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스바이오메드 인공유방과 '의문의 시험성적서'

2020년 11월 10일 17시 49분

뉴스타파는 코스닥 상장사 한스바이오메드의 의료기기 불법 제조 사건을 연속 보도하고 있다. 추가 취재 결과, 한스바이오메드가 주력 제품 ‘벨라젤’(Bellagel) 인공유방 제조허가를 받는 과정에서 제품 성능, 안전성과 직결된 공인인증시험 결과를 회사 입맛에 맞게 골라 정부에 제출한 정황이 포착됐다.
뉴스타파는 한스바이오메드의 인공유방 불법 제조 사건을 취재하면서, 회사의 최고의사결정권자인 황호찬 대표이사와 직접 통화했다. 황 대표는 주로 해외시장 진출 성과를 기자에게 강조했다. 기자도 해외사례를 들어 물었다.
● 홍우람 기자: 2014년에 프랑스에서는 제품이 판매금지됐지 않습니까?
○ 황호찬 대표: 어느 제품이?
● 기자: 인공유방 제품이요.
○ 황 대표: 프랑스에서는 지금 인공유방 수술 안 해요, 그럼?
● 기자: 아니요. 프랑스에서 한스바이오메드 제품이 판매금지됐지 않습니까.
○ 황 대표: 어, 그건 모르겠는데.
● 기자: 모르신다고요. 2013년에 판매 정지됐었고, 그 이유가 D4, D5 위해성분이 다량 검출된 사안이었는데요.
○ 황 대표: 아 그건 아닐 걸. 글쎄, 그런 얘기는 처음 듣는데.
- 2020년 11월 전화통화

한스바이오메드 대표의 사라진 기억: 프랑스 사건의 교훈

황 대표의 기억에 남아 있지 않다는 프랑스 사건으로 거슬러 올라 간다. 2013년 4월 프랑스 국립의약품청(ANSM)은 한스바이오메드가 생산하는 인공유방 제품들을 판매중지시킨다. ANSM이 2012년 6월부터 한스바이오메드 측에 현장실사를 거듭 요청했으나, 회사가 응하지 않았던 것이 사건에 불을 붙였다. 프랑스 당국의 제품 검사 과정에서 저분자량 실리콘 성분의 일종인 ‘D4’와 ‘D5’의 함량이 한스바이오메드의 발목을 잡게 된다.
2013년 초까지도 현장실사에 응하지 않던 한스바이오메드는 프랑스 당국과 합의 하에 벨라젤 제품 샘플만 별도로 제출했다. 프랑스 당국은 벨라젤 샘플을 분석한 결과, "D4와 D5 함량이 50ppm 미만으로 검출됐다"고 밝혔다. 정확한 수치는 공개된 기록에서 확인되지 않지만, 당시 프랑스가 인공유방 보형물에 요구한 D4, D5 기준치는 30ppm 미만이었다. 프랑스 당국은 벨라젤과 달리 한스바이오메드가 위탁생산하던 인공유방(Rofil Medical Implants: M-Implant)은 직접 수거했다. 당시 이 제품의 겔 성분 시험 결과가 치명적이었다. 겔에서 D4가 2200ppm, D5가 2080~2110ppm 각각 검출됐다. 당시 시험 기준치를 70배 웃돈 수치였다. 2014년 5월 프랑스 당국이 발간한 ‘2010~2013 프랑스 내 실리콘 인공유방 사용 평가’ 보고서는 한 페이지를 할애해 한스바이오메드가 현장실사를 거부한 과정와 시험 결과를 다루고 있다.
당시 프랑스 당국이 문제 삼은 D4, D5 성분은 흔히 D3~D6로 불리는 저분자량 실리콘군으로 묶여 구분된다. 각 성분마다 위해성의 수준은 다르다. 일부는 해당 물질 그 자체가 인체에 미치는 위해성 또는 발암 등 치명적 병변을 유발할 가능성에 대한 연구가 충분하지 않다. D3의 경우 반복 투여, 즉 장기간 접촉하면 간세포비대, 호흡곤란, 운동실조 등의 부작용을 유발할 수 있다. 유럽화학물질청(ECHA)은 D4를 잔류성·생물농축성·독성 물질로, D5를 고잔류성·고생물농축성 물질로 분류한다. 그러나 인체에 축적될 경우의 위해성에 대한 학계의 중론은 확립돼 있지 않다. 특히, D5의 경우 화장품 제조 과정에서 이른바 ‘촉촉함’을 극대화하는 실리콘 원료로 널리 쓰인다. 다만 D4와 D5가 수생 생태계에 축적되면 장기적으로 유해할 수 있다는 평가에 따라, 유럽에서는 피부에 바른 뒤 바로 씻어내는(wash-off) 화장품에 한해 D4와 D5의 함량을 0.1% 미만으로 규제하고 있다.
그러나 실리콘겔 인공유방 보형물의 경우 보다 엄밀하게 판단해야 한다. D3~D6 물질은 인공유방의 쉘과 겔을 제대로 가공하지 않을 경우 발생하는 대표적인 성분으로 알려져 있다.
축적된 연구들을 종합하면 인공유방의 저분자량 실리콘은 보형물의 쉘을 빠져나와 혈류에 이르고, 림프절, 간, 폐 등 전체 장기로 퍼져나갈 수 있다. 제품이 물리적으로 파열되지 않아도 일어나는 현상이다. 일부 인공유방 이식 여성들이 겪는 근육통, 관절통 등 염증 증상의 원인이 되기도 한다. 이 때문에 저분자량 실리콘 함량을 최소화하고, 인체 유입을 차단하는 게 인공유방 보형물 연구개발의 핵심 과제로 꼽힌다.

