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의힘 김형동 의원과 더불어민주당 윤건영 의원이 국회 예산인 입법·정책개발비(이하 정책개발비)를 사용해 진행한 정책연구용역을 뉴스타파가 검증한 결과, 입법이나 정책 개발과 무관한 ‘SNS 활용 전략’ 등 의원 개인의 이미지 관리와 홍보 전략이 정책연구의 주된 내용인 것으로 확인됐다.
국회사무처의 ‘국회의원 입법 및 정책개발 지원 예산 집행 지침’을 보면, 국회의원의 정책연구비는 ‘정책개발을 위한 여론 수렴과 조사 연구 등’에만 쓰도록 규정돼 있다. 김형동, 윤건영 두 의원이 국회사무처의 예산 지침을 어겼다는 의혹이 제기된다.
김형동 의원은 “앞으로 더 엄밀하게 정책연구비를 사용하겠다”면서 예산 오·남용 비판을 수용했다. 하지만 윤건영 의원은 “SNS를 통한 홍보도 국회의원의 의정 활동”이라며 정책개발비 예산을 제대로 사용했다고 주장했다.
국민의힘 김형동 의원은 2020년 4월에 치러진 21대 총선거에서 경상북도 안동·예천에 출마해 초선 배지를 달았다.
▲ 국민의힘 김형동 의원
그해 11월, 김 의원은 국회의원으로서 첫 번째 정책연구용역을 진행했다. ‘미디어 활용 의정활동 홍보 및 위기 관리 방안’을 주제로 국회의원 정책연구비 500만 원을 썼다. 모 홍보·광고 업체에 정책연구를 맡겼다. 정책연구 결과보고서는 국회의원에게도 홍보, PR이 중요하다는 내용으로 시작한다.
▲ 김형동 의원의 정책연구 결과보고서 2p
이어 ‘온라인 미디어의 활용 원칙’을 제시하는 등 국회의원이 대외 홍보를 어떻게 해야 하는지 컨설팅이 나온다.
▲ 김형동 의원의 정책연구 결과보고서 17p
정책연구 결과보고서는 국회의원이 방송 기사에 나오려면 의원실이 어떻게 해야 하는지, 신문 기자에게는 언제 전화하면 좋은지, 기자들과 친분을 쌓는 비결 등도 제시하고 있다.
▲ 김형동 의원의 정책연구 결과보고서 23p
▲ 김형동 의원의 정책연구 결과보고서 24p
▲ 김형동 의원의 정책연구 결과보고서 25p
결과보고서의 마지막 장 ‘위기 대응 커뮤니케이션 방안’에서는 이른바 ‘언론발 위기’가 발생했을 때 인터뷰 요령과 녹취 여부 확인 등 의원과 의원실이 어떻게 대응해야 하는지 상세히 기술하고 있다.
이처럼 세금 500만 원이 들어간 김형동 의원의 43쪽짜리 정책연구 결과보고서에는 입법이나 정책개발과는 별 관련성이 없는 의원 개인의 언론 홍보·대응 전략에 상당 부분 할애되어 있다.
▲ 김형동 의원의 정책연구 결과보고서 31p
그런데 국회사무처의 ‘국회의원 입법 및 정책개발 지원예산 집행지침’을 보면 정책개발비 가운데 하나인 정책연구비 예산은 ‘정책개발을 위한 여론수렴, 조사연구 등’에만 사용해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정책연구비는 예산의 명칭 그대로 의원이 정책을 개발하면서 국민의 의견을 듣는 여론조사를 하거나, 외부 전문가에게 연구를 맡기는 데 쓰라고 마련된 예산이기 때문이다.
▲ 국회사무처가 배포하는 ‘국회의원 입법 및 정책개발 지원예산 집행지침’에 따르면 정책연구비는 ‘정책개발을 위한 여론 수렴, 조사 연구 등’에만 사용하도록 규정되어 있다.
뉴스타파는 김 의원에게 연락해 언론 홍보·대응 전략에 대한 정책연구를 진행한 것은 의원 개인의 이미지 관리를 위한 목적이 아니었는지, 또 국회사무처의 예산 지침을 어기고 세금을 오·남용했다는 비판에 대해서는 어떤 입장인지 물었다.
이에 김 의원은 “세금 오·남용이라는 지적이 나온 만큼 앞으로는 보다 엄밀하게 정책연구비를 사용하겠다”며 뉴스타파의 지적을 수용했다. 김 의원은 또 “초선 의원으로서 언론에 대한 접근과 대응 방식 등 이해도를 높이기 위한 취지로 정책연구용역을 진행했다”고 해명했다.
더불어민주당 윤건영, SNS 활용 이미지 연구에 세금 500만 원 투입
비슷한 세금 오·남용 사례는 더 있었다. 이번에는 21대 총선에서 서울 구로을에서 당선된 초선, 더불어민주당 윤건영 의원의 정책연구용역이다.
2020년 11월, 윤건영 의원도 국회의원으로서 첫 정책연구용역을 진행했다. ‘정치인의 소통 채널로서의 SNS 운영 양태 연구’를 주제로, 앞선 김 의원과 마찬가지로 세금 500만 원을 사용했다. 한 광고 대행업체가 정책연구를 맡았다.
