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연되는 민자도로 악몽

2015년 01월 27일 20시 43분

경기도 일산과 퇴계원을 잇는 서울외곽순환고속도로 북부 구간. 교통은 편리해졌지만 지역 주민들의 원성이 큽니다.

이유는 비싼 요금 때문인데요. 송추IC에서 통일로IC까지 8.9㎞ 구간의 통행요금은 승용차 기준으로 3000원이나 됩니다. 1㎞당 337원 꼴로 경부고속도로(1㎞ 당 47원)보다 7배 비쌉니다. ‘고객의 편익에 중심을 둔 경제고속도로’라는 홍보 문구가 무색할 정도입니다.

지난 2000년 우리나라 최초의 민간 자본으로 건설된 인천국제공항고속도로. 인천공항으로 통하는 유일한 도로인데, 승용차를 타고 공항에 다녀오려면 왕복 통행료로 1만 5200원을 내야 합니다.

인천공항고속도로 뿐아니라 천안논산, 대구부산고속도로 등 비싼 통행료를 내는 도로의 공통점은 민자. 즉 민간의 자본을 유치해 만든 도로라는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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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는 도로와 철도 등 사회간접자본 시설을 짓는데 민간 자본을 끌어들이기 위해 최소 운영수입을 보장해줬습니다. 당초 예측한 것보다 실제 수입이 적을 경우, 미리 약속한 수입의 70~90%까지 정부가 지원해주기로 한 겁니다. 그런데 민자 도로들은 대부분 실제 수입이 수요 예측의 절반에도 못 미쳤고, 이를 세금으로 메꾸다보니 세금 먹는 하마가 됐습니다.

여론의 질타가 쏟아지자 정부는 지난 2009년 최소수익률 보장제도를 폐지했습니다. 하지만 이전에 맺은 계약에 따라 손실을 여전히 보전해주고 있습니다.

인천공항고속도로에 가장 많은 1조2000억 원의 세금이 들어갔습니다. 천안 논산과 대구 부산 고속도로에 들어간 돈도 각각 5000억 원이 넘습니다. 올해 책정된 예산 3200억원을 합치면 정부가 민자도로 9곳의 적자를 국민 세금으로 대신 메워 준 돈이 2조8000억원이나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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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실 보장을 약속된 기한이 짧게는 15년에서 길게는 20년 넘게 남아 있고, 매년 3000억원의 세금이 쓰인다는 것을 감안하면 앞으로 5,6조원의 혈세가 더 필요합니다.

그런데 정부는 민자도로 건설을 중단하기는 커녕 민자도로를 더 늘리기로 했습니다.

현재 새로 추진중인 민자도로는 수원 광명간 도로와 광주 원주간 제2영동고속도로 등 10곳. 최소수익률 보장제도는 없어졌지만 혈세 투입은 여전합니다. 토지매입비는 물론 건설 공사비의 최대 30%까지 정부가 지원합니다. 민간 투자자의 입장에서 보면 민자도로는 한마디로 돈이 되는 사업입니다.

이 때문에 도로를 만들겠다는 민간 사업자가 늘었고, 그만큼 민자유치 건설보조금도 증가했습니다. 2011년 689억원에 불과하던 민자유치 건설보조금은 2012년 3072억원, 2013년 7723억원, 지난해에는 1조1039억원, 올해는 1조4267억원으로 폭발적으로 증가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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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는 사회간접자본(SOC) 투자에 대한 국가 재정 부담을 줄이고, 민간 자본을 통해 공공부문의 효율성을 높일 수 있다는 입장입니다. 하지만 민자 도로 인근 지역에 사는 주민들은 그리 달가워하지 않는 분위기 입니다. 민자로 건설돼 비싼 통행료가 부담되기 때문입니다.

게다가 정부는 민간 사업자와 계약을 맺을 당시 물가상승률을 감안하지 않고 사업비를 추산, 국민 세금으로 지원해야 할 돈도 급증했습니다. 국회 국토교통위원회 조사 결과 인천 김포 간 도로는 토지매입비와 건설보조금을 합친 정부 지원금이 당초 3700억원에서 8600억원으로 2.3배 늘었습니다.

안양성남간 도로는 1400억원에서 3900억원으로 2.7배, 수원 광명간 도로는 3900억원에서 6200억원으로 1.6배 각각 증가하는 등 민자로 짓는 6개 도로의 국고 지원금이 당초 2조원에서 4조원으로 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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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가 재정 부담을 줄이겠다며 만든 제도가 오히려 재정 악화를 부추기는 역효과를 내고 있는 겁니다. 정의당 박원석 의원은 민자도로 건설을 전면 재검토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박 의원은 “민자도로가 정부 재정사업이 아니라는 이유로 예비타당성 조사를 면제 받았고, 정부가 업체가 맺은 실시협약도 비밀로 붙여져 공개되지 않고 있다”면서 “민자도로가 국민의 편의를 위한 것인지 아니면 건설업자들의 배를 불리는 것인지 알 수 없다”고 말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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