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우조선, 하청 대금 멋대로 주면서 ‘소송 불가’ 합의 요구

2022년 10월 14일 10시 00분

2022년 10월 14일 10시 00분

공적 자금 12조 원이 들어간 대우조선해양이 재벌기업 한화에 단돈 2조 원에 팔리게 됐다. 20여 년 만에 국책은행인 산업은행 품을 떠나 새 주인을 찾게 된 것이다. 하지만 방만 경영, 부실 경영의 희생양이 된 노동자들, 특히 하청노동자들이 받아 온 고통은 여전히 남아 있다. 지난 10년간 폐업한 120개가 넘는 하청업체, 30% 이상 삭감된 하청 노동자 임금과 관련된 문제다. 뉴스타파는 2018년 시작된 공정거래위원회 조사 자료, 대우조선해양 직원들이 관련된 각종 판결문을 입수해 대우조선해양의 어제와 오늘을 조망하는 기획을 준비했다. 세계 1위 조선기업의 어둡고 참혹한 현실이다. <편집자 주>
대우조선해양(이하 대우조선)이 하도급 대금을 주먹구구식으로 지급하면서, 하청업체에 "민형사상 소송을 제기하지 못한다"는 내용의 합의서, 즉 부제소합의에 서명하도록 종용해 온 사실이 확인됐다. 대우조선은 매달 정산대금을 지급하면서 협력업체에 부제소합의를 요구했다.  
이런 사실은 뉴스타파가 폐업한 하청업체들이 2015년부터 최근까지 대우조선을 상대로 제기한 52건의 민사 소송 판결문을 분석하는 과정에서 확인할 수 있었다.  
부제소합의는 하청업체에겐 치명적인 족쇄였다. 일단 하청업체들은 부제소합의에 동의하지 않으면 하도급 대금을 받을 수 없었다. 정산합의서에 부제소합의가 아예 포함돼 있기 때문이다. 하청업체는 미정산 하도급 대금이 발생해도 원청인 대우조선을 상대로 소송 해 이길 수도 없었다. 실제로 많은 하청업체들이 원청인 대우조선을 상대로 '미지급 하도급 대금을 달라'고 소송을 제기했지만, 법원은 부제소합의를 근거로 대우조선의 손을 들어주고 있다.
하청업체들은 법원이 현실을 모르고 판결한다며 억울해 했다. "당장의 재정난을 해결하기 위해 어쩔 수 없이 부제소합의가 포함된 정산합의서에 동의한 것뿐이었다", "하청 노동자의 밀린 임금을 일부라도 해결해야 한다는 절박감에 대우조선이 제시하는 하도급 대금을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다"는 것이다. 
지난 2018년 5월 10일 현대중공업과 대우조선해양의 하청업체 대표들이 서울 여의도 중소기업기술정보진흥원 수도권평가부 앞에서 하도급 갑질 피해 직권 조사 실시를 요구하는 기자회견을 열었다. (출처:연합뉴스)

