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반그룹의 리베이트와 은닉재산의 저수지는 재단?

Mar. 04, 2024, 10:00 AM.

서울신문이 지난 2021년 호반그룹에 인수된 뒤, 서울신문 지면에는 호반그룹의 홍보성 기사가 부쩍 늘었다.
김상열 호반그룹 회장이 이사장을 맡고 있는 호반장학재단에 대한 동정 기사도 자주 실린다. 약방의 감초처럼 빼먹지 않고 등장하는 문구가 있다. 
바로 김상열 회장이 사재를 출연해 장학재단을 설립했다는 내용이다.

2021년 말 기준 장학재단의 사재 출연 비율은 7.6%?

뉴스타파는 김상열 회장이 호반장학재단에 출연한 사재가 얼마인지 따져봤다. 
국세청이 공시한 호반장학재단의 출연금 내역을 보면, 김상열 회장이 사재를 출연한 것은 모두 3번.
기부 날짜가 정확히 명시돼 있지 않은 현금 6억 5,000만 원과 1,700만 원 상당의 건물 소유권 그리고 2004년 출연한 호반건설산업 주식 8,400주다. 당시 주식의 장부가액은 1억 9,111만 원이다.
여기에 김상열 회장의 아내 우현희 씨가 출연한 3억 원 상당의 현금과 부동산을 합치면, 김 회장 부부가 출연한 사재는 모두 11억 6,533만 원이다. 
2021년 말 현재 호반장학재단의 기부금 수입 총액이 장부가 기준으로 152억 원인 것과 비교하면 전체의 7.6%다.  
그런데 호반장학재단은 2022년말 현재 순자산 규모를 전년도의 152억 원에서 933억 원으로 늘려 신고했다. 1년새 기부금 수입이 그만큼 늘어난 것이 아니라 재단이 소유한 호반건설 주식의 장부가액을 재평가한 것이다.
이에 따라 김상열 회장의 경우처럼 과거에 주식을 출연한 기부자들이 전체 기부금 총액에서 차지한 비중이 상승했다. 
김상열 회장이 20년 전 기부한 호반건설산업 주식 8,400주는 인수 합병 등을 거쳐 호반건설 주식 21만 3,480주로 바뀌었는데, 주식 재평가를 통해 장부가액이 종전 1억 9,111만 원에서 163억 5,000여 만 원으로 늘었다. 
이처럼 주식의 장부가액 변화를 반영하면 김상열 회장 부부가 출연한 사재는 175억 원으로 늘어난다. 전체 기부금에서 차지하는 비율은 18.7%다. 
호반장학재단의 기부금 중 김상열 호반그룹 회장 부부가 낸 돈은 175억 원으로 전체의 18.7%다. 
서울신문을 비롯한 다른 언론들이 김상열 회장의 사재 출연을 강조할 만큼 사재 출연 비율이 높다고 보긴 어렵다. 

김상열 회장 부부, 호반문화재단에 사재 출연은 단 한 번에 그쳐

특히 호반문화재단의 경우 전체 기부금 수입에서 김상열 회장 부부가 낸 돈의 비율은 이보다 훨씬 낮다.
김 회장이 호반문화재단에 기부한 횟수는 단 한 차례. 20년 전인 2004년 당시, 장부가액 5억 9,000만 원의 호반건설산업 주식 1만 5,000주를 기부한 것이 처음이자 마지막이다. 이를 2022년 말 현재 가치로 환산하면 292억 원 상당으로 추산된다. 
2022년 말 현재 호반문화재단의 순자산이 4,678억 원인 것과 비교하면 김 회장의 사재 출연 비율은 6.2%다. 
2004년 호반문화재단 설립 때부터 20년째 재단 이사장을 맡고 있는 우현희 씨는 공시 자료에서 기부한 흔적을 찾을 수 없었다. 
그동안 호반문화재단의 순자산은 눈덩이처럼 불어났다. 2007년 말 현재 재단의 순자산은 28억 원에서 2022년 말에는 4,678억 원으로 166배 증가했다. 
재원은 급격히 증가했지만, 문화예술 발전에 지출한 돈은 그리 많지 않다.
재단이 2010년부터 2022년 말까지 문화예술 발전, 즉 고유 목적 사업에 지출한 돈은 58억 원.
각 회계 연도별 순자산 대비 목적 사업 지출 비율은 평균 0.21%에 불과했다. 부채를 뺀 순 자산이 1억 원이라고 치면 고작 21만 원을 목적 사업에 쓴 셈이다. 
호반문화재단의 순자산 대비 목적사업 지출 비율은 평균 0.21%로 나타났다. 
반면, 재단 운영 경비는 같은 기간 123억 원을 지출돼 문화예술 발전에 쓴 돈보다 2배 더 많았다. 

