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

[조동(朝東)100년] ⑬ 조선·동아의 100년은 대한민국에 무엇인가?

2020년 04월 01일 23시 00분

문재인 대통령은 4월 1일 동아일보 창간 100년을 맞아 다음과 같은 영상 축사를 보냈다.

“동아일보 창간 100주년을 축하합니다. 동아일보 100년은 기자정신이 아로새겨진 100년입니다. (중략) 동아일보 100년은 또한, 국민들과 함께해온 100년입니다. 동아일보는 물산장려운동과 민립대학 설립운동, 조선체육회 설립과 같이 민심이 요구하는 일에 적극적으로 함께했으며 손기정, 남승룡 선수의 가슴에서 일장기를 지운 일은 국민들에게 커다란 독립 의지를 전해준 용기 있는 행동이었습니다.” 

동아일보 창간 100주년 문재인 대통령 축사, 4월 1일


문 대통령이 언급한 ‘일장기 말소 사건’은 일제강점기 동아일보 지면을 통해 결행된, 일제에 대한 항거의 상징임은 분명하다. 하지만 그 자랑스런 역사가 현재의 동아일보에 귀속되는 것은 부당하다고 동아일보 해직기자들은 말한다.

“동아일보는 ‘일장기 말소 사건’을 동아일보의 항일운동이라고 표현하고 있어요. 근데 사실 정확히 밝히자면 1936년에 손기정 선수가 베를린 올림픽대회에 가서 마라톤 우승을 했을 때, 신문 사진에 가슴에 있던 일장기를 제일 먼저 지워버린 데는 여운형 선생이 발간하던 조선중앙일보였어요. 동아일보는 중앙지에서는 못하고 지방판에 그날 저녁에 지운 거예요. 이게 진실인데, 조선중앙일보는 그 뒤에 폐간돼 버렸고. 그래서 동아일보가 독점을 해 버린 거예요, 일장기 말소 사건을. 그리고 그것을 자기들이 항일운동을 한 증거라고 조작을 했고. 당시에 일장기를 지운 사람은 사회부장, 그 유명한 작가 현진건 선생입니다. 그리고 사회 체육 담당 이길용 기자였어요. 그리고 사진부 기자들까지 해서 경영진과 무관하게 자기들 선에서 일장기를 그냥 없애버린 겁니다.”

이부영 전 동아일보 기자, 동아투위 위원

▲ 동아일보 일장기 말소 지면 1936.8.25

일장기를 지우고 인쇄된 손기정 선수 사진이 신문에 나가자마자 당시 동아일보 송진우 사장, 그리고 김성수 사주는 울분을 참지 못했습니다. 송진우 사장은 ‘아이들 성냥불 장난에 고루거각(높고 큰 누각)이 불 탄다’, 이렇게 탄식을 하면서 기자들의 행위에 대해 아주 울분을 토했다고 합니다. 그런데 그 후에 어떻게 됐습니까? 그 기자들 다 해고됐거든요, 바로. 13명이 그 당시에 해고가 됐어요. 그랬는데 그 후에 동아일보가 그 사건을 어떻게 이용을 하고 있습니까? 동아일보가 마치 일제에 저항하기 위해서 일장기 말소 사건을 일으킨 것처럼 그렇게 내내 선전해오고 있습니다. -박종만 전 동아일보 기자, 동아투위 위원

동아일보가 일제에 저항한 증거라고 지금까지 줄곧 주장하고 있는 일장기 말소 사건은 동아일보 사주나 경영진과는 무관한 젊은 기자들의 항거였다. 문재인 대통령이 동아일보에 보낸 축사는, 그것이 ‘축사’라는 성격을 감안하더라도 대통령의 공개 발언으로 기록에 남을 수밖에 없다는 점 때문에 역사 왜곡의 빌미가 될 가능성이 적지 않다. 동아일보는 대통령의 축사 전문을 “동아일보 100년은 국민과 함께 한 100년”이라는 제목으로 4월 1일자 창간특집호에 게재했다.

문 대통령은 축사에서 다음과 같은 발언도 했다.

“국민들도 동아일보를 응원했습니다. 6·10 만세운동과 광주학생운동, 윤봉길 의사의 의거 등 독립 운동을 알리면서 판매 금지와 정간, 폐간에 이르기까지 일제의 숱한 탄압을 받았지만 그때마다 국민들은 함께 울분을 토했고 독재와 검열의 시대, 기사 삭제, 광고 철회로 인한 동아일보의 ‘백지(白紙)’까지 국민들은 사랑했습니다. 1975년 1월 1일, ‘언론의 자유를 지키자’는 제목의 익명 유료 광고를 시작으로 학생들과 시장의 상인, 종교인들, 젊은 부부와 고국의 민주주의를 염원한 해외 동포들까지 돼지저금통을 깨며 동아일보에 힘을 주었습니다.”

