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법 전단지, 노점상 단속"... 용산구청 '핼러윈데이 대책 문건' 입수

2022년 11월 09일 15시 00분

'이태원 참사' 전 용산구청이 작성한 '핼러윈데이 대책 문건'을 뉴스타파가 입수했다. 하지만 문서 어디에도 수만 명의 핼러윈데이 인파를 어떻게 관리할 것인지, 교통은 어떻게 통제할 것인지에 대한 내용은 없었다. 용산구청이 준비한 안전대책은 '옥외간판 점검, 불법 노점상 단속, 불법 광고물 제거'뿐이었다. 안전대책이 절실했던 핼러윈데이 행사를 용산구청이 '전시행정'의 기회로 삼았다는 비판이 제기된다. 

용산구청 '핼러윈데이 대비 대책' 문건 입수

용산구청은 이태원 참사 하루 전인 지난달 28일 "2022년 할로윈데이 대비 이태원 일대 특별 야간근무 실시"라는 제목의 내부 결재문서를 만들었다. 이태원 일대 시설물을 점검하고 안전조치를 하겠다는 게 주 내용이었다. 주요 점검사항에는 '노후 옥외간판의 고정상태 확인'이라고 기재돼 있다. 오래된 간판이 떨어질 수 있으니 점검하겠다는 것이다. 이 계획은 용산구청 안전재난과의 요청으로 건설관리과가 만들었다. 
그런데 문제는 뉴스타파가 입수한 이 문건에 있는 내용이 용산구 내 안전 책임을 맡고 있는 안전재난과가 핼러윈데이를 맞아 준비한 유일한 대책이라는 점이다. 용산구청이 핼러윈데이에 앞서 생산한 공식 문서들을 확인한 결과, 안전재난과는 건설관리과 등 일부 부서에만 "시설물 점검을 철저히 해 달라"는 협조 공문을 보냈다. 인파 및 교통 관리에 대한 대책은 없었다.
이태원 상인과 주민들은 황당하다는 반응을 보였다. 이태원 상인 A 씨는 "지금까지 간판이 떨어져서 사람 죽거나 다쳤다는 얘기는 한 번도 못 들었다. 점검은 할 수 있는데 굳이 핼러윈데이 때 해야 할 필요가 있는지는 모르겠다"고 했다. 다른 상인 B 씨도 "오래된 간판이 떨어져서 사람이 죽었다는 얘기는 한 번도 못 들었다"고 말했다. 
뉴스타파가 입수한 용산구청의 '핼러윈데이 대비 안전 대책' 문건. 문서들에는 핼러윈데이 인파, 교통 관리에 대한 내용이 없었다. 

용산구청, 참사 뒤에도 '전단지' 제거... 참사 장소 근처 있었으면서 '모르쇠'

뉴스타파가 확보한 또 다른 문서에 따르면, 용산구청은 참사가 벌어진 당일 불법 광고물 단속도 계획하고 있었다. 용산구청은 이 또한 시민 안전을 위한 시설물 점검의 일환이라고 내부 문서에 명시했다. 시민의 안전을 지키기 위한 대책이 '전단지·현수막·벽보 제거'였던 것이다. 
용산구청은 참사가 난 직후인 지난달 30일 새벽 4시 이후에도 계속 전봇대에 붙은 전단지를 떼는데 인력을 쓰고 있었다. 이후 '핼러윈데이 이태원 사고 일일 보고'라는 문서까지 만들었는데, 전단지를 얼마나 제거했는지 보고하는 내용이 전부였다. 
용산구청이 10월 30일 작성한 '핼러윈데이 이태원 사고 일일 보고' 문서. 참사가 벌어진 뒤에도 용산구청은 직원들을 동원해 전봇대에 붙은 전단지를 떼고 있었다고 적혀 있다. 
이뿐만이 아니다. 용산구청은 참사 전날인 지난달 28일 "핼러윈데이 대비 가로정비 특별단속 실시 계획"이라는 제목의 문서도 만들었다. 지난달 30일까지 이태원로 일대 불법 노점상과 도로 적치물을 단속하겠다는 계획이었다. 여기에는 용산구청 공무원 8명과 민간용역 직원 4명이 동원됐다. 
그런데 당시 용산구청의 순찰 경로에는 참사가 발생한 장소가 포함돼 있었다. 근무시간도 저녁 7시부터 밤 10시 30분까지로, "압사당할 것 같다"는 112신고(오후 6시 34분)가 들어온 뒤였다. 참사 발생 시간으로 알려진 밤 10시 15분도 근무시간 내에 있었다. 참사 조짐이 분명하던 때부터 참사 시작 시점까지 용산구청 직원들이 참사 현장 인근을 돌아다니고 있었던 것이다.
용산구청이 노점상을 단속했다는 위치도 참사 장소 바로 건너편(이태원역 4번 출구 앞)과 바로 옆 길(해밀톤호텔 우측) 등이었다. 용산구청 직원들이 참사 당일 현장 상황을 충분히 인지하고 있었음을 보여준다. 하지만 용산구청 측은 아무런 조치나 보고도 하지 않고, 계속 노점상 단속에만 열을 올렸다. 용산구청 상황실은 참사 14분 뒤인 밤 10시 29분, 소방당국의 연락을 받고 나서야 참사 사실을 알았다고 알려져 있다.
빨간색 박스로 표시된 지역이 지난달 29일 용산구청의 '불법노점상 단속 구역'. 해밀톤호텔 왼쪽 골목길인 참사 발생 장소도 이 안에 포함돼 있다. 
용산구청의 '핼러윈데이 안전대책'에는 한 가지 공통점이 있다. 몇 건을 단속해 몇 건을 조치했다는 식으로 성과를 산술적으로 나타낼 수 있는 것들이라는 점이다. 교통·인파 관리가 절실했던 순간에 용산구청이 눈에 보이는 성과, 일종의 '전시행정'에만 골몰했던 게 아닌지 의심된다.

