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에서] 원청과 교섭은 해도 파업은 안 된다? 이상한 대우조선 중노위 판정문

2023년 02월 21일 17시 00분

  • 중노위, "하청노조는 원청과 교섭만 가능, 단협체결 안 돼"
  • 노동계, “헌법이 보장한 노동3권 침해, 법리 모순적 판정” 
기자님, 오늘 중앙노동위원회가 대우조선해양이 하청 노조와 교섭해야 한다고 판정했어요. 대우조선이 하청노동자들의 실질적 사용자라는 걸 인정한 거예요. 그런데 단서가 있네요. 원청과 단체교섭은 할 수 있는데, 단체협약 체결권과 단체행동권은 인정할 수 없다고 하는데요. 이게 무슨 말인지...단체교섭 여부 말고는 저희가 판단해 달라고 신청한 사안도 아니었는데 말이에요.

최영주 / 노무사(금속노조 법률원 경남사무소)
지난해 12월 30일, 중앙노동위원회(아하 중노위) 판정이 담긴 보도자료가 발표된 날, 이번 사건을 담당한 최영주 공인노무사(금속노조 법률원 경남사무소)가 반가움과 아쉬움이 섞인 목소리로 중노위 판정 결과를 전했습니다. 중노위가 대우조선이 하청노동자의 실질적인 사용자라는 점을 인정하면서도, 하청노조가 원청과 단체협약도 체결할 수 없고, 파업 등 단체행동도 할 수 없다는 이상한 해석을 덧붙였다는 겁니다.
실제로 그랬습니다. 중노위는 보도자료를 통해 이런 판정 결과를 발표했습니다.  
노동안전 등 원청이 실질적인 지배력을 미치는 하청 근로자의 노동조건에 대해 원청 사업주가 하청사업주와 함께 성실히 교섭에 응해야 한다. 그러나 하청 근로자와 원청 간 명시적·묵시적 근로계약 관계가 없는 이상 원청을 상대로 단체협약 체결권 및 단체행동권은 인정될 수 없다.

중노위 ‘대우조선 부당노동행위 구제 재심신청’ 판정 보도자료 중
해석하면, 원청이 하청노동자들과 직접 근로계약을 맺고 있지는 않지만, 노동조건에 실질적인 지배력을 행사하고 있으니까 ‘진짜 사장님’이라 볼 수 있어. 그러니까 원청도 하청노조와 교섭을 해야 돼. 그런데, 그렇다고 하더라도 근로계약상 사장님은 아니니까, 단독으로는 아니고 하청업체 대표들과 함께 교섭해야 해. 그리고 단체협약 체결이나 파업까지는 할 수 없어. 뭐, 이런 이야기입니다.
결과적으로 대우조선이 하청노동자의 진짜 사장님이 맞는다는 건지, 아니라는 건지 쉽게 이해가 안 되는 알쏭달쏭한 판정인데요. 이번 판정을 두고 중노위 관계자는 “노동3권 중 1.5권 정도만 인정한 판정”이라며 “기존에 없던 새로운 관점이 나온 것”이라고 평가했습니다.

'노동 1.5권' 정도를 인정한 판정이라고?

그런데 이런 중노위 관점이 새롭다기보다는 이상해 보이는 건 왜일까요? 단결권, 단체교섭권, 단체행동권으로 구성되는 노동3권은 헌법이 보장하는 노동자의 기본권입니다. 이 세 가지는 서로 분리해 생각할 수 없습니다. 단체교섭의 결과로 단체협약이 체결되고, 단체교섭이 결렬됐을 때 노동자들은 절차를 거쳐 파업 등 단체행동권을 행사합니다. 
이렇게 노동3권은 서로 연결돼 있는데, 이걸 하나하나 분리해 단체교섭권만을, 그것도 단체협약도 체결할 수 없는 반쪽 짜리 단체교섭권만을 뚝 떼어 인정했다는 중노위의 논리가 여전히 잘 이해 되지 않습니다.
어떻게 이런 결론이 나온 걸까요? 자세한 판정 이유를 살펴볼 필요가 있었습니다. 판정서는 통상 판정 결과가 나오고 한 달 후에 공개되는데요. 뉴스타파가 최근 이 판정서를 입수해 살펴봤습니다. 
지난 6월 23일부터 7월 22일까지 대우조선해양 거제 옥포조선소 제1독(dock)에서 0.3평 남짓 철창 속에 스스로 몸을 가둔 채 임금 인상 파업을 벌인 유최안 금속노조 거제조선하청지회 부지회장. 