호반문화재단의 목적사업 지출 비율은 기부금 상위 20개 공익 법인의 절반 수준

지난 2021년 호반문화재단의 기부금 수입은 739억 원으로 기부금 규모로 따졌을 때 전국 1만 500여 개 공익법인 중 19위를 차지했다.
뉴스타파는 2021년 당시 기부금 상위 20개 공익 법인의 2022년도 총 사업비중 목적 사업비 지출액을 따져봤다. 목적 사업비 지출 내역을 따로 명시하지 않은 국립중앙의료원 등 6개 법인과 호반문화재단을 제외한 나머지 13개 공익법인의 목적 사업비 지출 비율은 평균 88%였다.
호반문화재단의 목적 사업 지출 비율은 40.9%에 그쳤다. 

호반문화재단의 수상한 기부자들, "나는 기부한 사실 없다"

이처럼 저조한 성적표를 기부자들은 알고 있을까. 
뉴스타파는 호반문화재단에 거액을 기부한 독지가들을 찾아, 당초 그들이 기부한 목적에 맞게 재단이 잘 운영되고 있는지 물어보려 했다. 
호반문화재단이 국세청에 신고한 기부자 명단에는 김 모 씨가 15억 원 상당의 주식을 기부한 것으로 나온다. 또 2011 회계연도의 호반문화재단 감사보고서에는 김 씨가 기부한 주식이 호반건설 주식으로 명시돼 있다. 뉴스타파는 호반건설 감사보고서에서 2003년말 현재 김 씨가 호반건설 주식 6,600주를 소유했으나 2004년 말 현재 주주 명부에서 김 씨의 이름이 제외된 사실을 확인했다.
이에 따라 김 씨가 주식을 기부한 시점은 호반문화재단의 전신인 태성문화재단이 설립된 2004년 10월부터 12월 사이로 추정된다.
2004년 당시 호반건설의 매출은 1,426억 원이고, 308억 원의 당기순이익을 기록했다. 김 씨가 주식을 기부할 당시 장부가액은 15억 원이지만 실제 주식 가치는 이보다 훨씬 높았을 것으로 추정된다. 현재 가치로 따지면 수백억 원대로 추산된다.
그런데 정작 김 씨는 자신이 호반건설 주식을 기부했다는 사실도 기억하지 못했다. 
□ 기자 : 지금은 호반문화재단으로 바뀌었는데 과거 태성문화재단 시절에 선생님께서 호반건설 주식을 기부하신 적이 있습니까?
■ 김 모 씨 : 그런 일 없습니다.
□ 기자 : 기부자 내역을 보면 선생님 이름이 있어서...
■ 김 모 씨 : 그런 일 없어요.

호반문화재단에 15억 원 상당의 호반건설 주식을 기부한 김 모 씨와의 전화 통화에서 발췌
 호반건설 주식을 통 크게 기부했으나, 정작 기부 사실을 기억하지 못하는 김 씨는 김상열 호반그룹 회장의 친동생이다. 