동아일보 창간 100주년 문재인 대통령 축사, 4월 1일

동아일보 웹사이트에는 ‘동아일보 역사’를 10년 단위로 소개하는 페이지가 있다. 1970년대 코너엔 동아일보가 그 10년을 대표하는 것으로 평가한 8대 사건이 올라와 있다.


여기엔 한국 언론 역사에 중요하게 기록돼야 할 사건이 하나 빠져 있다. 1974년 12월 20일 백지광고 사태와 1975년 김상만 사장의 언론자유황금펜상 수상결정 사이에 들어가야 할 1975년 3월 17일 동아일보 기자, 동아방송 PD 및 아나운서 100여 명 강제 해고 사건이다. 박정희 유신독재정권과 동아일보 사주의 야합으로 동아일보에서 쫓겨난 이 100여 명의 젊은 언론인들은 그 이후 다시는 청춘을 바쳤던 그곳으로 돌아가지 못했다.

▲ 동아일보 측이 동원한 폭력배들에게 농성 중 쫓겨난 동아일보 기자들 1975.3.17

문재인 대통령의 위 축사에서도 바로 이 부분이 빠져 있다. “동아일보의 백지까지 국민들이 사랑”한 건 맞지만, 그 대상은 동아일보 사주나 경영진이 아니라 독재와 사주에 저항해 자유언론을 실천하려 했던 동아일보의 젊은 언론인들이었다.

문재인 대통령은 지난 3월 5일 조선일보 창간 100년을 맞아 역시 영상 축사를 보낸 바 있다.

“조선일보 창간 100주년을 축하합니다. 지난 100년, 조선일보의 지면에는 대한민국 영욕의 역사가 고스란히 실려 있습니다. 우리의 영광과 치욕, 애환과 분노가 매일 아침 조선일보와 함께했습니다. 3·1 독립운동으로 상승한 민족의 기운에 힘입어 1920년 조선일보가 ‘신문명 진보주의’를 표방하며 창간되었습니다. 창간된 해부터 모두 네 차례 정간을 겪을 정도로 조선일보는 반일 민족주의에 앞장섰고, ‘조선 민중의 신문’이라는 기치를 세웠습니다. (중략) 해방 후에도 조선일보는 국민의 곁에 있었습니다. 1995년에는 ‘산업화는 늦었지만 정보화는 앞서가자’는 캠페인으로 정보통신 강국의 미래를 준비했고, 외환위기를 맞은 1998년 ‘다시 뛰자’ 캠페인으로 국민에게 용기를 불어넣었습니다. 2007년 ‘북한 결핵어린이돕기’와 2014년 시작한 ‘통일 캠페인’은 높은 분단극복 의지를 보여주었습니다.

조선일보 기자 여러분, 임직원 여러분, 조선일보의 영향은 매우 크고 그만큼 할 수 있는 일이 많습니다. 그중에서도 가장 중요한 것은 국민 통합을 위한 역할입니다. 국민 통합에 앞장설 때 조선일보는 가장 빛났습니다.”

조선일보가 ‘반일 민족주의에 앞장섰다’, ‘해방 후에도 국민의 곁에 있었다’, ‘높은 분단극복 의지를 보여줬다’는 대통령의 축사 내용은 조선일보가 걸어 온 100년 역사와는 상당히 배치되는 내용이다. 뉴스타파가 앞서 [조동(朝東)100년] 시리즈에서 보도했듯이 조선일보는 수시로 일왕 부부 사진을 대문짝만하게 1면에 실었고, 제호 위에 일장기를 붉은 색 컬러로 인쇄해 올렸으며, 조선의 청년들을 일본제국주의 침략전쟁 총알받이로 내몰았고, 박정희·전두환 독재정권과 유착해 사세를 확장했다. 또한 수많은 북한 관련 오보와 왜곡 보도로 남북 간 갈등과 대립을 부추겼다.

축사는 그 성격상 ‘과(過)’보다는 ‘공(功)’을 부각시키기 마련이다. 두 신문을 향한 문 대통령의 상찬도 그런 측면에서 이해할 수 있다. 하지만 그 대상이 조선일보와 동아일보일 때는 그 상찬의 배경에 역설적으로 두 신문의 여전한 영향력이 작용했을 가능성을 떠올리지 않을 수 없다.

종이신문의 영향력이 떨어지고 있다지만 조선일보 하루 발행부수는 백 30만 부(2018년 기준)가 넘는다. 동아일보도 하루 96만 부에 이른다. 한국 신문 시장에서 발행부수, 유료부수 기준으로 1, 2위다. 한겨레나 경향신문보다 4-5배 많다.

매출액을 보면 2018년 기준으로 조선일보가 3,062억 원, TV조선이 1,531억 원 규모다. 동아일보는 2,945억 원, 채널A는 1,561억 원이다.

