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과 론스타의 닮은 꼴.. 조세도피처 활용하기
2017년 11월 14일 20시 01분
한국탐사저널리즘센터-뉴스타파는 지난 2016년 4월 ICIJ, 즉 국제탐사보도언론인협회와 함께 파나마 로펌 ‘모색 폰세카’에서 유출된 2.6테라바이트 규모의 조세도피처 관련 데이터를 토대로 ‘파나마페이퍼스 프로젝트’를 진행했습니다. ‘모색 폰세카’는 역외 탈세와 돈세탁, 검은 돈 은닉 등을 주요 서비스로 제공하는 이른바 ‘역외비밀 도매상’으로 악명높은 곳이었습니다. 뉴스타파는 유출 데이터를 통해 노태우 전 대통령의 장남 노재헌, 론스타코리아 전 대표 유회원 등 유명인사의 조세도피처 유령회사 설립과 포스코의 유령회사 인수 사실 등 조세도피처로 간 수많은 한국인들을 추적해 보도했습니다. 이밖에 모색 폰세카 데이터에 나오는 한국인 명단을 공개해 제보를 기다린 바 있습니다. 뉴스타파는 ICIJ가 파나마페이퍼스 프로젝트 4주년을 맞아 출판한 특집기사를 번역해 게재합니다. 전세계 경제를 좀 먹는 조세도피처 문제에 대한 경각심을 다시 불러일으키는 계기가 되기를 바랍니다. |
세금은 문명을 떠받치는 기둥입니다. 그러나 모든 납세자에게 같은 규칙이 적용되는 건 아닙니다. 예컨대 거대한 부와 인맥을 소유한 이들은 변호사, 회계사, 대형 로펌, 안일한 정부의 조력을 등에 업고 수천조 원대 탈세를 해왔습니다.
이렇게 손실된 세수는 서민의 부담으로 돌아옵니다. 막대한 탈세로 발생한 세수 구멍을 메우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합니다. 결국에는 정부가 도로와 학교를 만들고, 기후변화와 전염병 같은 인류를 위협하는 문제에 대응해 쓸 재정이 부족하게 되는 것입니다.
전세계에 걸쳐 있는 조세도피처 페이퍼컴퍼니에는 세계 경제에서 창출된 부의 10%가 묻혀 있는 것으로 추산됩니다. 세수 손실로 따지자면 연간 8000억 달러(976조 원)가 넘습니다.
세계의 부자들은 이렇게 자자손손 세습할 부를 축적합니다. 현대 사회의 ‘귀족 계급’이 생겨나고 부익부빈익빈 현상이 악화되는 원인이기도 합니다. 다국적기업들은 세금 회피로 얻은 이익을 주주들에게 보상하거나 중소기업 경쟁자를 밀어내는 데 사용합니다.
안타깝게도 세수가 절실한 빈국일수록 국민총생산(GDP) 대비 더 큰 비율의 세금 탈루가 발생합니다. 그 결과 가장 큰 타격을 입는 것은 취약계층입니다.
국제탐사보도언론인협회 ICIJ와 파트너 매체들이 ‘파나마페이퍼스’(Panama Papers)를 처음 보도한 지 4년이 지났습니다. ICIJ는 조세도피처를 남용하는 자들을 끈질기게 추적하고 있습니다. 그 중에는 부패한 정치인, 폭력조직, 마약밀매상 등 역외 회사를 활용해 돈세탁을 일삼는 범죄자들이 포함돼 있습니다. 이러한 불법적인 자금의 흐름은 정치의 불안정을 부추기고 독재자가 권력을 유지하도록 돕습니다.
조세도피처에서 돈이 어떻게 움직이고, 이것이 왜 심각한 문제인지를 다시 한번 짚어봤습니다.
조세도피처는 법인세율이 낮은 국가 또는 지역입니다. 외국 사업체를 유치하기에 매력적인 조건입니다. 또 해당 지역에 설립한 회사나 실소유자를 제대로 공개하지 않는 편입니다. 정보를 알아내기가 어려운 탓에 조세도피처는 ‘비밀 권역’이라고 불리기도 합니다. 그러나 대다수 조세도피처는 그들이 조세도피처라는 사실을 부인합니다.
조세도피처는 세계 곳곳에 존재합니다. 파나마, 네덜란드, 몰타 등의 국가도 있고 미국 델라웨어주나 케이맨제도 같은 특정 지역도 있습니다.
