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에서] 윤석열 명예훼손 재판부 ‘제발 허위 사실을 특정해 달라’

Nov. 08, 2024, 05:55 PM.

진짜 국정농단, 대선개입 여론조작 의혹 사건 등에 묻혀 세간의 관심에서 사라져가고 있지만, 한때 용산 대통령실이 ‘희대의 국기문란’으로 지칭했던 <뉴스타파 v. 윤석열> 사건, 즉 ‘윤석열 명예훼손’ 사건 재판이 매주 열리고 있다. 뉴스타파에서는 윤석열 명예훼손 혐의로 기소된 뉴스타파 김용진 대표와 한상진 기자가 피고인으로 재판에 출석하고 있다.
지난 10월 22일 화요일 2차 공판부터 증인신문이 본격 시작됐다. 검찰은 대장동 업자 중 한 명인 남욱 변호사를 첫 증인으로 내세웠다. 남욱은 검찰의 주신문 내내 검찰 입맛에 맞는 진술을 했다. 김만배가 대장동 사업 책임을 윤석열에게 떠넘기기 위해 허위 프레임을 만들어 실행했고, 남욱 자신도 김만배의 지시에 따랐다는 게 검찰 신문과 남욱 증언의 주요 취지였다.
10월 29일 열린 3차 공판에선 남욱에 대한 변호인 반대신문이 있었다. 변호인이 남욱에게 2021년 11월 19일 검찰 조사에서 윤석열이 대장동 대출 브로커 조우형을 봐줬다는 취지의 진술을 했다고 지적하자 그것은 김만배의 지시에 의한 허위 진술이었다고 주장했다. 2022년 6월 8일 열린 곽상도의 대장동 사업 관련 50억 뇌물수수 혐의 재판에서 증인으로 나와 ‘2011년 대검의 부산저축은행 수사 당시 조우형은 피의자였고, 그를 빼낸 김만배가 대단하다고 생각했다’라는 취지의 증언을 한 것도 허위증언이었고 했다.
남욱은 현재 검찰이 그를 증인으로 불러낸 ‘윤석열 명예훼손’ 사건의 검찰 공소장 내용에 부합하는 말을 쏟아냈다. 그는 이를 위해 과거 검찰 조사나 법정 증언 과정에서 한 말을 허위였다며 간단하게 뒤집었다. 위증 처벌도 감수하겠다는 태도를 보였다.
오전 10시부터 시작된 3차 공판은 해가 저물어갈 때까지 이런 식으로 진행됐다. 지루한 재판 흐름을 바꾼 건 판사석에서 들려온 한마디였다.
“갑자기 그런 생각이 드네요” 
재판장의 이 말에 갑자기 법정 분위기가 바뀌었다. 마치 찬바람이 휙 하고 지나간 듯했다. 이 때까지 모두 하루 종일 이어진 재판으로 지쳐 있었다. 검사, 변호인, 피고인, 출입기자, 방청객뿐만 아니라 판사들도 피곤해 보였다. 모든 시선이 재판장 입에 쏠렸다. 필자가 기록한 메모장에는 재판장이 이 말을 꺼낸 시각이 18시 26분으로 적혀 있다.
재판장은 ‘갑자기 든 생각’을 밝혔다. 검찰과 피고인 양측이 모두 동의한다면 뉴스타파가 2022년 3월 6일 보도한 기사 전문을 남욱 증인에게 읽게 하고, 재판부가 증인에게 몇 가지 질문을 하고 싶다고 했다. 검찰과 피고인 측 모두 동의했다.
뉴스타파 변호인이 갖고 있던 기사 출력본을 남욱에게 건넸다. 판사는 남욱 증인에게 기사에 인용돼 있는 (김만배-신학림 대화) 녹취까지, 끝까지 다 읽어 보라고 했다. 법정 안의 모든 이가 남욱의 뉴스타파 기사 읽기가 끝나기만을 기다렸다. 묘한 정적이 흘렀다. 나무 의자가 삐걱대는 소리와 기침 소리만 간혹 정적을 깼다. 몇 분이 흐른 뒤 재판장은 기사가 몇 페이지냐고 물었다. 변호인은 5쪽 분량이라고 했다.
“네, 다 읽었습니다” 드디어 남욱이 말했다. 이 과정을 옮기면 다음과 같다.
○ 재판장: 그러면 갑자기 그런 생각이 드네요. 가장 핵심이 되는 2022년 3월 6일자 뉴스타파 보도문을 아직 증거 조사 전이긴 하지만 양측이 동의한다면 그 전문을 증인한테 한번 읽어보게 하고 저희가 몇 가지 좀 질문을 하고 싶은데 어떨까요? 