발행부수, 매출 규모 등의 외형뿐만 아니라 보수기득권층을 대상으로 한 아젠다세팅과 여론주도 능력도 여전히 막강하다.

동아일보 해직기자인 정연주 전 KBS 사장은 이렇게 말한다.

“동아일보하고 조선일보가 스스로 권력 집단이 됩니다. 특히 전두환 체제를 거치면서 당시에 엄청나게 언론에 대한 여러 가지 특혜를 많이 베풀었습니다. 그때부터 언론 자본이 굉장히 강력하게 형성이 돼요. 그러면서 조선과 동아일보 스스로 권력 집단이 되고, 기득권 세력의 핵심이 됩니다. 강자의 권력을 대변하고 기득권자의 논리에, 이념에 이데올로기를 제공하는 기지가 된 거예요.” 

정연주 전 동아일보 기자, 동아투위 위원

그리고 스스로 권력이 된 조선과 동아일보가 민주화 이후 마련된 언론자유의 공간을 마음껏 누리는 것은 역사의 아이러니라고 했다.

“6월 항쟁 이후에는 우리 사회에 일정한 언론 자유의 공간이 생기잖아요. 그러니까 그 언론 자유라는 것이 시민들의 저항에 의해서 사실은 마련된 거잖아요. 6월 항쟁의 결과물이니까. 그런데 그 넓어진 언론 공간이 그런 언론 권력화된 조선일보나 동아일보에게는 날개를 달아주는 거예요. 마음껏 쓸 수 있으니까, 얼마든지 자기들이. 정말 엄청난 역사의 아이러니인데 온갖 희생과 국민들의 저항으로 얻어진 그 넓은 언론 자유의 공간에서 기득권 세력의 핵심인 조선, 동아가 언론 자유의 넓어진 공간에서 날개를 다는 겁니다.” 

정연주 전 동아일보 기자, 동아투위 위원

역시 동아일보 해직기자인 이부영 자유언론실천재단 이사장은 국민의 위임을 받지 않은 조선일보, 동아일보의 사사로운 권력 행사를 막는 게 중요한 과제라고 말한다.

“대통령이나 국회는 국민들이 어느 정도 바꾸잖아요. 근데 이 사유권력은 개인 집안, 방 씨 가문, 김 씨 가문, 국민들의 위임을 받지 않은 부당한 권력이거든요. 조선, 동아일보 이걸 어떻게 바꾸어 내느냐가 우리들에게 맡겨진 짐이라고 봐요. 그래서 동아일보를 바꾸기 위해서, 조선일보를 바꾸기 위해서 지난 45년 동안 저희가 이렇게 싸워오고 있고 이런 노력은 그렇게 사사로운 권력이 민주 공화국인 대한민국의 운명을 저희들 마음대로 주무르려는 것을 막으려는 투쟁입니다.” 

이부영 전 동아일보 기자, 동아투위 위원

사실 조선과 동아, 두 신문의 과거사 청산 문제는 해방 후 복간 과정에서 제대로 정리됐어야 했다. 그런 점에서 프랑스의 2차대전 전후 나치 부역 언론 숙청 작업은 우리에게 뼈아픈 교훈을 준다.

뉴스타파는 이번 [조동(朝東)100년] 프로젝트 취재 과정에서 프랑스 언론역사 전문가인 파리1대학 파트릭 에브노 교수와 파리2대학 파브리스 달메라 교수를 만나 프랑스의 전후 언론 청산 과정과 목적 등을 들었다. 이들의 인터뷰를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하지만 우리는 일제강점기 부역 신문을 제대로 청산하지 못했다. 이들은 창간 100년에 이르도록 한국에서 발행부수 1,2위, 매출 1,2위를 달리고 있다. 한 신문은 일등신문임을 자칭한다. 그리고 2020년 3월 5일, 4월 1일 창간 100년 특집호를 내면서 진실의 수호자를 자임하고, 새로운 100년을 내다본다고 선언했다.


동아와 조선, 두 신문의 사과와 반성없는 또 다른 100년을 본다는 것은 한국 사회, 한국 언론의 비극이 아닐 수 없다.

한국탐사저널리즘센터-뉴스타파는 조선일보와 동아일보의 정체를 제대로 알리고 이들이 장악해온 왜곡된 한국 언론생태계를 극복할 방안을 모색하기 위해 지난 3월 5일부터 4월 1일까지 연재한 [조동(朝東)100년] 시리즈 13편과 추가 취재 내용을 토대로 다큐멘터리 영화를 제작해 개봉할 예정이다.


제작진
취재김용진 박중석 조현미 홍주환
프랑스 취재이지용
데이터최윤원
촬영최형석 신영철
디자인이도현
성우방우호
출판허현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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