같은 날 1,500억 원어치 주식을 기부한 개인 2명과 법인 2곳

호반문화재단의 기부자 명단에는 김상열 회장의 친동생을 포함해 개인 31명과 법인 26곳이 나온다. 이들이 기부한 금액은 장부가 기준으로 모두 3,810억 원.
그런데 이상한 점은 2020년 12월 24일 단 하루 동안 1,500억 원어치의 호반건설 주식이 기부됐다는 것이다.
영진산업개발이 기부한 호반건설 주식은 808억 원어치로 가장 많았고, 영진리빙 485억 원, 이영웅 씨 186억 원, 노용욱 씨가 43억 원의 순이었다. 
서로 다른 2개의 법인과 2명의 개인이 하필이면 같은 날, 그것도 호반건설 주식을 동시에 기부한 것은 단순한 우연이라고 보기는 어렵다. 게다가 노용욱 씨는 6개월 전인 2020년 6월 8일에도 199억 원 상당의 호반건설 주식을 호반문화재단에 기부했다.
영진산업개발 등 서로 다른 기부자 4명이 2020년 12월 24일 동시에 호반건설 주식 1500억 원어치를 호반문화재단에 기부했다.
뉴스타파는 기부자들의 정체를 추적했다. 우선 금융감독원의 전자공시시스템에서 영진산업개발의 회계감사 자료를 검색했다. 주식회사 등의 외부감사에 관한 법률 제5조에 따라 자산총액이 120억 원 이상이고 매출액이 100억 원을 넘으면 의무적으로 외부 회계감사를 받아야 한다. 감사 자료는 전자공시시스템에 등록된다. 
그러나 영진산업개발의 회계 감사보고서를 찾을 수 없었다. 자산총액과 매출액이 외감 법인 기준에 못 미치는 업체가 어떻게 808억 원어치의 호반건설 주식을 기부한 걸까.
직접 회사를 찾아갔다. 전남 화순에 위치한 영진산업개발 정문에는 입간판이 서 있고, 건물 2층에 사무실이 있다는 안내판도 있다.
그런데 취재진을 맞이한 이는 영진산업개발이 아니라 영진리빙의 계열사인 이화건영 소속 직원이었다. 2층 사무실에 근무 중인 다른 직원에게 '영진산업개발 직원이냐'고 묻자, 긍정도 부정도 아닌 "정확히는 아니다"는 모호한 답변이 돌아왔다. 확인해 보니, 그는 영진리빙 직원이었다.
영진리빙은 영진산업개발이 기부한 날짜와 같은 날인 2020년 12월 24일, 485억 원 상당의 호반건설 주식을 호반문화재단에 기부한 업체다. 본사는 경기도 여주에 있다. 본사 정문에는 영진리빙과 함께 영진산업개발 명패가 걸려 있었다.  
이 때문에 호반문화재단에 808억 원의 호반건설 주식을 기부한 영진산업개발이 외형상 사무실만 갖춰 놓고 실제로는 직원이 근무하지 않는 이른바 '페이퍼 컴퍼니'가 아닌가 하는 의혹이 생긴다. 
그런데 영진리빙 역시 485억 원 상당의 회사 자산을 기부할 만큼 경영 여건이 좋지 않았다. 
영진리빙의 당기순이익은 2014년 72억 원에서 2016년 52억 원, 2018년 18억 원 등으로 줄곧 내리막길을 걸어왔다. 호반건설 주식을 기부한 2020년에는 당기순이익이 6억 원으로 감소했고, 2021년 과 2022년에는 각각 3.6억 원과 2.3억 원을 기록했다. 
호반문화재단 공시자료를 보면, 2020년 12월 24일, 호반건설 주식을 기부한 개인 두 명은 모두 김상열 회장의 특수관계자였다. 
186억 원어치를 기부한 이영웅 씨는 김상열 회장의 동서이고, 지난해 작고한 고 노용욱 씨는 처외삼촌이다. 또한 2020년 4월 14일에 호반건설 주식을 기부한 노경자와 노인구 씨 역시 김 회장의 처갓집 식구들이다.
2020년 호반건설 주식을 기부한 개인은 모두 김상열 회장의 인척인 것으로 확인됐다.
취재 내용을 정리하면, △ 영진산업개발과 영진리빙은 호반건설이 지은 아파트에 거의 독점적으로 창호 등을 공급한 협력업체였다는 점, △ 이들 회사가 수백억 원대의 주식을 기부할 정도로 덩치가 크거나 재정이 여유로운 회사가 아니라는 점, △ 김상열 회장의 인척들이 보유한 호반건설 주식도 2020년 4월과 12월 한꺼번에 기부됐다는 점 등을 종합했을 때, 김 회장이 차명으로 은닉한 호반건설 주식을 호반문화재단을 통해 양성화한 것 아니냐는 의혹이 나온다.
이들에게 맡겨 놓은 호반건설 주식을 김상열 회장이 직접 증여받으면 납부해야 할 증여세가 1천억 원이 넘는다.
하지만 아내가 이사장으로 있는 재단으로 기부 받는 형식을 취하면 세금 한 푼 내지 않고 사실상 주식을 되돌려 받는 셈이 된다. 