● 검사 1: 저희는 괜찮습니다.

○ 재판장: 예, 뉴스타파 3월 6일 자 서면 지금 신OO 변호사님이 아까 보여 주신 거 있죠. 네 그거 전문이 다 나온 겁니까? 아니면 일부만 있는 건가요. 그거 한번 보여주실래요. 그거 한번 읽어보시겠어요. 거기에 첨부된 녹취 파일 내용도 있는 것으로 보이거든요. 글자는 끝까지 첨부된 내용을 아마 설명하는 내용이 들어가 있을 겁니다. 그것까지 다 읽어 보세요. ...... 몇 페이지 분량입니까?

● 뉴스타파 변호인: 5쪽 분량입니다.

○ 남욱: 네, 다 읽었습니다.

<뉴스타파 v. 윤석열> 사건 3차 공판 내용 중 일부 (필자의 메모와 출입기자 속기 내용을 종합한 것으로 부정확할 수 있음)
재판장은 한 가지 더 확인할 것이 있다고 했다. 뉴스타파 기사가 인용한 김만배-신학림 녹취록에는 2011년 대검 중수부에 불려간 조우형에게 커피를 타준 검사가 박OO 검사로 돼 있다며 보도 후 기사가 수정된 적이 있냐고 물었다. 뉴스타파 변호인은 “수정하지 않았을 것”이라고 답했다. 재판장은 “그 자체에서 윤석열이 커피를 타준 게 아니라는 취지가 느껴져, 딱 캐치(catch)가 돼서 이게 뭐지 이런 생각이 들었다”라고 했다.
뉴스타파가 여러차례 밝히고, 보도까지 했듯이 뉴스타파의 2022년 3월 6일자 기사는 윤석열이 조우형에게 커피를 타줬다는 내용을 쓰지 않았다. 해당 기사에는 김만배가 신학림을 만나서 한 말, “박OO(검사가) 커피를 주면서 몇 가지를 하더니 (물어보더니) 보내주더래”라는 육성이 인용돼 있다. 그러나 지난해 9월부터 국민의힘과 일부 언론매체의 선동과 악의적 보도로 아직도 뉴스타파가 ‘윤석열이 조우형에게 커피를 타줬다’는 내용을 보도한 것처럼 알려져 있다. 
“그럼 기사 자체에서 커피 타준 사람은 박OO 검사로 지금 기사가 나갔다는 거 아니에요”라며 판사는 알겠다고 했다. 
○ 재판장 : 그렇게.. 그 자체에서 윤석열이 커피를 타준 게 아니라는 취지가 느껴져, 딱 캐치(catch)가 돼서 이거 뭐지 이런 생각이 들었어요. 그 자체는 검찰 증거랑 별 차이가 없는거죠.

● 검사 1: 영상이 있고 인터넷 판이 있는데 영상에는 그냥 박OO이라고 삐 처리가 돼서

○ 검사 2: 검사 이름 자체가 나오지 않고 박모 검사라고

● 재판장 : 그럼 그 기사 자체에서 커피 타준 사람은 박OO 검사로 지금 기사가 나갔다는 거 아니에요. 알겠습니다.

○ 검사 3: 저희는 차주에 좀 상세히 설명드리겠습니다.