ICIJ는 여러 곳에 있는 조세도피처를 집중적으로 취재해왔습니다. 그 과정에서 다양한 문서를 입수했고, 연관 지역이나 문건 내용에 따라 각각 다른 프로젝트 이름을 붙였습니다. 예를 들어 파나마페이퍼스 프로젝트는 파나마 로펌 ‘모색 폰세카’가 전세계 고객을 상대하며 수천 개 페이퍼컴퍼니를 영국령 버진아일랜드 등에 세운 것을 폭로합니다. 모색 폰세카는 세계 최대 규모로 손꼽히던 역외 로펌입니다. ‘모리셔스 리크스’는 각종 기업이 탈세를 위해 섬나라 모리셔스를 어떻게 활용해왔는지를 드러냅니다. ‘파라다이스페이퍼스’는 로펌 애플비가 있는 버뮤다에서 일어난 비밀을 밝힙니다.
남태평양에 위치한 조세도피처 니우에와 바누아투는 국제 사회의 압력으로 불법 행위를 중단했습니다. 반면 두바이처럼 불법적 부의 온상으로 급부상하는 곳도 있습니다.
그건 바로 돈 때문입니다. 페이퍼컴퍼니 설립 과정에서 개인과 기업이 내는 등록세는 조세도피처에서 큰 수입원입니다. 조세도피처는 변호사, 회계사, 비서 직종의 일자리를 제공하기도 합니다. 가령 모리셔스가 조세도피처이기를 포기한다면 당장 5000명의 실업자가 발생할 것이라고 합니다.
여기서 페이퍼컴퍼니란 조세도피처 지역의 법 적용을 받는 회사이지만 서류로만 존재할 뿐 상근 직원이나 사무실이 없는 유령회사입니다. 케이맨제도에 있는 건물 하나에 무려 1만9000개의 유령회사가 주소를 두고 있기도 합니다. 많은 경우 페이퍼컴퍼니는 실소유주가 누구인지 법인 서류상 드러나지 않습니다. 영어로는 주로 ‘셸 컴퍼니(shell company)’라고 합니다.
빈 조개껍데기를 떠올리면 됩니다. 서류로만 존재하고 실제 속은 텅 비어있기 때문에 껍데기 회사라고도 불립니다.
합법적, 불법적 목적으로 모두 활용됩니다. 페이퍼컴퍼니를 통해 돈, 호화 주택, 지적재산권, 사업체, 기타 자산의 보유가 가능합니다. 또한 전세계에 불법 자금을 유통하는 촉매제 역할을 하기도 합니다.
돈이 많다는 것만 빼면 꽤나 평범한 이들도 많습니다. 예를 들어 미국 앨라배마 주의 한 청과물 상인은 전 배우자나 옛 동업자, 세무 조사관을 따돌리기 위해 페이퍼컴퍼니를 이용했습니다.
막대한 세금을 회피한다는 측면에서 볼 때 조세도피처를 이용한 투자는 수익성이 높습니다. ICIJ가 폭로한 조세도피처 페이퍼컴퍼니 명단에는 록의 거장인 밥 겔도프, 마돈나,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오랜 친구 윌버 로스 미 상무장관 등 유명인사들이 이름을 올렸습니다. 엘리자베스 2세 영국 여왕을 비롯한 일부는 역외 투자를 했는지 전혀 모르고 있었다고 말합니다.
아이슬란드 전 총리 시그문뒤르 다비드 귄뢰이그손, 나이지리아 전 상원의장 부콜라 사라키 등 정치인은 페이퍼컴퍼니를 통해 투자자금과 고급 주택을 숨겨왔습니다. 나와즈 샤리프 파키스탄 전 총리의 자녀, 앙골라의 독재자 조제 에두아르두 두스 산투스 전 대통령의 억만장자 딸 이사벨 두스 산투스 등 고위층 자녀도 이름을 올렸습니다.
거대 마약거래상, 은행강도, 무기밀매상, 마피아 우두머리, 뇌물 수수자 같은 범죄자들이 신분을 감추고 돈과 각종 자산, 불법 행위를 은닉하려고 페이퍼컴퍼니를 활용하기도 합니다.
간단히 말하자면 ‘아니오’입니다. 페이퍼컴퍼니가 어디에 세워졌고 어떤 식으로 법인 조직이 됐는지에 따라 불법 여부가 달라집니다.
훔친 자산을 해외에 숨기는 건 명백한 불법입니다. 그러나 페이퍼컴퍼니를 이용해 호화 요트를 사는 건 불법이 아닐 수도 있습니다. 마이크로소프트 공동창업자인 폴 앨런, 사우디 아라비아의 왕자 모하메드 빈 살만 알사우드의 사례에서 볼 수 있듯 역외 자산 축적 및 소비가 합법적으로 이뤄지게끔 변호사나 회계사가 교묘한 방법을 제시합니다.
