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동 돈세탁 조직 거래내역에 삼성 등 한국기업도 대거 나와

2020년 09월 22일 19시 30분

한국탐사저널리즘센터-뉴스타파는 ‘국제탐사보도언론인협회(ICIJ)’ 등과 함께 미국 재무부 금융범죄단속국(FinCEN)에서 유출된 ‘의심거래보고서’(SAR)를 입수해 국제협업 프로젝트 <美 재무부 첩보 유출(FinCEN Files)>를 진행했습니다. 아울러 유럽과 중동지역에서 활동하는 탐사보도기관인 ‘조직범죄와 부패보도 프로젝트(OCCRP)’가 입수한 국제 돈세탁 조직 ‘자랍(Zarrab) 네트워크’ 관련 데이터도 함께 분석했습니다. 뉴스타파는 2013년 <조세도피처 프로젝트>, 2016년 <파나마 페이퍼스>, 2017년 <파라다이스 페이퍼스>에 이은 네 번째 역외금융범죄 관련 국제공조 취재 결과물을 9월 21일부터 보도합니다.

①'김O삼'과 '강O희', 수백개 돈세탁 유령회사 임원 등재
②삼성전자 수상한 외환거래, 美 금융감시당국에 포착
③중동 돈세탁 조직 거래내역에 한국기업도 대거 나와
④'천억 원 벌금' 기업은행 사건...배후에 국제 돈세탁 조직

200억 달러. 우리돈으로 23조 원.

터키와 이란을 잇는 중동 돈세탁 네트워크의 총책 레자 자랍이 세탁한 자금 규모입니다. 자랍을 수사한 미국 검찰이 최소한으로 잡은 추산액이 이 정도입니다.

유럽과 중동 지역에서 활동하는 국제탐사보도기관 조직범죄와부패보도프로젝트(OCCRP)는 2018년부터 미국과 터키 당국에 1년 가까이 정보공개청구를 해 레자 자랍과 그가 움직인 국제 돈세탁 네트워크 관련 수사기록 등을 입수했습니다.

한국탐사저널리즘센터-뉴스타파는 OCCRP와 ICIJ 등 국제탐사보도 전문 언론과 함께 이 자료를 토대로 지난 여러 달 동안 협업 취재를 진행했습니다.

OCCRP가 입수한 자료에는 ‘자랍 네트워크’ 등 중동 지역 돈세탁 조직이 운용한 유령회사의 은행 입출금 기록이 포함돼 있습니다. 2007년에서 2015년 사이, 모두 75만 건에 이릅니다.

뉴스타파 취재진은 이 금융거래 데이터에서 ‘Korea’와 국내 주요 기업 이름을 검색했습니다. 그 결과 80여 개 한국 기업의 거래 내역이 나왔습니다. 이 데이터에서 한국 기업이 거래한 것으로 집계된 금액은 1억1000만 달러, 우리 돈으로 1200억 원이 넘습니다.

한국 기업과 금융 거래를 한 상대 회사도 찾아봤습니다. 한 회사 이름이 반복해서 나왔습니다. 한국 기업 전체 거래 횟수의 반 이상이 이 회사와 거래한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이 회사는 두바이 구 시가지 금 시장 인근에 있는 ‘알 나피스(Al Nafees)’라는 이름의 작은 환전소로 확인됐습니다. 이 환전소는 공교롭게도 레자 자랍의 아버지 호세인 자랍이 운영하던 곳입니다. 한국 기업들이 알 나피스와 거래한 액수는 모두 3100만 달러로 집계됩니다.

▲ 자랍 돈세탁 네트워크의 주요 업체 중 하나인 알 나피스 사설환전소(가장 좌측)의 간판이 두바이 시가지에서 확인된다. (출처: 구글 스트리트뷰)

이 환전소는 미국 정부 제재 위반으로 2013년 미 재무부 해외자산통제국(OFAC)에 벌금형을 선고받은 적도 있습니다. 이곳과 거래를 많이 한 한국 기업은 현대자동차, 현대중공업, 현대종합상사입니다. 이 현대 계열사가 알 나피스와 거래한 액수는 1840만 달러입니다.

현대그룹 외에도 LG화학, LG상사, 한화, 포스코인터내셔널 등이 알 나피스와 집중 거래한 것으로 확인됐습니다.

레자 자랍이 미국의 대이란 제재로 생긴 틈새시장을 노리고 본격적인 돈세탁 사업을 벌인 것은 2010년부터 2015년 사이입니다. 범위를 이 기간으로 좁히면 자랍 네트워크 등 국제 돈세탁 조직이 움직이는 회사와 한국기업 사이 오고간 외환 거래 액수는 2880만 달러입니다. 집계 결과 현대중공업과 삼성물산의 거래 금액이 전체의 84%를 차지했습니다.


현대중공업의 거래 금액은 265만 달러. 취재진은 왜 이런 업체와 외환 거래를 했는지 물었습니다. 현대중공업 측은 “해외 딜러를 통해 굴착기 등 건설장비를 수출하고 받은 무역거래대금일 뿐”이라고 해명했습니다.