<뉴스타파 v. 윤석열> 사건 3차 공판  내용 중 일부 (필자의 메모와 출입기자 속기 내용을 종합한 것으로 부정확할 수 있음)
재판장은 이어 남욱에게 해당 기사를 읽게 한 뒤 하려던 질문 몇 가지를 하겠다고 했다. 그리고 우배석 주심판사에게 마이크를 넘겼다.
“증인이 기사를 읽으셨을 때 증인의 기억과 다른 허위 사실이 적시된 부분이 어디인지 한번 이야기해 보시겠어요”라고 우배석 판사가 남욱에게 물었다. ‘허위 사실 특정’은 이번 재판 내내 재판부가 검사 측에 요구한 사안이다. 본재판 전 열린 3차례 공판준비기일에서, 그리고 석명준비명령에서도 재판부는 검사 측에 같은 요구를 했다.
검사가 공소장을 일부 변경하긴 했지만 재판부는 아직 범죄사실이 명확하게 특정되지 않는다고 했다. 재판부는 검찰 증인인 남욱에게도 뉴스타파 기사를 보고 허위 사실을 특정해보라고 한 것이다. 재판부는 이 부분이 진짜 궁금한 듯 했다. 또다시 정적이 흘렀다. 잠시 후 남욱 증인이 뭐라고 했으나 잘 알아듣기 힘들었다. 판사가 큰소리로 다시 물었다.
“평론을 해 달라는 게 아니고요. 허위 사실이 무엇인지를 한번 지적해 달라고요. 증인이 아는 한도에서” 
남욱이 다시 기사를 읽었다. 잠시 정적이 흘렀다.
○ 주심 판사: 평론을 해달라는 게 아니고요. 허위사실이 무엇인지를 한번 지적해 달라고요. 증인이 아는 한도에서

● 남욱: 의혹이다 하고 박스를 치고 여기서 ‘윤석열이가 니가 조우형이야 이러면서…’ 이것도 허위의 사실이고

○ 주심 판사: 잠시만요.

<뉴스타파 v. 윤석열> 사건 3차 공판  내용 중  일부 (필자의 메모와 출입기자 속기 내용을 종합한 것으로 부정확할 수 있음)
“여기서 ‘윤석열이가 니가 조우형이야? 이러면서’ 이것도 허위의 사실이고요”라고 남욱이 말했다. “잠시만요” 판사는 남욱의 말을 잘랐다. 
“그 부분이 허위라고 지금 증인이 말씀하시는 게 어떤 취지로 그 부분이 허위라고 말씀하시는 겁니까? 그 부분에 그러한 대화가 없었다는 취지입니까? 아니면 그 말이 거짓말이라고 보십니까?” 판사가 재차 물었다.
남욱은 ‘이 말이 거짓말이라는 취지’라고 답했다. 판사는 증인이 말한 내용이 녹취록의 일부로 기사에 작성돼 있는 것이냐고 다시 물었고, 남욱은 녹취록 내용 그대로 인용돼 있다고 답했다. 판사는 “(녹취록을) 그대로 인용을 했다면 그 인용된 대화가 김만배와 신학림 사이에 있었던 것은 사실이나, 거기 기재되어 있는 내용이 거짓이라는 취지에서 증인이 허위 사실로 적시된 것이라고 지금 의견을 밝힌 것이죠.”라고 되물었다. 남욱은 ‘맞다’고 했다. 판사는 허위 사실이 또 있는지 물었다. 다시 정적.
“녹취록 안에 있는 내용들이 계속 제가 말씀드렸던 것처럼 대부분의 사실이 김만배 회장님께서 만들어낸 가공의 사실이다...”라고 남욱이 말했다. “그거를 찍으라고요.” 판사가 다소 강한 어조로 말했다. 재판장은 “저희도 답답해서 그럽니다”라고 웃음 지으며 말했다. 남욱이 고개를 숙였다. 이번에는 손가락으로 짚어가며 기사를 다시 읽는 듯했다.
○ 우배석 판사: 그 부분이 허위라고 지금 증인이 말씀하시는 게 어떤 취지로 그 부분이 허위라고 말씀하시는 겁니까? 그 부분에 그러한 대화가 없었다는 취지입니까? 아니면 그 말이 거짓말이라고 보십니까?