노동3권 반쪽 낸 중노위의 대우조선해양 판정

판정문에 대한 자세한 얘기에 앞서 먼저 이번 판정이 어떻게 나오게 된 건지부터 간단하게 말씀드리고 갈게요.
지난해 6월, “이대로 살 순 없지 않습니까”라고 절규하며 0.3평 남짓한 철창에 스스로를 가뒀던 대우조선해양 하청노동자들의 파업을 기억하시나요? 
금속노조 거제통영고성조선하청지회(이하 하청노조)는 파업에 돌입하기 전인 지난해 4월, 원청인 대우조선에 단체교섭을 요구했었습니다. 하청업체 대표들과 먼저 교섭을 진행했지만, 하청업체 측이 아주 사소한 것 하나까지도 실권자인 원청의 결재가 필요하다며 뒷짐 지는 탓에 제대로 교섭이 진행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실제로 다수의 전현직 하청업체 대표들은  뉴스타파와의 인터뷰에서 “하청업체는 인력 파견업체에 불과하다. 원청이 주는 하도급 대금이 오르지 않으면 노동자 임금 인상도 어렵다”고 털어놓기도 했었습니다. 즉, 하청업체가 하청노동자들을 고용하고는 있지만, 실권은 원청에 있다는 얘기죠. 
하지만 대우조선은 '하청노동자들의 사용자가 아니'라며 교섭에 응하지 않았습니다. 하청노조는 이런 대우조선의 행위를 '정당한 이유 없이 교섭을 거부하는'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노조법)상 부당노동행위로 보고, 경남 지방노동위원회(이하 지노위)에 ‘부당노동행위 구제 신청’을 했습니다. 하지만 지노위는 “원청은 교섭 당사자 지위에 있지 않다”며 하청노조의 신청을 기각했습니다. 하청노조는 어디까지나 근로계약을 직접 체결한 하청업체와만 교섭을 할 수 있다는 얘기였습니다.
하청노조는 원청이 ‘진짜 사장’이라는 사실을 입증할 수 있는 자료를 추가해 지난해 8월 중노위에 재심을 신청했습니다. 그 결과 중노위는 초심을 뒤집고 원청이 노조법상 사용자의 지위를 보유하고 있다고 인정했습니다. 그래서 원청이 하청노조와의 교섭에 응해야 하고, 이를 거부하는 건 부당노동행위라고 판단한 거죠.
지난해 8월 24일, 대우조선해양 옥포조선소 앞에서 하청노조 조합원들이 앞서 파업을 종결하며 하청업체들과 합의한 고용승계를 이행하라며 시위를 벌이고 있는 모습.

