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보국' 간송미술관 관장, 페이퍼컴퍼니 다수 설립

2021년 10월 06일 08시 00분

한국탐사저널리즘센터-뉴스타파는 2021년 10월 4일부터 국제탐사보도언론인협회(ICIJ) 주관으로 전세계 600여 명의 언론인과 함께 <판도라페이퍼스: 조세도피처로 간 한국인들 2021>프로젝트 결과물을 차례로 보도합니다. 국제협업취재팀은 트라이던트 트러스트, 알코갈, 아시아시티트러스트, 일신회계법인 및 기업컨설팅(홍콩) 등 14개 역외 서비스업체에서 유출된 1190만 건의 문서를 입수해 취재하고 있습니다.-편집자주
우리나라 최초의 사립 미술관인 간송미술관의 전인건 관장이 지난 2015년 조세도피처 페이퍼컴퍼니를 다수 설립한 사실이 뉴스타파 취재 결과 확인됐다. 이 가운데 두 개의 페이퍼컴퍼니 관련 문서에서는 당시 간송 계열 법인의 이사 이름도 함께 발견됐다. 
간송미술관은 간송 전형필의 호를 딴 미술관이다. 전형필 선생은 '문화 보국', 즉 문화로 나라를 지킨다는 일념으로 일제 강점기를 비롯해 평생 자신의 재산을 털어 우리 문화재를 사들이고 지킨 것으로 잘 알려져 있다. 
전인건 관장은 간송 전형필의 장손으로 지난 2018년부터 관장직을 맡고 있다.

전인건 관장, 세이셀 등에서 유령회사 적어도 4개 설립

전 관장의 페이퍼컴퍼니 관련 문서는 역외 법인 설립 대행사인 '아시아시티 트러스트'의 유출 파일에서 나왔다. 뉴스타파가 해당 파일을 분석한 결과 전인건 관장은 지난 2015년에 최소 4개의 페이퍼컴퍼니를 연달아 설립한 것으로 확인됐다. 이 시기는 전 관장이 간송미술문화재단의 사무국장으로 근무할 때다. 
이들 페이퍼컴퍼니의 이름은 각각 ▲프라임 콘코드 리미티드(Prime Concord Limited), ▲하비스트 밸리 리미티드(Harvest Valley Limited), ▲퍼시픽 레인 리미티드(Pacific Lane Limited), ▲매직 다이내스티 리미티드(Magic Dynasty Limited)다. 4개의 페이퍼컴퍼니 관련 문서에는 전인건 관장이 ‘실소유주(beneficial owner)’로 적시돼 있다. 
▲사진 : 페이퍼컴퍼니 설립을 대행해주는 역외 서비스 업체 '아시아시티 트러스트'의 고객 문서. 전인건 간송미술관 관장의 이름이 등장하는 여러 문서를 입수해 분석한 결과, 전인건 관장이 최소 4개의 페이퍼컴퍼니를 설립한 것으로 확인됐다. 
4개의 페이퍼컴퍼니 가운데 3개는 휴양지로 유명한 인도양의 섬, 세이셸에서 설립됐다. 다른 하나(매직 다이내스티 리미티드)의 설립지는 홍콩이다. 매직 다이내스티의 법인 주소는 설립 대행사인 ‘아시아시티 트러스트’의 홍콩 사무실 주소로 되어있다. 
이 4개의 페이퍼컴퍼니는 모두 2015년 7월에서 9월 사이에 만들어졌다.

세이셸에 설립한 회사의 목적은 '전시와 영화'?

가장 먼저 설립된 페이퍼컴퍼니는 '프라임 콘코드'(2015.7.)다. 전인건 관장이 단독 이사(Sole director)로 등장한다. 
아시아시티 트러스트 같은 페이퍼컴퍼니 설립 대행사가 이미 설립해 놓은 법인을 고객이 물건을 쇼핑하듯 골라서 구매하는 방식도 역외 서비스에선 성행하고 있는데, 이런 판매용 법인을 셸프컴퍼니(Shelf Company)라고도 한다. 선반 위에 진열된 회사라는 의미다. 전인건 관장도 이런 식으로 세이셀에 설립된 회사를 구매한 것으로 보인다. 
전인건이 구매자로 돼 있는 '페이퍼컴퍼니 구매 신청서' 문서를 보면, 그는 직업을 '기업 대표(business executive)'로 적었다. 주소지는 서울 성북동, 간송미술관의 주소지이자 간송 전형필의 후손의 자택 소재지로 알려져 있다. 이 문서에 전 관장은 실소유주(beneficial owner)로도 이름을 올렸다. 
회사의 주요 활동란에는 '예술품 전시와 문화재 관련 영화'라고 적혀있다. 자본금의 출처는 실소유주, 즉 전인건의 개인 투자금이라고 적혀있다. 
프라임 콘코드 내부 문건 '단독 이사가 의결한 서면 결의서'를 보면 이 회사는 2015년 7월에 설립했고 설정 자본금은 미화 100만 달러이지만 실제 발행된 주식은 1달러짜리 한 주로, 전인건 관장에게 배당했다고 적혀 있다.
▲사진 : 2015년 8월, 같은 시기에 만들어진 두 페이퍼컴퍼니 사진. 
두번째와 세번째 회사인 '하비스트 밸리 리미티드(Harvest Valley Limited)'와 '퍼시픽 레인 리미티드(Pacific Lane Limited)'는 이로부터 약 한 달 뒤인 2015년 8월 28일 설립된 것으로 나온다. 
이 가운데 '하비스트 밸리 리미티드' 관련 문서에는 전인건 관장의 지인인 박모 씨가 함께 등장한다. 회사의 주소지는 '프라임 콘코드 리미티드'와 같은 세이셸의 한 건물이다. 그러나 박 씨는 이후 '하비스트 밸리 리미티드'의 실소유권을 전인건 관장에게 넘긴 것으로 확인됐다. 

