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 뉴스타파> 대장동 실체 담긴 ‘정영학 녹취록’ 1,325쪽 전문 공개

2023년 01월 12일 20시 00분

기사 요약

① 1,325쪽 ‘정영학 녹취록’ 공개...업자들의 은밀한 대화 속에 담긴 특혜 의혹의 실체     
② 검찰이 채택한 대장동 수사의 핵심 증거자료...2021년 9~10월, 정영학이 스스로 검찰에 제출
③ 정치인과 공무원, 판·검사에서 기자까지 전방위 ‘거미줄 로비’ 뒤에 숨겨진 이야기
뉴스타파는 오늘(12일) ‘정영학 녹취록’을 자사 홈페이지에 공개한다. 일부 언론에 ‘녹취록’이 소개된 적은 있지만, 1,325쪽 전체 분량을 공개하는 건 이번이 처음이다.
‘정영학 녹취록’은 대장동 특혜 개발 의혹 수사에서 가장 중요한 증거로 꼽힌다. 지난해 대장동 사건 재판에선 이 녹취록의 음성파일 일부가 재생되기도 했다. 뉴스타파 데이터 포털에 접속하면 ‘정영학 녹취록’을 PDF 파일로 내려받을 수 있다.
뉴스타파는 입수한 녹취록을 독점한 채 단편적인 기사를 이어가기보다는, 복마전 같은 대장동 사건의 진실에 한 발 더 다가갈 수 있는 ‘공적 기록물’이라고 판단해 언론과 시민에게 공개하기로 했다.
▲12일(목) 뉴스타파 홈페이지 데이터포털에 공개한 '정영학 녹취록' 촬영 사진. 

‘정영학 녹취록’이란?  

대장동 특혜 개발 의혹 검찰 수사가 시작된 직후인 2021년 9월 26일과 10월 1일, 대장동 업자인 정영학 회계사는 스프링 노트로 제본한 녹취록 8권, 녹음기, 녹음파일이 담긴 USB 등을 검찰에 제출했다. 김만배, 유동규, 남욱 등과 나눈 대화와 통화가 녹음된 자료였다. 
검찰이 작성한 수사보고서를 보면, ‘정영학 녹취록’은 두 종류다. 우선 정영학이 민간 업체의 속기사를 통해 녹음파일을 글로 푼 ‘정영학 제출 버전’, 그리고 정영학이 제출한 녹음파일을 검찰청 소속의 속기사가 다시 듣고 풀어낸 ‘검찰 검증 버전’이다.
이런 과정을 거쳐 검찰은 정영학 제출 버전의 녹취록에 위·변조가 없음을 확인했다. 이후 검찰은 정영학이 2021년 9월에 제출한 6권의 녹취록은 증거기록 41~42권, 10월에 추가 제출한 2권의 녹취록은 증거기록 43권으로 채택해 총 3권(41~43권)의 별책 형태로 수사 기록에 첨부했다.
▲정영학 녹취록(1,325쪽 중 4쪽). 2021년 9월 26일, 정영학이 변호인을 통해 녹취록, 녹음기, USB 등을 제출하자 수사관이 제출 사실을 담은 '수사보고서'를 작성해 주임검사에게 보고했다. 정영학은 10월 1일에 검찰에 녹취록 2권을, 10월 5일에는 추가로 제출한 녹취록 2권의 음성파일 등이 담긴 USB 3개를 제출했다. 