핼러윈데이 대책회의 안 간 구청장... '이미지' 위한 행사는 참석

용산구청 뿐만 아니라 박희영 용산구청장의 참사 전 행적도 전시행정이라는 비판을 면하기 어렵다. 뉴스타파는 참사가 있던 주(10월 24~29일) 박희영 구청장과 부구청장의 주요 행사 참석 계획이 담긴 용산구청의 '주간행사계획' 문건을 입수해 살펴봤다.  
문서에 따르면, 수차례에 걸친 핼러윈데이 대책 회의엔 모두 불참했던 박 구청장이 참사 전날인 지난달 28일 "구민공감 현장 소통", "아파트공감나누기 한마당" 같은 주민 행사엔 참여한 걸로 나온다. 참사 당일인 29일엔 아무런 일정도 없는 걸로 나오는데, 이날 박 구청장은 고향인 경남 의령을 찾아가 의령군수와 10분간 면담하고 서울로 돌아왔다. 시민 안전을 위해 꼭 필요한 회의·행사에는 가지 않은 채 대외 이미지를 쌓고, 인맥을 넓히는데 용이한 행사를 우선시했던 것으로 보인다.
참사 당일, 경남 의령 일정을 끝내고 서울로 올라온 박 구청장은 저녁 8시쯤 이태원에 도착했고, 현장을 둘러봤다. 하지만 아무런 조치도 취하지 않았다. 용산구청 직원 소집이나 서울시 보고, 경찰·소방 연락도 없었다. 자신이 과거 정책특보를 맡아 모신 권영세 통일부장관(현 용산 지역구 국회의원)이 있는 단체 대화방에 "인파가 많아 걱정된다"고 적은 게 전부였다. 박 구청장은 참사가 발생하고 35분이나 지난 밤 10시 51분에서야 이태원 주민의 연락을 받고 참사 사실을 처음 알았다. 

끝내 침묵한 박희영 용산구청장, 책임·사퇴 의사 표명 거부

시민 안전을 지키지 못한 용산구청의 전시행정과 박희영 용산구청장의 기행에 가까운 행적. 뉴스타파는 박희영 구청장의 입장을 듣기 위해 지난 7일 오후 2시경 국회 행정안전위원회(이하 행안위)에 출석하는 박 구청장에게 직접 물어봤지만, 박 구청장은 '죄송하다'는 말 외엔 아무런 입장도 내놓지 않았다. 용산구청 직원들이 앞장서 박 구청장을 보호하고 취재진의 질문을 막았다. 
지난 7일 국회 행정안전위원회에 출석하는 박희영 용산구청장. 입장을 묻는 뉴스타파 질문에 박 구청장은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국회 행안위 회의장에서도 박 구청장은 줄곧 책임 회피성 발언만 내놨다. 핼러윈데이 대책회의에 불참한 이유를 묻는 국회의원 질문에는 "취임한 지 4개월 밖에 안 됐다", "관례대로 부구청장이 참석했다"고 답했고, 스스로에게 어떤 책임이 있느냐고 묻자 "마음의 책임을 지겠다"며 사실상 법적·정치적 책임은 없다는 식의 입장을 밝혔다. "이태원 참사에 대한 분명한 책임이 밝혀진다면 사퇴하겠느냐"는 질문에 대해선 "진상조사에 잘 응하겠다"고 답했다. 
제작진
취재홍주환
영상취재김기철
편집윤석민
CG정동우
디자인이도현
출판허현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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