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승수 변호사(세금도둑잡아라 공동대표)는 2017년부터 뉴스타파와 함께 공직 감시 활동을 해오고 있다. 2019년 11월, 하 변호사는 해외출장 부당 특혜 의혹이 제기된 국회의원 23명을 김영란법 위반 혐의로 수사해 달라며 검찰에 고발장을 냈다. 그러나 2021년 7월 28일, 검찰은 최종 기각 통보했다. 국회의원 비리 수사를 거부한 것이다. 이 같은 검찰의 기각 결정에 대해, 하 변호사는 '위임된 검찰권을 남용하고 직무를 포기'한 행위라며 뉴스타파에 기고문을 보내왔다. - 편집자 설명
2018년 국민권익위원회는 피감 기관의 예산으로 해외를 다녀온 공직자를 전수조사했다. 2016년 9월부터 김영란법(부정청탁 및 금품 등 수수의 금지에 관한 법률)이 시행되었기 때문이다.
김영란법에 따르면, 원칙적으로 직무관련 여부에 관계없이 1회에 100만 원, 1년에 300만 원을 초과하는 금품ㆍ이익을 받을 수 없도록 되어 있다. 즉 피감 기관에서 1회에 지원받은 해외여행 경비가 100만 원이 넘으면 김영란법 위반이 되는 것이다. 이 조항을 위반하면 3년 이하의 징역 또는 3천만 원 이하의 벌금에 처하도록 되어 있다.
김영란법에서 인정하는 예외는 ‘공직자 등의 직무와 관련된 공식적인 행사에서 주최자가 참석자에게 통상적인 범위 내에서 일률적으로 경비를 지원하는 경우’ 등이다. 그러니까 해외 기관에서 경비를 대고 공식 초청하는 경우에 예외가 되는 것이다. 그러나 그런 경우는 극히 일부였다. 따라서 국민권익위원회의 조사 결과는 상당한 파장을 낳았다.
김영란법을 위반한 의원은 누구인가?
김영란법을 위반한 소지가 있는 공직자 중 국회의원 38명이 포함되어 있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정치적 파장이 커졌다. 피감 기관의 예산 지원으로 해외를 다녀온 국회의원이 누구인지 초미의 관심사가 되었다. 언론들은 각자 입수한 자료를 통해 일부 명단을 추측하는 기사를 내보내기도 했다.
그러나 정작 조사를 한 국민권익위원회는 명단 공개를 거부했다. 단지 문희상 당시 국회의장에게 밀봉한 편지로 38명 국회의원의 명단을 전달했을 뿐이다. 황당한 것은 공식 문서가 아니라 편지 형식으로 전달했다는 것이다. 문희상 의장은 ‘추가 조사를 통해 문제가 드러나면 징계하겠다’고 밝혔지만, 역시 명단 공개를 거부했다. 2018년 12월 31일 국민권익위원회는 추가 조사 결과를 발표했지만, 법 위반 국회의원에게 책임을 묻는 내용은 없었다. 국회의원들에게 예산을 지원해 준 피감 기관에만 ‘기관 경고’ 또는 ‘제도개선 권고’를 했을 뿐이었다.
이후 언론의 관심도 식었다. 그렇게 이 문제는 유야무야되어 갔다. 뉴스타파, 투명사회를위한정보공개센터, 좋은예산센터와 함께 국회 감시 활동을 해 오던 필자는 보다 못해 국회를 상대로 38명의 국회의원을 공개하라는 정보공개 청구를 했다. 그리고 국회가 거부하자 행정소송까지 냈다.
당시 국회는 ‘명단이 공식 문서로 접수된 것이 아니어서 갖고 있지 않다’고 주장했다. 행정소송에서 피고인 행정관청이 이렇게 ‘정보 부존재’를 주장하면, 원고가 ‘그렇지 않다. 정보가 존재한다’는 것을 입증해야 하는데, 그것은 거의 불가능한 일이다. 행정소송을 통해 의원 명단을 밝혀내는 것은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
그래도 행정소송의 성과가 없진 않았다. 국민권익위원회의 추가 조사를 통해 당초 거론된 의원 38명 중 15명은 ‘예외’사유가 있는 것으로 인정됐고, 나머지 23명은 그렇지 않다는 것을 확인한 것이다. 즉 의원 23명은 김영란법을 위반한 것이 거의 확실했다.
23명의 국회의원을 성명불상으로 검찰에 고발
▲ 2021년 6월 23일, 하승수 변호사가 대검찰청에 재항고장을 제출하러 가고 있다.
그래서 2019년 11월, 마지막 방법으로 검찰에 고발장을 냈다. 피고발인은 김영란법 위반 혐의가 있는 23명의 국회의원이었다. 이름을 특정할 수 없었기 때문에 피고발인들의 이름은 ‘성명불상’으로 처리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국민권익위원회가 23명에 관한 조사 자료를 갖고 있을 것이므로, 피고발인을 특정하는 것은 어렵지 않을 것으로 봤다. 검찰이 자료를 달라고 하면, 국민권익위원회가 제공할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본 것이다. 설사 국민권익위원회가 거부해도 검찰이 압수수색 같은 수단을 동원하면, 자료 확보는 얼마든지 가능할 것이라고 봤다.