원칙 없이 하도급 대금 결정되는데 '부제소합의'까지 요구

대우조선 하청업체였던 A사는 2015년 11월부터 2016년 4월까지 대우조선 선박에 전력을 원활하게 공급되게 하는 장비를 설치했다. 그리고 매달 말일 대우조선과 정산하면서 '정산 대금에 대해 어떠한 민형사상 책임도 묻지 않기'로 하는, 일명 부제소합의가 담긴 정산합의서에 서명했다. 
문제는 2016년 5월 대우조선이 수주 감소를 이유로 A사에 계약 해지를 통보하면서 시작됐다. 2016년 10월 A사는 대우조선으로부터 받지 못한 미지급 하도급 대금을 받기 위해 민사소송을 제기했다. 원청인 대우조선의 작업 지연으로 낭비된 인건비, 재작업으로 인해 발생한 인건비 등을 달라는 요구였다. 
소송 과정에서 대우조선은 “A사의 요구가 부제소합의에 정면으로 위배된다”고 주장했다. 법원은 대우조선의 주장을 그대로 수용했다. "미지급 공사대금 청구와 자재 지급 지연 기간 동안의 인건비 부분 등은 정산 합의를 통해 이미 정산받은 공사대금에 관한 것이어서 부제소합의에 반한다"며 A사 패소를 결정했다. 
그런데 뉴스타파가 52건에 달하는 대우조선 관련 판결 내용을 살펴보니, A사와 같은 사례는 두 건이나 더 있었다. 모두 부제소합의 때문에 하청업체가 패소한 사건이었다. 아래 사진은 그 중 한 사건의 판결문에 들어 있는, 대우조선과 하청업체가 맺은 정산합의서 중 부제소합의 관련 내용이다. 
대우조선과 한 하청업체가 맺은 정산합의서. 6항이 부제소합의 내용.  
정산합의서 내용만 보면, 원청과 하청 쌍방이 부제소합의에 동의한 걸로 보인다. "위 공사 기간 중 상기 공사의 물량, 단가, 공사대금은 쌍방의 확인 및 합의 하에 산출되었으며, 기성(하도급 대금) 확정 및 정산 금액에 대하여 상호 전혀 이의가 없음을 확인한다(정산합의서 4항)"고 적혀 있어서다.
하지만 하청업체의 주장은 달랐다. 뉴스타파와 만난 전현직 대우조선 하청업체 대표들은 하나같이 "정산합의서에 사인하지 않을 경우 당장의 재정난을 해결할 수 없기 때문에 서명할 수밖에 없었다", "대우조선이 제시한 하도급 대금이 좀 적더라도 하청 노동자들의 임금이 밀리고 있었기 때문에 당장 받아 해결해야 했다"고 말했다.
하도급 대금을 지급받아야 할 약자 입장에서 밀린 직원 임금을 일부라도 해결해야 한다는 절박감에 대우조선이 제시하는 정산합의서에 사인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 전 대우조선 하청업체 B사 대표
전현직 하청업체 대표들은 “(대우조선으로부터) 나중에 하도급 대금을 더 챙겨줄 테니 일단 정산합의서에 서명하라고 요구받았다"고도 했다. 전 대우조선 하청업체 C사 대표는 "대우조선 측에 '적자로 직원 월급을 주기 힘들 정도'라고 말하면 돌아오는 말은 '다음 달에 더 줄 테니 이번 달만 참아보자'였다. 원청의 말을 믿고 정산합의서에 사인했지만, 바뀌는 것은 없었다"고 말했다.
부제소합의로 인한 문제는 단순히 ‘대우조선을 상대로 소송을 할 수 없는’ 것에서 그치지 않는다. 대우조선이 하도급 대금을 주먹구구식으로 지급하는데 있어 부제소합의는 유용한 무기가 되고 있다. 아무리 억울해도 원청을 상대로 싸움도 걸 수 없는 처지가 된 하청업체들을 대우조선은 마음대로 쥐고 흔들 수 있었다. 전현직 하청업체 대표들이 “아무런 기준이나 원칙없이 하도급 대금이 결정되고 있음에도 하청업체의 소송 가능성을 원천 차단했다는 것이 과연 온당한 처사인가”라고 지적하는 이유다. 

"법적 분쟁 시 정산합의서 근거로 대응하라"

공정거래위원회와 대우조선 간에 진행된 행정소송 과정에서 제출된 대우조선 내부 문건에선, 대우조선 스스로 하도급 대금 정산에 문제점이 많아 하청업체의 불만이 늘고, 법적 분쟁이 발생하고 있다는 사실을 인지하고 있었음을 보여주는 내용도 발견됐다.  
2014년 대우조선 협력사지원팀에서 작성한 '수정추가 공사의 합리적 개선 CoP'라는 제목의 문건(아래 사진)에 따르면, 대우조선은 추가 공사에 따른 하도급 대금을 집행하는 과정에서 △하청업체가 시수에 대한 정확한 내용을 확인할 수 없고 △월말에 추가 시수를 일괄 집행하면서 상세한 내용을 하청업체에 공유하지 않아 불만이 증가하고 있고 △시수에 대한 상호 합의가 없어 폐업한 하청업체가 미지급 대금 정산을 요청하는 등 법적 분쟁이 발생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여기서 ‘시수’란 하청업체가 위탁받은 물량을 완성하는 데 필요한 시간으로, 하도급 대금을 결정할 때 가장 중요한 기준이 된다. 
대우조선은 또 해당 문서에서 이런 문제를 해결해 온 방식을 "현재 법적 분쟁 발생 시 기성 집행 후 '정산합의서'를 근거로 대응하고 있음"이라고 설명하고 있다. 다시 말해 대우조선이 하청업체에 지급하는 하도급 대금의 부당함을 알면서도 부제소합의가 포함된 정산합의서를 이용해 각종 법적 분쟁 소지를 원천적으로 차단해왔다는 것이다.
대우조선을 상대로 한 하청업체의 각종 소송을 대리해 온 김남주 변호사는 "대우조선해양 내부 문건들을 보면, 자신들이 하도급 대금을 적정하게 지급하지 않았다는 걸 스스로도 분명히 알고 있었다. 그런데도 문제를 해결하기보다 법적 책임을 회피하기 위해 하도급 회사들에 부제소합의 취지가 포함된 정산합의서를 작성하도록 사실상 강요한 것으로 그 의도가 매우 나쁘다"고 말했다.   
2014년 대우조선 협력사지원팀에서 작성한 ‘수정추가 공사의 합리적 개선 CoP'라는 제목의 문건 내용 중 일부. 추가 공사 하도급 대금에 대한 현상과 문제점, 개선안이 담겨있다. 하지만 하청업체 대표들은 이 문건에 적힌 개선안이 제대로 지켜지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 