대장동 10년 개발 비사(秘史) 담은 스토리북...2015년 기준으로 전·후반부로 구성

대장동 업자들이 개발 사업자로 선정된 건 2015년 3월이다. 녹취록은 녹음 시기에 따라, 전반부와 후반부로 나뉜다.
전반부(43권)는 2년 4개월(2012.8.18.~2014.12.1.) 동안 업자들이 위례 및 대장동 사업자로 선정되는 과정이 담겼다. 후반부는 1년 4개월(2019.12.23.~2021.4.27.) 동안 업자들이 개발 이익을 나누면서 벌이는 암투가 주된 내용이다. 
전반부에는 대장동 업자들이 검찰 수사를 무마하기 위해 고위 법조인들에게 청탁하고, 사업을 따내기 위해 유동규나 성남시의회 의원들에게 접근해 수억대 뇌물을 전달하는 과정이 드라마같이 펼쳐진다. 후반부에는 대장동 사건의 최대 쟁점인 천화동인 1호의 차명 지분 소유자와 6명의 실명이 나오는 ‘50억 클럽’, 이들에게 수백억 원에 이르는 돈을 어떻게 줄지 모의하는 과정이 자세히 담겼다.   
대장동을 무대로 청탁, 협잡, 속임수 등 얽히고설켜 거짓과 진실이 한 편의 ‘범죄소설’처럼 전개된다. 
▲동아일보 기사(2021.10.9일자). 이날 동아일보는 정영학 녹취록에 김만배가 "천화동인 1호가 내 것이 아닌 것을 잘 알지 않느냐"라고 말한 대목이 있다고 보도했다. 이 보도를 계기로 거의 모든 언론이 '대장동 그분' 찾기에 나섰다. 그러나 뉴스타파가 확보한 1325쪽 정영학 녹취록에는 김만배의 이와 같은 발언이 없다. 

‘천화동인1호 그분 것’ 등 언론이 대서특필한 김만배 발언... 1,325쪽 녹취록엔 없다

‘정영학 녹취록’을 살펴보면, 그동안 ‘단독’을 달았던 언론 보도 일부가 ‘오보’였거나 근거가 '희박'했음을 알 수 있다.
대표적인 게 2021년 10월 9일 자, <김만배 “천화동인 1호 배당금 절반은 그분 것”>이란 제목의 동아일보 단독 보도다. 김만배가 2019~2020년 '천화동인 1호가 내 것이 아닌 것을 잘 알지 않느냐'란 취지로 말한 사실이 정영학 녹취록에 담겨 있다고 썼다. 당시 거의 모든 언론이 김만배의 이 발언에 대한 검증 없이 ‘그분’을 추적했다. 하지만 이번에 뉴스타파가 공개하는 1,325쪽 정영학 녹취록에는 이 같은 김만배의 발언은 없다.
또한 최근 상당수 언론은 ‘김만배가 2025년에 유동규네(이재명 측에) 지분을 넘기겠다’고 말한 것을 들었다는 남욱의 진술을 검찰이 확보했다고 보도했다. 일부 매체는 이런 김만배의 발언이 정영학 녹취록에 있다고 덧붙였다. 하지만 뉴스타파가 녹취록을 분석한 결과, 이 또한 사실이 아니었다. 
‘2025년에 지분을 넘기겠다’는 취지의 김만배 발언이 있긴 하다. 2020년 11월 6일 자 녹취록이다. 경기도 용인의 한 골프장에서 김만배가 정영학에게 이렇게 얘기한다. 
“내가 그래서 너(유동규)는 남욱이랑 헤어질 수 없어. 너 술 좋아하고, 남욱이랑 그렇게 이거 하는 걸 좋아하기 때문에. 넌 나중에 남욱이랑 가. 응? 그리고 2025년 정도 되면 10년 되니까. 니가 달래면 투자 형식으로 하든 뭐 형식으로 하든 줄게”

2020년 11월 6일 자 녹취록 중 김만배의 발언
위 김만배 발언에서 ‘니가’는 표준어로 ‘네가’이고, 발언의 맥락상 유동규 한 명을 뜻한다. 하지만 유동규 뒤에 접사 ‘네’를 붙여 ‘유동규네’가 되면, 복수의 사람이 된다. 정영학 녹취록 전체를 살펴봐도 그렇다. 녹취록을 보면, 김만배는 유동규에게 돈을 건넬 방법을 고민했고 네 가지 방안이 언급된다. 이 과정에서 ‘유동규네’ 같은 발언은 찾아볼 수 없다.  
▲정영학 녹취록(2020.11.6 녹음). 이날 김만배는 정영학, 이성문 등과 함께 경기도 용인의 한 골프장에서 만났다. 이날 김만배는 정영학에게 '유동규에게 2025년 정도 되면 10년 되니까, 니가 달래면 투자 형식으로 하든 뭐 형식으로 하든 줄게'라고 말했다고 전했다.   
한국일보가 지난해 2월 19일에 단독 보도한 <대장동 ‘그분’은 현직 대법관이었다>도 마찬가지다. 당시 한국일보는 2021년 2월 4일 자 녹취록을 근거로 ‘그분’이 현직 대법관이라고 폭로했다. 하지만 녹취록에 앞뒤 문장을 보면 여기서 ‘그분’은 특정한 개인이 아닌 단순히 사람을 지칭하는 인칭 대명사다. 또 녹취록 전체를 살펴봐도, 현직 대법관이 천화동인 1호의 숨겨진 주인이란 근거는 보이지 않는다.
물론 녹취록과 별개로 언론사가 독자적인 취재를 통해 기사를 뒷받침하는 물증을 찾았다면 문제가 되지 않는다. 하지만 그런 물증은 기사에 제시되지 않았다.      
▲한국일보 기사(2023.1.12일자). 이날 한국일보는 검찰이 천화동인 1호의 차명 소유자(그분)를 현직 대법관으로 특정했다고 보도했다. 2021년 2월 4일자 정영학 녹취록에 이 같은 내용이 나온다고 썼다.   