2013년 프랑스 "한스 제조 인공유방 D4·D5 함량, 보형물 약화·파열 위험"

문제는 D4, D5와 같은 저분자량 실리콘의 함량이 인공유방 제품의 물리적 강도에도 영향을 준다는 사실이다. 한스바이오메드에서 제품 연구개발에 참여한 전직 관계자는 “D3~D6는 보통 (쉘과 겔의) 경화(열처리로 원재료를 단단하게 만드는 공정)가 제대로 되지 않았을 때 생기는 성분”이라며 “쉘과 겔이 모두 공정과정에서 잘 경화돼야만 제대로 된 물리적 강도를 보여준다”고 말했다.
다시 말해, D4와 D5 검출량이 많다면 인공유방의 강도 역시 의심해야 한다는 뜻이다. 프랑스 사건으로 돌아가 보자. 당시 프랑스 당국도 한스바이오메드가 위탁생산한 인공유방에서 D4, D5가 “비정상적으로 높은 수준”으로 검출되자, 제품의 강도에 의문을 제기했다. 파열의 우려가 커진다는 것이다.
겔의 응집성에 강하게 의문이 제기된다. 이로 인해 보형물이 약화, 파열될 위험성이 있고, 겔이 외피를 통해 확산할 위험성이 있다.

2013.4. 프랑스 국립의약품청, '로필이 유통하고 한스바이오메드가 제조한 M-Implant 유통·사용 금지 결정'
프랑스 당국이 우려한 ‘파열’의 위험성은 인공유방 보형물 삽입 시 가장 조심해야 하는 문제다. 2016~2018년 식품의약품안전처에 보고된 인공유방 이상사례 가운데 두 번째로 많은 사례가 파열(669건)이다. 보형물 주변에 피막이 형성돼 딱딱하게 굳는 '구형구축'(1282건) 다음으로 많이 발생했다.
한스바이오메드는 2013년 프랑스에서 쓰라린 이력을 남긴 뒤 국내 제조허가에 박차를 가한다. 프랑스 사건에서 불거진 D3~D6 실리콘 성분 검출 문제도 불식해야 했다.
국내에서 인공유방을 판매·제조하려면 만일의 경우 발생할 이상사례를 최소화할 만한 성능과 안전성을 갖춰야 한다. 이를 입증하기 위해 공인시험기관에서 여러 기계적, 화학적 인증시험을 통과해야 한다. 이 같은 시험 결과를 허가당국인 식약처에 제출하게 돼 있다. 이 가운데 D3~D6 성분 함량은 ‘추출물질’ 시험을 거쳐 측정한다. 식약처가 발간한 인공유방 특성 시험방법 가이드라인은 “추출물질에 대한 분석은 원재료의 화학적 안전성과 연관된 중요한 시험 항목”이라며 “체내 삽입형 의료기기의 경우, 보형물로부터 용출되어 나올 수 있는 추출물질에 대한 성분 및 정량적 분석은 의료기기의 안전성 평가 측면에서 매우 중요하다”고 강조한다.