삼성물산의 거래액은 이 보다 훨씬 많습니다. 모두 2156만 달러입니다. 삼성물산의 이 거래 내역 중에는 ‘자랍 네트워크’에 속하지는 않지만 국제 돈세탁 창구로 잘 알려진 HMEA라는 홍콩회사와의 거래도 포함돼 있습니다. 이 회사는 이란계 스웨덴인 하탐 네마가 돈세탁 용으로 2012년 홍콩에 설립한 회사입니다. OCCRP의 보도에 따르면 HMEA는 2012년부터 2014년까지 무역 거래 등을 위장한 돈세탁으로 최소 4억5000만 달러(5200억 원)를 이란에 보냈습니다.

취재진이 왜 이 업체와 돈거래를 했는지 묻자 삼성물산 측은 “HMEA 거래와 관련해서는 아직 확인된 바가 없다”라고만 답했습니다.

뉴스타파 취재 결과 이 HMEA라는 돈세탁 통로 회사와 거래한 삼성계열사는 삼성물산 말고도 더 있었습니다. 바로 삼성전자입니다.

취재진이 이번에 유출된 미국 재무부 금융범죄단속국(FinCEN) 데이터를 분석한 결과 미국 정부도 HMEA를 돈세탁 의심 업체로 지목하고 있었고, 이 회사의 10대 주요 거래처 가운데 하나가 삼성전자라고 특정한 사실을 확인했습니다.

미국 금융범죄단속국 보고서에는 2013년 1월부터 11월까지 HMEA와 삼성전자 본사 및 중국 쑤저우 공장 사이에 오간 40만 달러와 22만 달러의 송금 내역이 기재돼 있습니다.

뉴스타파는 자랍 네트워크 등 중동 지역 돈세탁 조직 관련 업체와 외환 거래를 한 기록이 나오는 한국 대기업에 질의서를 보내 거래 이유를 물었습니다. 답변은 대부분 비슷했습니다. 정상적인 무역 거래였지만 상대 회사가 지정한 업체를 통해 무역대금을 주고받았을 뿐이라는 해명이었습니다.

하지만 우리 기업의 의지와 무관하게 돈세탁 업체와 거래했다고 하더라도 뜻하지 않게 피해를 볼 수가 있습니다.

▲ 2000년대 중반부터 최근까지도 세계 주요 은행들이 이란 제재를 위반해 범칙금을 낸 사례들이 확인된다. (출처: 2020, 미 의회조사국(CRS) 보고서)

지난 7월 미국 의회조사국 보고서에서 나오듯 세계 거대 은행들이 이란 제재 위반과 돈세탁방지법 등을 위반해 천문학적인 범칙금을 내는 일이 종종 일어납니다. 지난 4월 한국의 IBK기업은행이 돈세탁방지시스템을 허술하게 운영했다는 이유로 미국 당국에 1000억 원대 벌금을 낸 것도 대표적인 사례입니다.

더 큰 문제는 이 같은 국제 돈세탁 네트워크가 돈세탁을 넘어 국제 범죄조직이 계속 커나갈 수 있는 토양이 되고 있다는 점입니다.

뉴스타파는 이번 미국 재무부 금융범죄단속국 유출 자료와 OCCRP가 입수한 ‘자랍 네트워크’ 관련 자료를 분석해 국제 돈세탁에 활용된 요주의 회사 명단을 공개합니다.

‘자랍 네트워크’ 관련 회사


‘자랍 네트워크’ 외 국제 돈세탁 조직 관련 회사

▲ OCCRP가 입수한 자료에서 뉴스타파가 취합한 대이란 제재 관련 국제 돈세탁 업체 명단.

레자 자랍(Reza Zarrab/Riza Sarraf)은 누구인가?

레자 자랍은 1983년 이란에서 태어나 1살 때 터키로 이주했다. 20대 때 국제 돈세탁에 뛰어든 자랍은 터키와 이란을 잇는 국제 돈세탁 조직인 이른바 ‘자랍 네트워크’를 운영한다. 그는 유령회사와 사설환전소를 통해 세탁한 유로화와 금괴를 이란으로 빼돌리고 막대한 수수료를 챙겼다.

엄청나게 쌓은 부로 호화로운 생활을 즐기던 자랍은 2016년 3월 미국 마이애미 공항에서 체포돼 돈세탁과 이란 제재 위반 등으로 미국 검찰에 기소됐다가 유죄 인정과 수사 협조를 조건으로 풀려났다. 자랍은 트럼프 대통령의 최측근인 루디 줄리아니를 법률대리인단으로 고용하고 미국 검찰의 수사에 적극 협조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른바 ‘자랍 사건’은 돈세탁 사건에서 시작해 레제프 타이이프 에르도안 터키 대통령과 자페르 차을라얀 전 경제부 장관, 무아마르 귤레르 전 내무부 장관, 그리고 터키 국영은행 할크방크의 부행장이었던 메흐메트 하칸 아틸라 등 거물급 인사들의 뇌물 사건 등으로 비화됐다. 또 트럼프 대통령과 에르도안 대통령의 관계로까지 이어지며 국제 사회의 주목을 받고 있다.

제작진
취재김용진 홍우람 김지윤 이명주
촬영최형석 정형민 오준식
편집윤석민
CG정동우
디자인이도현
웹출판허현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