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29 이태원 참사'의 핵심 책임자이자 피의자인 박희영 용산구청장이 수시로 경찰 수사상황을 보고받았던 사실이 뉴스타파 취재 결과 확인됐다. 용산구청의 내부 '수사 동향보고'를 통해서다. 적법 절차에 따른 보고였다고는 하지만, 박 구청장이 '증거인멸 의혹'을 받고 있는 만큼 악용 가능성이 있다는 비판이 나온다.
뉴스타파, 용산구청 '수사 동향 보고' 문건 13개 입수
뉴스타파는 더불어민주당 천준호 의원실을 통해 이태원 참사 이후 용산구청이 만든 '수사 동향보고' 문건 13개를 입수했다. 모두 '이태원 참사 경찰 특별수사본부'(이하 특수본) 수사를 받고 있는 용산구청 각 부서에서 작성한 것들이다. '수사 동향보고'에는 경찰이 언제 어떤 자료를 요구해 가져갔는지, 압수수색해 간 자료는 무엇인지, 어떤 용산구청 직원이 언제 무슨 이유로 경찰 조사를 받았는지가 적혀 있다.
뉴스타파가 확보한 용산구청의 '수사 동향 보고' 문건.
용산구청 '수사 동향 보고' 문건에는 이태원 참사 수사와 관련해 경찰의 용산구청 직원 출석 요구 내용, 자료 제출 요구 내용 등이 적혀 있다.
박희영 구청장과 직접적으로 연관된 내용도 들어 있다. 과거 용산구청의 핼러윈 데이 예방 대책 문서, 박희영 구청장 시기 대량으로 허가된 '춤 허용업소' 관련 자료 등이다. 이태원 참사 수습에 방해가 됐던 것으로 알려진 이태원 내 춤 허용업소의 약 90%는 박 구청장 취임 이후 허가됐다. 경찰 특수본은 박 구청장이 허가 과정에서 특혜나 편의를 줬는지 살펴보고 있다.
'수사 동향보고'에는 박 구청장의 이태원 참사 책임과 관련된 내용인 '박 구청장에 대한 용산구청 각 부서의 주요 업무보고', '박 구청장의 지시사항' 자료도 경찰이 가져갔다고 나와 있다.
'수사 동향 보고'는 모두 구청장 직속부서인 감사담당관실로 전달됐으며 구청장 비서실이나 비서실장에도 전달됐다. 업무상 과실치사상 혐의로 경찰 특수본 수사를 받고 있는 박희영 구청장이 경찰 수사 상황을 속속들이 챙겨봤다는 얘기다.
용산구청 '수사 동향 보고' 문건. 경찰이 박희영 용산구청장의 혐의와 관련해 여러 자료를 압수해 갔다고 내부 보고했다.
용산구청 작성 '이태원 참사 수사 동향 보고'는 총 28건
용산구청 정보 목록에 따르면, 이태원 참사 이후 지금(12월 20일 현재)까지 용산구청이 작성한 '수사 동향보고'는 모두 28개다. 뉴스타파가 확보하지 못한 문서가 15개나 더 있다. 이 중에는 이태원 참사 관련 핵심 부서인 용산구청 안전재난과, 건설관리과 등이 만든 수사 동향보고도 있다. 박 구청장이 이 28건의 수사 동향 보고를 참고해 경찰 수사에 대비해 왔던 게 아닌지 의심된다.
의심이 짙어지는 건 박희영 구청장과 용산구청 간부들이 현재 증거인멸 의혹을 받고 있다는 사실 때문이다. 경찰 특수본은 '이태원 참사 직후 박 구청장이 휴대전화를 바꾸고, 휴대전화 비밀번호도 참사 약 한 달이 지난 후에야 경찰에 제공했다'고 발표한 바 있다. 용산구청 안전건설교통국장도 참사 직후 '휴대전화를 화장실 변기통에 빠뜨렸다'고 밝힌 바 있다. 어제(19일) 경찰은 박희영 구청장이 증거인멸을 시도해 신병 확보가 불가피하다며 박 구청장에 대한 구속영장을 신청한 상태다.
'이태원 참사 국정조사 특별위원회'에 참여하고 있는 천준호 의원은 "현재 박희영 용산구청장과 일부 용산구청 간부가 핵심 피의자고 증거인멸 의혹까지 받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핵심 피의자에게 수사 진행 상황에 대한 보고가 이뤄진다는 것은 우려스러운 일이다. 참사에 대한 책임을 회피하기 위해 동향 정보를 악용할 가능성을 배제할 수가 없다"고 말했다.
지난달 7일 국회 행정안전위원회에 출석하고 있는 박희영 용산구청장의 모습.
용산구청, "수사 동향 보고 적법하게 작성"
용산구청 측은 '수사 동향보고'가 모두 적법 절차에 따른 것이라는 입장을 내놨다. 실제로 용산구 행정감사 규칙에 따르면, 수사기관으로부터 수사를 받을 때는 수사 실시 기관명과 수사 대상자의 정보, 수사의 목적, 그 밖의 참고사항을 기관장에게 보고하도록 돼 있다. 다른 지방자치단체도 같은 규정을 갖고 있다.
하지만 이 제도의 본래 목적은 공무원의 범죄 연루 사실을 소속기관의 장에게 알려 적절한 인사 조치를 취하게 하기 위한 것이다. 만약 소속기관의 장, 즉 구청장이 범죄의 핵심 피의자라면 얘기가 달라진다. '수사 동향보고'가 구청장의 수사 상황 파악과 증거인멸 등에 악용될 수 있기 때문이다. 설사 범죄에 연루된 사실이 드러나도 선출직인 구청장에 대해선 인사상 조치를 할 수 없다는 점을 감안하면 문제는 더 심각해진다.
천준호 의원은 "안전 관리와 재난 대비에 대한 책임은 일차적으로 지방자치단체에게 있다. 그렇기 때문에 용산구청은 그 책임을 피할 수가 없는 상황이다. 안전 관리 문제에 대한 과실 여부와 더불어 본인의 책임을 회피하기 위해 수사 동향보고 등을 활용했는지도 면밀하게 (국정조사를 통해) 검증할 계획이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