저분자량 실리콘 D5 '검출' VS '불검출'...모순된 국내시험 결과의 존재

2015년 8월 12일, 한스바이오메드는 식약처 지정 시험기관 한 곳에 추출물질 시험 3건을 동시에 의뢰한다. 자사가 개발하던 인공유방의 쉘과 겔을 시료로 제출했다. 벨라젤 제품군이 국내 제조허가를 받기 불과 3개월 전이다. 뉴스타파는 당시 시험성적서 사본 3건을 입수하고, 내용이 진본과 같음을 확인했다. 입수한 시험성적서 3건의 결과는 어땠을까.
우선 한스바이오메드는 시험 의뢰 당시 D3~D6 시험 기준을 ‘불검출’로 정했다. 이 기준만 놓고 보면 한스바이오메드는 당시 D3~D6가 일체 검출되지 않는 인공유방 보형물을 시판하겠다는 엄격한 기준을 세웠다고도 볼 수 있다. 뉴스타파가 식약처 규정을 확인하고 공인시험기관에 문의한 결과, 앞서 살펴본 프랑스 사례와 달리 한국에는 D3~D6 실리콘 성분 검출량을 제한하는 공인기준이 없는 것으로 확인됐다. 단, 이 때문에 제조업체가 직접 자체 기준을 시험기관에 제시해야 한다.
의문은 바로 회사 스스로 세운 기준에서 발생한다. 뉴스타파 취재 결과, 한스바이오메드가 같은 날 의뢰한 추출시험의 성적서 3건에 기재된 D5의 검출 결과는 모순된다. 시험성적서 2건에는 인공유방 시료 검사 결과, D5가 검출되지 않았다고 적혀 있다. 0.1mg/L(ppm)까지 확인 가능한 장비로 측정한 결과값이다.
반면, 나머지 성적서 한 건에는 D5가 실제로 검출됐다고 적혀 있다. 이때는 한스바이오메드가 제출한 인공유방 쉘과 겔을 2단계에 걸쳐 응축한 이른바 ‘2차 추출물’을 시료로 썼다. 이 성적서에 따르면 쉘과 겔의 2차 추출물에서 모두 D5가 검출됐다. 쉘에서는 26~152mg/L가 확인됐다. 겔에서는 적게는 86mg/L에서 많게는 2830mg/L까지 검출된 것으로 확인된다. 수치 상으로는 겔에서 검출된 D5 함량이 프랑스 당국이 한스바이오메드 위탁생산 인공유방을 검사했을 때(최대 2110)보다 많이 나온 것이다.
다시 정리하면 D5 검출치가 ‘0’인 성적서가 2건, D5 검출치가 최대 2800mg/L 이상 기록된 성적서가 1건씩 동시에 존재한다. 이처럼 모순된 결과를 보여주는 시험 3건은 모두 같은 시험규격과 시험장비로 진행됐다. 단, 시험에 사용된 인공유방의 시료가 동일한 벨라젤 시제품에서 나온 것인지, 시료 제출 전 임의적으로 가공했을 가능성이 있는지는 확인되지 않았다. 시료의 시험 목적이 '품질관리용'으로 확인될 뿐이다.
한스바이오메드는 D5를 포함해 D3~D6가 모두 검출되지 않았다는 결과가 담긴 성적서만 제조허가를 받기 전 식약처에 제출했다. 이에 따라 식약처가 발급한 벨라젤 제조 허가증에도 “D3~D6 불검출”이라는 추출물시험 기준이 적혀 있다.
▲벨라젤 제조 허가증(허가번호 제허16-1620호)에는 쉘과 겔에서 모두 D3~D6 성분이 검출되지 않아야 한다는 자체 시험 기준이 명시돼 있다.