● 남욱:  이 말이 거짓말이라는 취지입니다.

○ 우배석 판사: 또 있습니까? 

● 남욱: 녹취록 안에 있는 내용들이 계속 제가 말씀드렸던 것처럼 대부분의 사실이 김만배 회장님께서 만들어낸 가공의 사실이다...

○ 우배석 판사: 그거를 찍으라고요.

● 재판장: 저희도 답답해서 그럽니다.

<뉴스타파 v. 윤석열> 사건 3차 공판  내용 중  일부 (필자의 메모와 출입기자 속기 내용을 종합한 것으로 부정확할 수 있음)
“지난해 9월 녹음된 김만배의 이 말은 ‘조우형을 전혀 모르고, 봐주기 수사를 한 사실이 없다’던 윤석열 후보의 주장과 배치되는 증언이다. 이것도 사실이 아닙니다.” 기사를 다시 훑어본 남욱이 말했다. 판사가 어떤 취지냐고 묻자, 남욱은 “윤석열 그 당시 후보의 얘기가 팩트인데, 주장이 배치된다고 얘기를 했으니까”라고 답했다.
“김만배의 말이 윤석열의 증언과 배치된다는 주장이잖아요. 어느 쪽 말이 진실이다가 아니라 윤석열 후보의 말과 김만배의 말이 다르다는 취지의 문장인데 그게 어디가 허위라는 거죠?” 판사는 말했다.
“어. 판사님 말씀이 맞네요. 배치되는... 죄송합니다. ‘주장과 배치된다’ 그 말씀이 맞습니다.” 
○ 남욱: 지난해 9월 녹음된 김만배의 이 말은 ‘조우형을 전혀 모르고 봐주기 수사를 한 사실이 없다’던 윤석열 후보의 주장과 배치되는 증언이다. 이것도 사실이 아닙니다.

● 우배석 판사: 그건 어떤 취지에서

○ 남욱: 이 얘기 자체에 윤석열 그 당시 후보의 얘기가 팩트인데 주장이 배치된다고 얘기를 했으니까

● 우배석 판사: 김만배의 말이 윤석열의 증언과 배치된다라는 주장이잖아요. 어느 쪽 말이 진실이다가 아니라 윤석열 후보의 말과 김만배의 말이 다르다라는 취지의 문장인데 그게 어디가 허위라는 거죠?

○ 남욱: 어. 판사님 말씀이 맞네요. 배치되는... 죄송합니다. ‘주장과 배치된다’ 그 말씀이 맞습니다.

<뉴스타파 v. 윤석열> 사건 3차 공판  내용 중 일부 (필자의 메모와 출입기자 속기 내용을 종합한 것으로 부정확할 수 있음)
남욱이 뉴스타파 기사를 읽고 본인이 허위 사실이라고 특정한 부분은 ‘윤석열이 니가 조우형이야? 이러면서…’라는 부분이 유일했다. 그마저도 남욱 증인 본인의 “의견을 밝힌 것이죠?”라는 질문에 그렇다고 답했다.
특히 검찰은 아직도 뉴스타파 기사의 어떤 부분이 허위라고 특정하지 않은 채 전체적으로 평가해서 허위라고 주장하고 있다. 재판부가 허위 사실을 특정해 달라고 요청할 때마다 메아리처럼 돌아오는 검찰의 답이다. 재판부는 “갑자기 그런 생각이 드네요”라며 남욱에게 뉴스타파 기사를 읽게 하고 허위 사실을 특정하라고 했지만, 갑자기 든 생각이 아닐수도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의도적으로 검찰 측에 보내는 메시지 같이 여겨졌다.
By
취재한상진 최윤원
디자인이도현
출판허현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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