호반문화재단 기부자 명단에서 리베이트 수수 정황 포착

뉴스타파는 또 호반문화재단 기부자 명단에서 리베이트 수수로 의심되는 정황을 포착했다. 
2014년 1월 호반문화재단에 현금을 기부한 5명은 한 달 전 호반문화재단이 후원한 '남도 작가 12인 특별전'에 초대된 화가들이었다. 
화가 손 모 씨는 2014년 1월 재단으로부터 신진작가 지원 명목으로 1,300만 원을 받았는데, 호반문화재단 감사보고서에는 손 씨가 2014년 1월 13일 500만 원을 재단에 기부한 것으로 나와 있다.  
또 재단으로부터 2,000만 원을 지원 받은 황 모 씨는 2014년 1월 21일 700만 원을 각각 500만 원과 200만 원으로 나눠 재단에 기부했고, 화가 이 모 씨는 1,300만 원을 받아 400만 원을, 또 다른 황 모 씨는 2,500만 원을 받아 200만 원을 재단에 기부했다. 
화가 서 모 씨는 재단으로부터 500만 원을 지원받았는데, 2014년 1월 18일과 24일 각각 400만 원과 200만 원씩 모두 600만 원을 다시 재단에 기부했다.
서 씨는 뉴스타파와의 전화 통화에서 "돈을 기부했다는 것이 지금 납득이 안 간다"면서 "애써 이해를 해 본다면 아마 (재단이) 작품을 구입하면서 장부상 처리를 그렇게 하고, 저한테 수중에 들어온 돈은 좀 적고 이렇게 되지 않았을까 싶다"고 말했다.
화가들에게 지원금을 준 뒤 그 일부를 기부금 명목으로 되돌려 받는 방식으로 불법 리베이트를 수수한 것 아니냐는 의심이 드는 대목이다.

호반 아파트의 조형물 설치 예술가들도 다수 재단에 기부 

호반건설이 지은 아파트에 조형물을 설치한 예술가들도 재단에 뭉칫돈을 기부했다. 
뉴스타파는 공공미술 데이터 포털과 호반문화재단의 기부금 명단을 교차 검증하고, 조형물이 설치된 현장을 찾아가 확인하는 방식으로 호반 베르디움 아파트에 조형물을 설치한 조각가 중에서 한두 달 안에 재단에 현금을 기부한 경우를 추렸다. 
조각가 이 모 씨는 2014년 3월 광주광역시 남구 호반베르디움 아파트에 '봄의 향연'이라는 제목의 작품을 설치했는데, 두 달 뒤인 5월 20일 호반문화재단에 1,100만 원을 기부했다.
조각가 양 모 씨는 2013년 10월 호반베르디움 아파트에 '꿈꾸는 나비'라는 작품을 설치하고, 두 달 뒤 재단에 2,000만 원을 기부했다. 
조각가 신 모 씨는 2013년 11월 '생성공간-대화'라는 작품을 설치하고 한 달 뒤 2,800만 원을 재단에 기부했다. 
뉴스타파 취재 결과, 호반베르디움 아파트에 작품을 설치한 뒤 두 달 안에 호반문화재단에 돈을 기부한 조각가는 확인된 사람만 13명. 이들이 낸 기부금은 9억 2,000만 원이다. 
뉴스타파는 호반문화재단을 찾아가 취재 사실을 밝히고 해명을 요청했다. 
하지만 재단 측은 답변하지 않았다. 
문화 예술 발전에 쓴 돈은 쥐꼬리만하고 오히려 예술가들로부터 불법 리베이트로 의심될만큼 석연치 않은 기부를 받은 호반문화재단.
김상열 회장이 재단을 설립한 진짜 목적이 자신의 친동생과 인척들, 그리고 협력업체에 숨겨 놓은 재산을 세금 없이 회수하는 탈세의 수단으로 활용하기 위한 것은 아닌지 관계 기관의 수사가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By
촬영정형민, 김기철
편집정지성
CG윤석민, 정동우
디자인이도현
출판허현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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