하청업체, ‘부제소합의’에 발목 잡혀 줄줄이 패소

이런 사정에도 불구하고 법원은 하청업체가 부제소합의에 서명한 것은 분명한 사실이라며 하청업체가 제기한 소송마다 대우조선의 손을 들어주고 있다. 하청업체가 미지급 하도급 대금을 받기 위해 대우조선을 상대로 민사소송을 제기하면, 법원은 부제소합의의 효력을 인정해 재판 청구가 적법하지 않다는 의미의 각하 결정을 내렸다. 아래는 부제소합의로 인해 하청업체가 패소한 사건의 판결문 내용 중 일부다.
시수 산정 오류로 인한 미지급 하도급대금 청구 부분과 5% 추가 시수 미적용으로 인한 미지급 하도급대금 청구 부분은 부제소합의에 반하여 제기된 것으로 권리보호의 이익이 없어 부적합하다. 

- 창원지법 통영지원 판결문 (2017가합10363) 
야간작업, 추가수정공사에 대한 하도급대금 청구는 정산 합의를 통해 이미 정산받은 하도급대금, 인건비 등에 관해 그 금액의 부족을 다투는 것이어서 부제소합의에 반한다. 

- 창원지법 통영지원 판결문 (2017가합10172) 
법원은 대우조선이 하청업체에 부제소합의를 강요한 사실은 인정되지 않는다고도 판단했다. 2021년 11월 창원지법 통영지원은 "원고(하청업체)가 제출한 증거만으로는 피고(대우조선)가 원고의 궁핍한 사정을 이용하거나 원고를 강요하여 원고로 하여금 이 사건 각 정산합의서에 날인하도록 하였다고 인정하기에 부족하다"며 원고 패소 결정을 내렸다.
이런 법원의 판단 때문일까. 뉴스타파 취재 결과, 부제소합의는 여전히 현재 진행 중이다. 익명을 요구한 대우조선 하청업체 D사 대표는 "부제소합의는 여전히 정산할 때 이뤄지고 있다. 불합리하다고 생각하지만, 정산합의서에 서명을 안 하면 다음 계약이 어려워서 별수 없지 않냐"고 말했다. 아래는 D사 대표가 공개한 대우조선과의 정산합의서 내용 중 일부.  
위 정산 합의는 대금 정산에 대해 쌍방 당사자가 충분한 협의를 거쳐 정당하게 합의하였고, 정산 과정에서 대금이 부당하게 결정되었거나 감액된 사실이 없으므로, 쌍방 당사자는 정산 합의의 정당성을 확인하고 추후 민형사상 어떠한 책임도 묻지 아니한다. 

- 대우조선과 대우조선 하청업체 D사 간의 정산합의서 6항 
지난 7월 29일 서울 용산 대통령실 앞에서 대우조선 하청노동자들이 대우조선의 고소, 손해배상 소송에 항의하는 기자회견을 열고 있다. (출처:연합뉴스) 

부제소합의의 가장 큰 피해자는 '하청 노동자'

폐업한 하청업체 대표들은 "부제소합의로 인해 하청업체가 폐업되는 일이 많다"고 했다. 또 "대우조선에 미지급된 하도급 대금을 달라고 요구해도 부제소합의 때문에 거절당하는 경우가 많았다", "그로 인한 피해는 고스란히 하청업체가 지게 돼 회사 문을 닫을 수밖에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고 했다. 
계속되는 일방적인 하도급 대금 집행으로 부채가 눈덩이처럼 불어났고, 직원 임금마저 줄 수 없는 상황이 됐습니다. 대우조선에 구제 요청을 했지만, 돌아오는 대답은 '운영을 잘하지 못 해서 그렇다'는 대답과 '계약서와 정산서에 서명하지 않았냐'는 것뿐이었습니다.

 - 전 대우조선 하청업체 E사 대표 
부제소합의가 가져온 결과는 고스란히 하청 노동자들에게 고통스럽게 전가됐다. 대우조선이 지급해야 할 하도급 대금을 제대로 주지 않으면, 하청 노동자들의 임금이 깎이고 심지어 임금 체불로 이어지기 때문이다. 폐업이라도 하게 되면 제일 먼저 일자리를 잃는 것 역시 하청노동자들이다. 
뉴스타파는 대우조선에 "여전히 하청업체와 정산 합의 당시 부제소합의를 하는지, 그렇다면 하는 이유가 무엇인지" 등을 전화와 문자 등을 통해 물었다. 하지만 대우조선 측은 “뉴스타파의 질문을 받지 않겠다”는 답변만 보내왔다. "지난 취재 시에도 우리 회사의 입장이 충분히 반영되지 않았기에 답변드릴 게 없다"고 했다.
제작진
취재이명선 홍여진
디자인이도현
출판허현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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