자금이 수시로 국경을 넘나드는 사업일수록 대금 결제, 수익, 투자 등을 조세도피처에 설립한 자회사로 우회시킴으로써 거액의 세금을 줄일 수 있습니다.
거대 제약회사가 버뮤다나 네덜란드에 자회사 법인을 세운 뒤 수익성이 좋은 약의 특허를 역외 자회사에 판다고 가정해봅시다. 이후 모회사는 자회사에 라이선스 비용을 지불해야 합니다. 따라서 자국에 보고하는 수익금이 줄고, 그만큼 세금을 적게 내게 됩니다. 영국 기반의 국제구호단체 옥스팜은 제약회사들이 바로 이런 수법으로 수십억 달러대 세금 회피를 지속했다고 지적합니다.
이러한 기업들의 세금 탈루 규모는 매년 5000억 달러(610조원)에 이릅니다. 자국에서는 거의 세금을 내지 않는 기업도 있습니다. 애플, 존슨앤드존슨, 스카이프 등이 세금 꼼수를 쓰는 대표적 기업으로 꼽힙니다.
기업들은 역외 회사가 해외자본 투자를 촉진한다고 말합니다. 이중과세를 피하려고 역외에 자회사를 세운다고 주장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전문가들은 이 같은 자기방어적 주장은 과장됐거나 사실과 무관하다고 반박합니다.
이 주장은 기업이 사회의 책임감있는 구성원인 것처럼 포장하는 동시에 이들이 절세를 위해 법망의 틈새를 이용한다는 사실을 굳이 숨기지도 않습니다. 세금 회피는 종종 불법 탈세로 이어지는데도 말입니다.
전통적인 정의에 따르면 탈세(tax evasion)는 불법 행위인 반면 절세(tax avoidance)는 세금제도의 허점을 활용해 세금을 적게 내거나 내지 않는 것을 뜻합니다. 그러나 많은 전문가들은 이 둘 사이 구분이 모호하다고 봅니다. 절세(tax avoidance)라 불리는 것도 범죄에 속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입니다.
이메일이나 전화 통화를 통해 간단하게 해결할 수 있습니다. ICIJ가 취재한 사례를 보면 대부분 제3자가 돈을 받고 대신 일을 처리했습니다. 애플비, 아시아시티, 모색 폰세카 같은 로펌이 고객을 대신해 전화를 걸거나 이메일을 작성해 페이퍼컴퍼니를 만들어 줍니다.
관할권마다 조금씩 차이는 나지만 일반적으로 회사를 등록하려면 신원 확인 문서를 제출하고, 돈을 어떻게 벌었는지, 새 사업의 목적은 무엇인지 등에 대해 설명하는 절차가 필요합니다. 그러나 조세도피처 로펌들은 굳이 이런 질문을 하지 않습니다.
한편 ‘파나마페이퍼스’ 프로젝트의 폭로 여파로 세계 각지 변호사들이 고객의 정체를 파악하고자 서둘러 움직이고 있습니다.
직접 페이퍼컴퍼니를 세우는 시도를 해본 기자도 있습니다. ICIJ 제휴 매체의 한 탐사보도기자는 그의 고양이가 소유한 페이퍼컴퍼니를 델라웨어주에 만들기도 했습니다.
컨설턴트, 자산 매니저, 변호사는 조세당국의 눈을 피해 돈을 숨기고 세금을 회피할 방법을 제시합니다. 회계사들은 페이퍼컴퍼니 회계감사에 서명함으로써 세금탈루에 일조합니다.
페이퍼컴퍼니를 만드는 비용은 어디에다 세우는지, 그리고 누가 중간에서 돕는지에 따라 달라집니다. 모색 폰세카 변호사들은 페이퍼컴퍼니 설립 수임료로 350달러를 청구했습니다.
애플비 등 파라다이스페이퍼스에 등장한 로펌들은 인기 조세도피처인 맨섬(Isle of Man)에 회사를 세우는 수수료를 2000달러로 정해두기도 했습니다.
페이퍼컴퍼니는 여러 형태로 존재하지만 ‘회사 법인’ 형태가 가장 흔합니다. 미 델라웨어나 영국령 버진아일랜드, 바하마제도, 니우에 등에서 쉽게 찾을 수 있습니다. 때로 신탁, 재단 형태로 존재하기도 합니다.