업무보고 "D3~D6 시험 미량 검출, 성적서 분리"...허가 준수 1년도 못 갔다

문제의 추출물시험의 결과를 의심케 하는 자료는 또 있다. 뉴스타파가 입수한 회사 업무보고 기록도 제조허가 당시, 문제의 실리콘 물질들이 검출되지 않았다고 인증한 시험성적서 결과와 충돌한다. 업무보고 자료는 당시 연구소 측이 황호찬 대표에게도 보고한 문건이다.
2016년 12월로 거슬러 올라간다. 벨라젤 제조허가를 받은 지 1년이 갓 지난 때다. 연구소 측은 업무보고 문건을 작성한다. 당시 한스바이오메드는 벨라젤의 원재료를 변경하고 싶었다. 그러려면 벨라젤의 공인인증시험을 다시 진행해야 했다. 당시 업무보고 문건에는 인증시험 진행 항목과 결과, 대책이 기록돼 있다.
· 항목: D3~D6 정량분석
· 측정값: 2차 추출물 미량 검출
· 2차 시료에서 미량 검출되었으나, 성적서 분리하여 1차 시료만 제출하기로 결정.
- 2016년 12월, 한스바이오메드 업무보고
2016년 말 회사 내부 업무보고 기록에 따르면 당시 벨라젤에서는 저분자량 실리콘 성분이 계속 검출되고 있었다는 정황이 확인된다. 불과 1년 전 획득한 제조 허가사항에도 맞추지 못하는 제품을 만들고 있었다는 뜻이 된다. 숨겨진 시험성적서 결과와 마찬가지로 고도로 응축한 2차 추출물에서 문제의 물질이 검출된다는 점까지 같았다. 해가 바뀌고 작성된 2017년 1월 연구소 업무보고에서도 시험 결과는 바뀌지 않았다.
업무보고 내용 가운데 “성적서를 분리하여 1차 시료만 제출하기로 결정”한다는 의견의 의미는 무엇일까.
회사 전직 관계자 중 한 사람은 “원래 시험 결과가 한 성적서에 같이 나오는데 시험기관에 부탁하면 1차 추출물 성적서와 2차 추출물 성적서를 따로 발급을 받을 수 있다”며 “(문제가 된) 2차 추출물 성적서는 회사에 보관하고, 1차 추출물 성적서만 식약처에 제출하는 방법”이라고 주장했다.
한스바이오메드는 현재 경찰 수사와 식약처 조사를 받고 있다. 벨라젤 제조 허가 전후의 의문스러운 내막 역시 수사와 당국 조사 과정에서 규명돼야 할 과제다.

예고: 중국시장 진출의 막전막후와 '꽌시'

중국시장도 문제였다. 세간에 알려지지 않았을 뿐, 한스바이오메드 벨라젤 인공유방의 성능 문제는 중국에서도 불거졌다. 2017년과 2018년 사이, 회사는 중국시장 확대에 박차를 가한다. 2018년 10월에 이르러 한스바이오메드는 서울 코리아나호텔에서 벨라젤 신제품 출시 기자간담회를 열고 “2019년부터 중국 시장에 진출하겠다”는 포부도 밝힌다. 그러나 당시 회사 내부 자료로 확인되는 중국 현지 인증시험의 결과는 비관적이었다. 뉴스타파는 다음 보도에서 벨라젤 중국시장 진출의 막전막후를 훑는다. 다음 보도의 키워드 중 하나는 ‘꽌시’(关系)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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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자인박종화
웹출판허현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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