시기 별로 관통하는 맥락을 살펴야 대장동 비리의 실체에 접근  

녹취록 속 업자들의 대화는 시기 별로 변화하고 특히 업자들의 입지와 상황에 따라 변주된다.
2012~2013년에는 주로 수사를 피하려고 법조인들에게 청탁하고, 사업을 따내기 위해 로비를 모의하는 장면이 여럿 나온다. 반면 수익이 나오기 시작한 2019년 이후에는 이권을 얻는 데 들어간 로비 비용을 어떻게 나눠 부담할지를 두고 다툼이 일어난다.
단순히 한두 문장만으로 판단할 것이 아니라, 대화가 이어지는 유기적인 맥락을 따라갈 때 정영학 녹취록에 담긴 행간의 의미를 제대로 읽어낼 수 있다. 이를 통해 부동산 토건족들이 천문학적 개발 이익을 챙길 수 있었던 배경은 무엇인지, 그 과정에 지방 권력과 언론·법조 엘리트들은 어떻게 조력자로 나섰는지 등 ‘부패의 카르텔’을 추적할 수 있다. 

‘정영학 녹취록’을 바탕으로 대장동 검찰 수사 검증 보도

뉴스타파는 지난해 11월 11일부터 정영학 녹취록과 피의자신문조서 등을 바탕으로 대장동 검찰 수사의 내용과 방향을 검증 보도해왔다. 지금까지 16개의 기사를 냈다. 
<대장동 키맨 김만배 "기자들에게 현금 2억씩, 아파트 분양권도 줬다"> 에서 김만배가 언론사 기자들에게 금품이나 분양권을 주면서 관련 기사를 막아 온 정황을 처음 폭로했다. 이어 김만배가 ‘50억 클럽’ 머니투데이 홍선근 회장이 두 아들 계좌로 49억 원을 받았다가 돌려주고판·검사들에게 골프를 접대하고 100만 원씩 용돈을 준 의혹을 보도했다. 보도의 근거는 상당 부분 ‘정영학 녹취록’이었다. 
또한 ‘정영학 녹취록’에 등장하는 고위 법조인 로비 의혹도 추적했다. 2012~2013년 당시 김수남 전 검찰총장, 윤갑근 전 대전고검장 등이 성남을 관할하는 검찰청의 장으로 재직할 때, 대장동 업자들로부터 모종의 청탁을 받은 단서를 ‘정영학 녹취록’에서 찾아냈다. 
극심한 정보의 불균형으로 검찰이 흘리는 대로 ‘받아쓰기’할 수밖에 없는 기성 언론의 관행을 거부하고, 정권 교체 후 대거 바뀐 수사팀이 사실상 다시 시작한 대장동 수사가 제대로 이뤄지고 있는지 검증할 수 있었던 것은 기본적으로 ‘정영학 녹취록’이 있었기 때문이다. 
‘정영학 녹취록’은 검증 없는 대장동 보도를 바로잡는 ‘팩트체커’이며, 대장동 사건의 본질을 꿰뚫는 ‘공적 기록물’이다. 뉴스타파가 1,325쪽 ‘정영학 녹취록’을 공개하는 이유다.  
제작진
앵커심인보
제작송원근 박종화
촬영정형민 김기철 오준식
디자인이도현
출판허현재
편집정애주
데이터김강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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