그래서 서울남부지방검찰청에 고발장을 접수하고, 고발인 진술을 했다. 담당 검찰수사관은 ‘담당 검사가 관심이 많다’는 취지로 얘기했다. 담당 검사는 서울남부지검의 특수부에 해당하는 형사6부 소속 검사였다. 그래서 검찰의 수사에 일말의 기대를 걸었다.
그러나 결과는 어이없었다. 서울남부지검은 1년 4개월이나 시간을 끌다가 2021년 3월 ‘각하’ 결정을 했다고 통보했다. 그 이유를 보니 어이가 없었다. 23명의 국회의원을 특정할 수 없다는 것이 ‘각하’의 이유였다. 내용을 보니 수사 자체를 하지 않았다. 담당 수사관이 국민권익위원회 서기관과 전화 통화를 했는데, 그 서기관이 ‘현재 국민권익위원회에는 해당 국회의원 명단 자료가 없다’고 했기 때문에 피고발인을 특정할 수 없다는 것이 ‘각하’를 한 근거의 전부였다.
언제부터 검찰이 전화로 ‘자료가 없다’고 하면 수사를 포기했는가? 어떤 경우는 수십 군데씩 동시에 압수수색을 하는 검찰이 아닌가? 그런데 국민권익위원회 한 군데를 반나절만 압수수색하면 자료를 확보할 수 있는 사안인데도, 그런 노력을 전혀 하지 않고, ‘자료가 없다’는 핑계로 사실상 수사 거부를 한다는 것은 상식에 반하는 것이었다.
게다가 대한민국 행정을 조금만 안다면, 국민권익위원회가 ‘자료가 없다’고 한 것은 명백한 거짓말인 것을 알 수 있다. 2000년부터 「공공기관의 기록물 관리에 관한 법률」이 시행되고 있기 때문에, 공공기관이 생산ㆍ접수한 모든 문서는 기록물 폐기 절차를 밟지 않는 이상 존재할 수밖에 없다. 따라서 2018년에 생산한 조사 자료가 없다는 것은 말도 안 되는 얘기였다.
항고, 재항고도 기각하며 '수사 거부하는' 검찰
그래서 지난 4월 서울고등검찰청에 항고를 했다. 큰 기대를 했다기보다는 마지막까지 노력을 해 보자는 심정이었다. 서울고등검찰청도 항고를 기각했다. 두 달 뒤 6월에 다시 대검찰청에 재항고를 했다. 그리고 며칠 전인 7월 28일 대검찰청으로부터 ‘재항고 기각’ 통지서를 받았다. 이제는 고발 사건에서 더 이상 다퉈볼 수 없게 된 것이다.
다시 말하지만, 이것은 검찰이 수사를 거부한 것이나 마찬가지이다. 국민권익위원회에 명백하게 자료가 존재하고, 그 자료만 입수하면 김영란법을 위반한 23명의 국회의원 명단을 특정할 수 있는데도 그런 노력을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검찰이 스스로의 직무를 포기한 것이나 마찬가지인 것이다.
그리고 이 사태를 보면서, 제도적인 허점도 느낄 수 있었다. 이 사건을 공수처로 가져갈 수 없는 이유는 현재 공수처의 수사 대상에 ‘김영란법 위반’이 포함되어 있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나 김영란법 위반은 부패 행위에 해당하기 때문에 당연히 공수처의 수사 대상에 포함되어야 한다. 앞으로 법 개정이 필요한 사안이다.
결국 검찰의 '수사 거부'로 인해 김영란법을 위반한 23명의 명단을 당장에는 밝혀내기 어렵게 되었다. 김영란법 위반의 공소시효 5년도 곧 완료되기 시작한다. 2016년 9월 28일 김영란법이 시행된 직후에 해외출장 부당 특혜가 일어났기 때문에, 곧 공소시효 5년이 되는 사례들이 있을 것으로 추정되는 것이다.
그래서 더 답답한 상황이다. 명백한 법 위반이 있었는데도, 단지 국회의원이라는 이유로 수사를 받지 않고, 아무런 불이익도 받지 않는다는 것은 ‘법치주의’라고 할 수 없다. 이것은 헌법이 정한 ‘법앞의 평등’을 근본적으로 훼손하는 것이다. 또한 여전히 선별적 수사와 선별적 기소를 하며, 국민으로부터 위임된 검찰권을 남용하고 있는 검찰을 지켜보는 것도 힘들다.
그렇지만 진실은 언젠가는 밝혀지기 마련이다. 그것을 위해 다시 할 수 있는 일을 찾아보고자 한다. 시민들의 관심을 부탁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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