전인건 소유 두 개 페이퍼컴퍼니에 ‘김OO 이사’ 등장

세번째 회사인 '퍼시픽 레인 리미티드(Pacific Lane Limited)'와 2015년 9월 설립된 네번째 회사, '매직 다이내스티 리미티드(Magic Dynasty Limited)'에는 이 시기 간송 계열 법인인 간송씨앤디의 이사로 근무하던 김OO 씨가 등장한다. 그러나 앞의 하비스트 밸리 리미티드와 마찬가지로, 처음엔 김 씨가 회사의 이사로 등장하지만 실소유권을 전인건 관장에게 넘긴다는 내용이 나온다. 결국 4개 회사의 실소유주는 사실상 전인건 관장이라는 의미다. 
▲사진 : 페이퍼컴퍼니 '퍼시픽 레인 리미티드'와 '매직 다이내스티 리미티드'에 모두 등장하는 김모 씨. 2015년 당시 간송 계열 법인인 간송씨앤디의 이사였다. 
회사 이름이나 설립 시기는 나오지 않지만, 앞선 서류들과 내용이 거의 동일한 또 다른 페이퍼컴퍼니 '설립 신청서'도 발견됐다. 여기에 나오는 인물은 태모 씨. 역시 전인건 관장의 지인이다. '예술품 전시와 문화재 관련 영화' 사업 목적으로 회사를 설립하고자 한다는 내용이 적혀있다. 

전인건 관장 "김 이사가 추진한 일"

전인건 관장은 다수의 페이퍼컴퍼니 설립 이유에 대해 "개인적인 차원의 일"이었고 "당초 김 전 이사가 관련 제안을 해 일을 추진했으나, 사업이 제대로 진행이 안 돼 실질적으로 페이퍼컴퍼니를 운영하거나 자금 거래를 한 바가 없다"고 말했다.
전 관장은 전화통화, 그리고 서면답변서를 통해 "김 전 이사가 그 지인들과 함께 중국 쪽에 전시관을 건립하는 사업을 먼저 제안했다"고 설명했다. 중국 소재의 중국 미술 전시관 건립 사업을 하는데, 컨설팅 및 전시 기획을 해달라는 요청을 받았다는 것이다. 전 관장은 당시 사업 진행에 필요하다는 요청을 수용해서 대표성을 가진 본인을 소유주로 하는 회사들이 만들어진 것으로 알고 있다고 부연했다. 
또 "회사를 설립한 후 얼마 되지 않아 사업 진행이 어렵다는 얘기를 들었고, 김 씨에게 더이상 사업을 진행하지 말고 해당 회사도 정리하라고 지시했다"며 "해당 회사들은 설립에 필요한 최소 자본금이 들어간 것을 제외하면 어떠한 운영도 한 바 없다"고 말했다.

김 전 이사 "내가 추진할 리가 없지 않냐"

그러나 전인건 관장의 해명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의문은 남는다. "왜 중국 쪽 사업을 굳이 세이셸에 페이퍼컴퍼니를 만들어서 추진하려고 했냐"는 취재진의 질문에 전 관장은 "모른다"고 답했다. 
전인건 관장에게 '사업을 추진한 인물'로 지목된 김 전 이사가 뉴스타파와의 대화에서 전 관장의 주장과 전혀 다른 말을 하고 있는 것도 의문을 증폭시킨다. 
취재진의 오랜 수소문 끝에 연락이 닿은 김 전 이사는 "2015년 다수의 페이퍼컴퍼니 설립을 추진했냐"는 취재진의 질문에 "내가 (그런 걸) 추진했을 리가 없지 않냐"고 되물었다. 또 "전인건 관장에게 중국 사업 관련해 페이퍼컴퍼니를 설립해야 한다는 제안을 한 적이 있냐"는 취재진의 질문에는 "그런 적 없다"며 "간송에 대해서는 더이상 이야기를 하고 싶지 않다"고 잘라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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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작진
취재강혜인 김지윤 김용진 이명주 홍우람
촬영오준식 신영철
편집박서영
CG 정동우
디자인이도현
데이터김강민 최윤원
윕출판허현재
타이틀윤석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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