대우조선은 하청노동자의 ‘진짜 사장’이 맞다면서도…

중노위가 대우조선을 하청노동자의 노동조건에 실질적인 지배력을 행사하는 노조법상 ‘사용자’로 인정했다는 건 분명 의미 있는 대목입니다.
그동안 원청과 하청은 노조법 2조의 ‘근로자’와 ‘사용자’의 개념을 두고 서로 다른 해석을 해왔는데요. 참고로, 노조법 2조에 ‘근로자’는 ‘직업의 종류를 불문하고 임금과 급료, 기타 이에 준하는 수입에 의하여 생활하는 자’로, ‘사용자’는 ‘사업주 또는 사업의 경영담당자 등’으로 정의돼 있습니다. 
이 법조항을 두고 기업들은 직접 근로계약을 맺어야만 근로자와 사용자 관계이라는 입장이었고, 하청노동자들은 직접 근로계약을 맺지 않았더라도 원청이 우월적 지위를 이용해 하청노동자를 실질적으로 지배한다면, 노조법상 교섭 당사자 관계라고 주장해 왔습니다. 
전자를 ‘근로계약관계설’, 후자를 ‘실질적 지배력설’이라고 부르는데요. 최근 법원은 ‘실질적 지배력설’을 점차 많이 채택해 사용자의 개념을 폭넓게 인정하는 추세입니다. 그래야 특수고용직, 하청노동자 등 다양한 노동자들의 노동권을 실질적으로 보장할 수 있다고 보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노동자들이 노동위원회를 거쳐 대법원까지 가서 노동자의 적격성을 인정받기에는 긴 시간이 걸립니다. 이런 소모적인 시간과 논쟁을 막기 위해, 노동계에선 근로자와 사용자 개념을 확대하는 ‘노란봉투법(노조법2.3조 개정안)’이 필요하다고 강조하고 있는 거고요.
지난해 12월 23일 대우조선해양 하청노조 등은 노란봉투법(노조법 2.3조 개정안) 연내 제정을 촉구하며 국회 본청 앞에서 농성을 벌였다. 노란봉투법은 해를 넘겨 지난 2월 21일 국회 환경노동위원회 문턱을 넘었다.  
아직 노란봉투법은 제정되지 않았지만, 현재도 노조법상 근로자를 판단하는 세부 기준은 있습니다. 대법원은 아래 5가지 기준에 따라 원청의 실질적 지배를 받는 근로자인지 아닌지를 판단하는데요. 대우조선 판정도 이 기준을 따랐습니다.
① 소득이 특정 사업자에게 주로 의존하는지 여부
② 보수와 계약 내용을 특정 사업자가 일방적으로 결정하는지 여부
③ 사업의 필수적 노무를 제공함으로써 특정 사업자의 사업을 통해 시장에 접근하는지 여부
④ 특정 사업자와 지속적·전속적 관계를 형성하고 있는지 여부
⑤ 어느 정도 지휘·감독 관계가 존재하는지 여부
중노위는 현장 조사와 각종 자료를 통해 대우조선 원하청 관계가 위의 5가지 기준에 모두 해당한다고 봤습니다. 중노위는 “사내 하청근로자들은 사내 하청 협력사와 함께 전적으로 원청 사용자에 경제적으로 종속되는 관계에 있다. 선박 건조의 전체 공정에서 하청 노동자들의 노무 제공이 원청의 간접적인 통제 관리 하에서 이뤄지고 있다는 점도 인정할 수 있다”고 했습니다. 
이를 근거로 중노위는 하청노동자를 대우조선과 교섭할 권리를 가진 근로자, 대우조선을 하청노동자의 실질적인 ‘사용자’로 본 것입니다. 하지만 중노위는 원청의 사용자성을 인정하면서도 “궁극적으로 사내하청 근로자들의 근로조건의 직접적인 결정 주체는 어디까지나 근로계약관계의 사업주인 사내하청 협력사”라는 점을 판정서에 분명히 했습니다.
그러면서 원청의 교섭 책임은 오로지 하청업체와 ‘협조’하는 수준에서만 존재한다며 단체교섭권에 각종 단서를 달았습니다. 원청의 교섭 의무는 독자적이 아닌 하청업체와 함께 참여하는 수준으로만 부여되고, 교섭의 기본적인 절차인 ‘교섭 요구 사실 공고 의무’도 원청에게는 없다고 했습니다. 
더 나아가 교섭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다고 해도 하청노조가 원청을 상대로 파업 등 단체행동까지 할 수는 없다고 판단했습니다. 단협체결이나 단체행동은 여전히 근로계약상 사업주인 하청업체를 상대로만 가능하다고 선을 그은 것입니다.