이들은 조세도피처의 법에 따라 각기 다른 규칙을 적용을 받습니다. 그런데 신탁은 유난히 오남용이 쉽습니다. 소유자를 정의하거나 공표하는 것을 피하기 위해 오래된 법원칙에 의거하기 때문입니다. 신탁의 소유권은 세 가지로 나눌 수 있습니다. 자산의 법적 주인, 자산을 관리하는 사람, 자산을 실제 사용하고 향유할 수 있는 사람입니다.
헷갈시나요? 맞습니다. 이런 복잡한 구조가 바로 세금당국, 법 집행, 탐사보도기자를 어지럽게 합니다.
차명 등기이사는 돈을 받고 공식 서류에 이름을 올려주는 개인 또는 회사입니다. 페이퍼컴퍼니는 노출을 피하기 위해 실소유주 대신 꼭두각시로 묘사되는 차명 등기이사를 쓸 수 있습니다. 이들은 회의록에 서명을 하는 등 행정 업무를 수행하지만 회사에 대한 실질적이거나 법적인 힘은 없습니다. 독일 최대 은행 도이체방크의 페이퍼컴퍼니 레굴라(Regula)가 꼭두각시 이사를 내세운 게 최근 사례입니다.
페이퍼컴퍼니를 소유한 사람 또는 회사가 실소유주입니다. 다시 말해 서류상으로 얼마나 많은 이사진, 자회사가 있는지는 중요하지 않습니다. 문제의 페이퍼컴퍼니를 궁극적으로 소유한 사람 또는 회사가 바로 실소유주입니다.
어느 나라에 살고 있느냐에 따라 다릅니다. 다만 비밀을 유지하는 게 예전처럼 쉽지는 않습니다. 이미 다수의 정부가 조세도피처를 포함한 다른 국가로부터 자국민의 해외 은행계좌 정보를 자동화된 방식으로 받습니다.
그렇지 않은 개발도상국들은 반드시 조세도피처에 정보를 요구해야 합니다. 그러나 미국 델라웨어주 등 여러 지역이 페이퍼컴퍼니 실소유주 공개를 거부하는 상황입니다.
무기명 주식은 주권, 즉 물리적 증서를 가지고 있는 사람이 주주의 자격을 인정받습니다. 무기명 주식은 주주의 이름이 등록되는 게 아니기 때문에 소유권이 기록으로 남지 않습니다. 범죄자들이 범죄 사실과 재산을 은닉하는 데 무기명 주식을 활용해 왔기에 현재 다수의 국가가 이를 금지하고 있습니다.
동일한 그룹 내 두 개의 회사가 서로 거래할 때 이전가격이 발생합니다. 가령 페이스북 아일랜드 법인이 미국 법인에 서비스 또는 자산을 팔 때 발생합니다. 이전가격 조작은 내부 거래 중 자산의 가치를 인위적으로 부풀리거나 줄여서 절세나 탈세하는 행위를 가리킵니다. 페이스북도 이전가격 조작을 의심받고 있습니다.
바로 이 부분이 비밀로 유지되기에 정확한 계산이 불가능합니다. 프랑스 경제학자 가브리엘 주크만은 전세계 GDP의 10%, 즉 6천800조원(5조6000억달러) 정도로 보고, 미국 경제학자 제임스 헨리는 3경9000조원(32조달러) 규모라고 추산합니다.
파나마페이퍼스 보도는 기사에 언급된 사회 지도자들의 사퇴와 유죄판결로 이어졌고, 10억달러(약 1조원)가 넘는 환수를 이끌었습니다. ICIJ는 파라다이스페이퍼스, 서아프리카 리크스, 모리셔스 리크스에 이어 올해 초에는 루안다 리크스도 내놓았습니다.
돈이 흘러가는 경로를 보면 쉽게 알 수 있습니다. 힘있는 국가들이 주요 참여자이기 때문입니다. 역외 자금은 스위스와 네덜란드, 영국의 해외 영토, 미국 델라웨어, 와이오밍, 네바다, 사우스다코타주 등으로 유통됩니다.
한편 파나마페이퍼스 보도 이후 다수의 국가가 역외탈세에 대한 수사를 강화하고 조세법을 손보기 시작했습니다. 유령회사를 활용한 탈세를 막자는 요구는 미국에서도 커졌습니다. 그 결과 지난해 미 하원에서 ‘기업투명성법’(Corporate Transparency Act)이 통과됐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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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기자 | 벤 홀먼, 윌 피츠기본 |
번역 | 이명주 |
디자인 | 이도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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