. 
비록 조사 결과를 발표한 위원들은 입 밖에 꺼내지 못했지만, 종합보고서에서는 잠수함 충돌 의혹과 AIS 조작 의혹, DVR 바꿔치기 의혹, CCTV 영상 파일 조작 의혹이 “기각”되고 “해소”되었음이 분명하게 언급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것이 ‘사회적으로 공인되는 세월호 참사의 진실’을 향한 여정에 사참위 조사 결과가 한 걸음 보탬이 되는 길일 것입니다.
제작진
영상취재김기철
디자인이도현
웹출판허현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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