“현행 노조법상 원청-하청업체 ‘함께’ 교섭만 가능”

어딘가 이상합니다. 앞에서는 분명 하청노동자와 근로계약 관계가 없더라도 원청을 사용자로 본다고 판단해 놓고, 뒤에서는 근로계약 관계를 이유로 원청에게 독자적인 교섭 의무가 없다는 판단하다니요. 이렇게 앞뒤가 다른 판단을 한 이유가 중노위 판정서에는 이렇게 설명돼 있습니다.
중측적 노무 제공관계에서의 사용자의 외연을 노동조합법의 해석을 통해 확장하더라도, 노조법상 사용자 개념의 확정의 문제가 아직 입법적으로 해결되지 않은 상황에서는 이는 최소한에 머무는 것이 바람직하다

중노위 ‘대우조선 부당노동행위 구제 재심신청’ 판정서 중
말이 좀 어렵게 느껴지시나요? 풀어서 해석해 보면 이렇습니다. 
‘원하청 다단계 노동구조 속에서 대우조선이 하청노동자의 노동조건에 실질적인 지배력을 행사하는 사용자라는 점은 인정하지만, 현재는 노조법이 불완전한 상황이기 때문에 노동권을 최소한으로만 인정해야 한다.’
결과적으로 중노위는 200쪽이 넘는 판정서의 절반 이상을 할애해 대우조선이 얼마나 하청노동자에게 실질적인 영향력을 미치고 있는지를 설명해 놓고, 정작 뒤에 가서는 현행 노조법을 핑계로 노동3권을 잔뜩 축소해 해석한 것이죠. 

“노동3권 침해하는 모순적, 반헌법적 판정”

이렇게 앞뒤가 다른 판정을 두고 이 사건 당사자인 거제통영고성조선하청지회 이김춘택 사무장은 “현실과 맞지 않는 억지스러운 논리”라고 비판했습니다.
 원청이 사용자면 사용자고, 아니면 아닌 거죠. 이번 중노위 판정은 그 개념을 어정쩡하게 만들어 놨어요. 원청을 실질적 사용자로 인정했다면 당연히 원청과 하청노조가 독자 교섭도 할 수 있어야 하죠. 현실적으로도 말이 안 되는게, 현재 사내 하청업체가 100여 개나 되는데, 원청이 어떻게 일일이 하청업체 교섭에 함께 참여할 수 있겠어요. 중노위가 대우조선이 하청노동자의 실질적 사용자라는 건 부정할 수 없는데, 원청에 모든 교섭 의무를 부여하는 건 또 부담스러워서 이런 억지 주장을 폈다고 봐요.

이김춘택 /거제통영고성조선하청지회 사무장
노동법 전문가인 조경배 순천향대 법학과 교수도 “대우조선 판정은 기본적으로 노동위원회의 권한을 넘어선 반헌법적 판정”이라고 말했습니다.
하청노조에서 중노위에 재심을 신청한 건 대우조선이 교섭에 응하지 않은 것이 부당노동행위인지를 판단해달라는 거였잖아요? 그러면 그것만 판단하면 되는데, 핵심 사안을 넘어서 무리한 판단을 했어요. 중노위가 노동자들의 파업 등 단체행동을 막으려고 애쓰다 보니 우리 현실에 맞지 않는 각종 형식 논리를 가져와 모순적인 판정문을 만든 거죠. 결과적으로 이번 판정은 논리적으로도 법적으로도 말이 안 됩니다. 우리나라 노동3권(단결권, 단체교섭권, 단체행동권)은 법률에 다른 규정이 없는 한 세 가지 권리가 다 노동자에게 보장돼야 하는데, 노동위원회가 근거도 없이 반헌법적 판정을 내린 거예요.