윤 의원이 국민 세금으로 진행한 정책연구의 결과보고서를 보면, 본문 첫 페이지부터 목적이 무엇인지 드러난다.
▲ 윤건영 의원의 정책연구 결과보고서 3p
정책연구보고서는 윤 의원 블로그의 콘텐츠별 조회수, 성별, 연령대별 방문자수 등을 분석하고 운영 방안을 제시하고 있다.
▲ 윤건영 의원의 정책연구 결과보고서 22p
▲ 윤건영 의원 블로그 화면 갈무리. 정책연구 컨설팅 대로 ‘위젯’이 실제로 있고 전체적으로 민주당의 색깔인 파란색이 눈에 들어온다.
페이스북에서 인스타그램까지, 정책연구 결과보고서에서는 윤 의원이 운영하는 SNS 계정의 홍보 전략을 상세히 제시하고 있을 뿐, 국회의원으로서 어떤 입법과 정책을 개발해야 하는지 연구한 부분은 찾을 수 없다.
▲ 윤건영 의원의 정책연구 결과보고서 42p
개인 SNS 홍보 전략에 국민 세금... 윤건영 “정책개발비 오·남용 아니다” 주장
뉴스타파는 “정책연구를 핑계로 국민 세금을 의원 개인의 이미지 관리에 오·남용한 것이 아닌지” 윤건영 의원에게 물었다.
김형동 의원과 달리 윤건영 의원은 예산 오·남용을 인정하지 않았다. 윤 의원은 “SNS는 국민과의 소통 수단이고 국회의원의 정책과 법안을 국민에게 홍보하는 과정도 의정 활동”이라며 “정책개발비를 오·남용한 것은 아니”라고 주장했다.
“세금 오·남용이 아니다”라는 윤건영 의원의 해명은 사실일까. 앞서 살펴보았듯 윤건영 의원이 진행한 44쪽짜리 정책연구용역의 내용은 SNS 홍보를 통한 의원 개인의 이미지 관리가 전부였다.
▲ 윤건영 의원의 정책연구 결과보고서 6p
▲ 윤건영 의원의 정책연구 결과보고서 11p
국회사무처가 펴낸 ‘국회의원 의정활동 지원안내서’에는 국회의원 정책연구비를 사용해서는 안 되는 집행 불가 사례가 구체적으로 나온다. 대표적인 집행 불가 사례가 ‘국회의원 개인의 이미지 전략에 대한 용역’이다.
▲ ‘국회의원 의정활동지원안내서’에 나오는 정책연구비 집행 불가 사례
‘입법 및 정책개발비’는 말 그대로 제대로 된 법과 정책을 만들라며 2005년부터 국회의원에게 지원하기 시작한 예산이다. 한 해 300명 의원이 쓸 수 있는 정책개발비 예산은 120억 원에 이른다.
“오·남용 판단 못 하겠다”는 국회사무처... 국회의원에 대한 관리·감독 포기
뉴스타파는 국회사무처에 김형동, 윤건영 의원의 정책연구가 국회 예산 집행 지침 등에 따른 집행 불가 사례에 해당하는지 확인을 공식 요청했다.
국회사무처는 “입법 및 정책개발과 관련되지 않는 국회의원 개인의 홍보성 활동인지는 의원실이 자체적으로 판단하고 있으며 국회사무처는 이 같은 의사결정을 존중하고 있다”고 답변했다. 국회사무처가 마련한 규정에 ‘국회의원 개인의 이미지 전략 용역’을 예산 집행 불가 사례로 명기돼 있는데도, 국회의원이 예산 오·남용이 아니라고 주장하면 세금 사용을 그대로 인정해 준다는 설명이다.
자격과 자질을 갖추지 못 한 의원들이 가장 큰 문제지만, 검증에 손을 놓은 채 의원이 요구하는 대로 예산을 지급해주기만 하는 속칭 ‘세금 자판기’ 역할에 그치고 있는 국회사무처 또한 개혁의 대상이라는 사실이 다시 한번 확인됐다.
국회사무처, 의원 세금·오남용 방지책으로 ‘표절 검사 방법 안내’ 제시
실제로 지난해 11월, 국회 국정감사에서 더불어민주당 천준호 의원은 국회사무처에 표절 정책연구 등 국회의원의 세금 오·남용을 막기 위한 방안을 어떻게 마련할 것인지 질의했다.
국회사무처는 서면 답변서를 통해 “일부 부적절한 집행 사례가 있는 것은 사실로 보인다”며 세금 오·남용 실태를 인정했다. 하지만 대책 마련과 관련해서는 표절 금지 지침을 새로 만들거나 표절 심사를 강화하겠다는 것이 아닌 “향후 의원실에 표절 검사 방법 등을 안내하고 필요한 비용을 지원하겠다”고 답변했다. 국회의원의 예산 사용에 대한 감시와 견제의 역할을 사실상 포기한 것이다.
뉴스타파와 시민단체가 <국회 세금도둑 추적> 프로젝트를 시작한 지 7년째를 맞았다. 정책연구용역을 빙자해 국민 세금을 빼돌린 이은재 전 의원이 사기 혐의로 재판에 넘겨지는 등 지난 20대 국회에서만 70여 명의 ‘세금도둑’ 의원들을 고발했지만, 세금을 자신의 쌈짓돈처럼 오·남용하는 의원들의 행태는 좀처럼 근절되지 않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