조경배 / 순천향대 법학과 교수

“실질적 노동3권 보장” 강조한 CJ대한통운 판정과도 배치

이번 대우조선 판정이 더 의아하게 느껴지는 건 앞서 중노위가 내린 다른 판정과도 배치되기 때문입니다. 대표적인 게 택배노조가 CJ대한통운을 상대로 제기한 ‘부당노동행위 구제 재심신청’에 대한 판정입니다. 
원청인 CJ대한통운은 그동안 특수고용노동자인 택배기사들이 단체교섭을 요구할 때마다 '교섭 대상은 대리점주'라며 대화를 거부해왔는데요. 중노위는 2021년 6월, 이런 CJ대한통운 측의 주장이 틀렸다고 판정했습니다. 
CJ대한통운이 택배기사들의 실질적인 지배력을 행사하는 사용자이고, 택배노조가 요구한 교섭을 거부하는 건 부당노동행위에 해당한다고 판단한 건데요. 이 판정서에서 중노위는 “CJ대한통운은 ‘단독 또는 대리점주와 공동으로’ 택배기사 노조와의 교섭에 성실하게 임해야 하고, 교섭 요구 사실도 공고해야 한다”고 했습니다. 원청은 교섭 요구 사실을 공고할 필요도 없고, 오로지 하청업체와 ‘함께’ 교섭할 책임만 가진다는 대우조선 판정과는 크게 다른 결론이죠. 당시 중노위는 판정문에 이런 해석도 덧붙였습니다.
노조법이 사용자의 개념을 구체적으로 규정하지 못하고 있는 입법 흠결 상황에서는 헌법과 노조법 등의 취지를 고려해 근로자의 노동3권을 실질적으로 보장하고 그 본질적인 내용이 침해되지 않도록 해석, 적용해야 할 것이다

중노위 ‘CJ대한통운 부당노동행위 구제 재심신청’ 판정서 중
결과적으로 중노위는 대우조선이나 CJ대한통운 판정에서 모두 현행 노조법에 결함이 있다고 본 건데요. 하지만 결론은 전혀 다릅니다. 대우조선의 경우에는 법이 미비하기 때문에 노동 3권을 ‘제한적으로’ 인정해야 한다고 해석했고, CJ대한통운의 경우에는 법이 미비할 때는 노동 3권을 실질적으로 보장하는 방향으로 해석해야 한다고 판단한 것입니다. 
  지난 1월 12일 서울행정법원은 CJ대한통운이 중앙노동위원회를 상대로 낸 '부당노동행위구제 재심판정취소 소송'에서 원고 패소 판결했다. 사진은 법원 판결 직후 택배노조의 기자회견 모습 (출처 : 연합뉴스)<br>
그리고 최근 서울행정법원은 CJ대한통운에 대한 중노위의 판정이 옳다는 점을 다시 한 번 확인해 줬습니다. 지난 1월 12일, 서울행정법원 행정12부(재판장 정용석 부장판사)는 CJ대한통운이 중노위 판정을 취소하라며 법원에 낸 행정소송에서 “원청은 택배노동자에 대한 실질적 지배력을 가진 사용자의 지위에 있다”며 노동자들의 손을 들어줬는데요. 
이 판결에서 행정법원은 원청이 하청노동자의 실질적인 사용자의 지위를 가지고 있을 경우, 노동3권을 어떻게 해석해야 하는지도 분명하게 명시했습니다. 판결문에는 “노조법상 ‘사용자’ 개념의 해석 문제는 단체교섭권, 단체행동권 등 전반적인 근로 3권 보장과 유기적으로 연결돼 있다. 노동조합법은 노동조합에 가입한 근로자와 사용자 사이에 반드시 직접적인 근로계약관계가 존재하는 경우에 한해 단체교섭과 단체협약 체결이 가능함을 전제로 하고 있지 않다”고 돼 있습니다.
즉, 법원은 중노위의 대우조선 판정과 달리, 하청노조와 원청 간 근로계약 관계가 없어도 단체협약 체결이나 단체행동이 가능하다고 본 겁니다.
그러면서 법원은 이렇게 해석하지 않을 경우 “하청노조가 쟁의행위를 하더라도 원청 사업주가 대체 근로를 사용해 하청 근로자의 쟁의행위를 무력화 할 수 있다. 원청이 다면적 노무관계 형성을 통해 근로3권 보장과 관련된 노무관리의 위험을 회피하는 수단으로 악용될 위험 또한 있다"고도 덧붙였습니다.
정리하면, ‘원청은 더이상 대리점주 등 하청업체를 방패로 삼아 하청노동자의 노동3권 보장을 회피해선 안 된다’는 건데요. 이런 법원의 판결은 택배노조를 비롯해 수많은 하청노동자들의 박수를 받았습니다. 
정부세종청사에 있는 중앙노동위원회 (출처 : 뉴시스)

판정 논란에 대한 입장, 공익위원에게 직접 물어보니

이쯤에서 궁금해집니다. 이번 대우조선 판정을 한 중노위 공익위원들은 이런 법원 판결에 어떤 입장일까? 
중노위 판정은 3명의 공익위원이 합니다. 대우조선 판정에는 박종희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주심), 문무기 경북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이철수 서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가 참여했습니다. 뉴스타파는 이 3명의 공익위원에게 직접 연락해 ‘대우조선 판정 논란에 대한 입장’, ‘앞선 중노위 판정과 다른 결론을 내린 이유’ 등을 물었습니다.
공익위원 중 문무기 교수는 “공익위원 간 서로 의견이 많이 엇갈렸던 판정"이라고 했습니다. 문 교수는 “개인적으로는 하청노조의 단체협약 체결과 단체행동권에 대한 판단은 이번 판정문에서 빼야 한다는 입장이었다”며 “판정문은 주심이 주도적으로 작성하기에 본인이 자세히 설명하는 건 적절치 않다”고 말했습니다. 이철수 교수는 서울대 홍보팀을 통해 “이번 판정의 주심이 아니었기 때문에 인터뷰하기 어렵다”는 입장을 전했습니다. 
주심인 박종희 교수와도 어렵게 연락이 닿았습니다. 박 교수는 “언론과 인터뷰를 하지 않는다”면서 이런 말을 남겼습니다. 
누군가는 이번 판정을 보고 ‘물이 반밖에 안 남았네’라고 해석할 수도 있고, 누군가는 ‘반이나 남았네’라고 해석할 수도 있겠죠. 기존에는 원청을 상대로 한 단체교섭 자체를 전혀 인정하지 않지 않았는데, 이번 판정에서는 단체교섭까지는 인정했으니까요.

박종희 고려대 교수 (중노위 대우조선 사건 주심 공익위원)
하지만 물잔에 물이 가득 차 있는 판정과 판결이 이미 존재하는 상황에서, 이번 대우조선 판정을 두고 ‘물이 반이나 남았네?’라고 낙관적으로 해석할 사람이 과연 얼마나 될까요?
이번 사건을 담당한 최영주 노무사는 오히려 대우조선의 판정 사례가 다른 하청노동자들에게 악영향을 끼칠까 우려된다고 말했습니다. 
지금까지 단체교섭과 단협 체결을 구분해서 해석한 사례는 단 한 차례도 없었어요. 이번 판정은 원청이 하청업체와 하청노동자간 교섭 석상에 숟가락 하나 더 얹으라는 것밖에 안 되는 거예요. 결과적으로 중노위가 대우조선 원청의 사용자성을 인정했다는 점에서 한 발 나아간 건 맞지만, 좋아할 수 있는 판정은 못 돼요. 아쉬움이 너무 많죠. 오히려 원청의 사용자성 문제를 다투는 다른 판정에 민폐를 끼칠까 봐 걱정입니다.

최영주 / 노무사(금속노조 법률원  경남사무소)
중노위 판정에 불복하는 당사자는 판정문을 송달 받은 날부터 15일 이내에 행정소송을 제기할 수 있습니다. 대우조선은 행정소송을 제기한다는 입장입니다. 하청노조 측도 소송을 고민하고 있습니다. 앞으로 진행될 행정소송 재판에서는 어떤 판결이 나올까요? 부디 판결에 앞서 더 이상의 원하청간 소모적인 논쟁이 없도록 하루빨리 노란봉투법이 제대로 제정됐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제작진
취재홍여진
디자인이도현
출판허현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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