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밀 유지 제도 악용... 검찰총장실로 흘러간 특활비 돈다발

2023년 11월 09일 13시 30분

뉴스타파와 3개 시민단체, 5개 독립언론·공영방송으로 꾸려진 <검찰 예산검증 공동취재단>의 끈질긴 보도가 이어지면서 검찰 특수활동비라는 ‘성역’이 서서히 무너지고 있습니다.
지금까지 검찰의 세금 부정 사용과 예산 오남용 보도에 집중해 온 공동취재단은 이번에는 국회의 예산 통제와 각종 법망을 교묘하게 회피하며 초법적 방식으로 국민 세금을 쓰는 검찰 특수활동비의 ‘비밀’을 추적했습니다. - 편집자 주
검찰이 수년간 기밀 유지 제도를 악용해 수십억 원대의 특수활동비를 검찰총장실에 현금으로 비축해 놓고 써 왔던 정황이 확인됐다. 현금 사용을 극도로 제한하고 있는 국가 예산 관련 법 규정과 예산지침을 무력화해 세금으로 ‘초법적 자금’을 조성하고 비밀리에 관리해 온 것이다. 
법원 확정판결을 통해 검찰 특수활동비 증빙기록 일부를 확보한 뉴스타파는 지난 7월, 대검찰청의 특수활동비 집행 구조 일부를 분석한 바 있다. 국고에서 대검으로 입금되는 특활비의 절반가량은 전국 검찰청과 고위직 검사들에게 정기 배분되고, 나머지는 대검찰청 운영지원과 계좌로 이체된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지난 7월에도 뉴스타파 취재진은 검찰총장 비서실이 특활비를 지출한 기록을 확인했지만, 대검 운영지원과 계좌 속 특활비와의 관계를 명확히 밝혀내지는못했다. 검찰총장이 한 해 40억~50억 원의  세금을 현금으로 집행했다는 사실은 파악했으나, 어떤 경로를 거쳐 ‘현금화’해 쓰는지 제대로 규명하지 못했다. 
▲ 뉴스타파 취재진은 지난 7월 당시에는 검찰총장 비서실이 특활비를 지출한 기록을 확인했으나, 대검 운영지원과 계좌 속 특활비와의 관계를 명확히 밝혀내지는못했다.
그런데 의문을 풀어낼 실마리가 생각지 못한 곳에서 나왔다. 대검찰청의 입장문이었다. 지난 7월 6일 뉴스타파가 검찰총장실이 특활비를 ‘이중장부’로 관리한 게 아니냐는 의혹을 보도하자, 대검은 출입기자들에게 입장문을 배포했다. 입장문에는 그간 풀리지 않았던 대검 운영지원과 계좌와 검찰총장 비서실 현금 사이의 관계를 보여주는 간략하지만, 중요한 단서가 있었다. 검찰총장 비서실에서 쓴 특활비는 운영지원과 계좌에서 나온 자금이라고 대검이 분명히 밝힌 대목이다.  
대검찰청 운영지원과에서는 특수활동비 전체를 ‘지출내역기록부’로 관리하고 있으며, 검찰총장실은 운영지원과로부터 일부 이관받은 특수활동비를 일선청 수사 및 정보수집 활동 상황 등에 따라 집행한 내역을 관리하고 있으므로 ‘검찰총장실 집행내역’은 ‘운영지원과 지출내역’에 포함되는 것입니다.                                                                                                                             -7월 6일 대검찰청 입장문 中
검찰 주장에 따르면, 검찰총장 비서실 장부에 기재된 특활비 지출 총액은 운영지원과 지출 내역 상의 총액을 넘을 수 없다. 또한 계좌로 관리되는 운영지원과 지출 내역에 검찰총장 비서실로 흘러간 특활비의 흔적이 반드시 남아 있어야 한다. 

검찰총장실 ‘현금 특활비’ 추적 단서는 ‘집행내용확인서 생략’

이에 따라 뉴스타파는 대검찰청 운영지원과에서 검찰총장 비서실로 특활비가 옮겨진 흔적이 매월 반복적으로 나타날 것으로 판단하고, 한 해 기록이 온전히 확보된 2018년과 2019년 대검찰청 특활비 증빙 기록을 집중 분석했다. 2017년 상반기 특활비 자료는 검찰이 ‘무단 폐기’해 기록이 온전하게 없었고, 2020년 6월 이후 기록은 검찰이 아직도 공개하지 않아 분석할 수 없었다.   
2018년과 2019년 2년 치 대검의 특활비 집행 기록을 분석한 결과, 대검찰청 운영지원과 지출 내역에 매월 빠짐없이 특활비 ‘집행내용확인서 생략’ 영수증이 등장했다. 집행내용확인서는 특활비의 사용처를 기록하는 지출증빙 문서다. 감사원 계산증명지침에 따르면, 사용처를 기재했을 때 수사나 정보 수집 등 기밀 유지에 심각한 지장이 생기는 극히 예외적인 경우에만, 집행내용확인서를 생략할 수 있다. 극히 예외적인 상황이 아니라면 특활비 집행내용을 반드시 남겨야 한다. 
대검 운영지원과는 2018년 1월 3억 원, 2월 5억 3천만 원, 3월 3억 7천만 원 등 그해 12월까지 특활비 집행내용확인서를 생략하는 방식으로 계좌에 있던 51억 7,698만 7,680원을 현금으로 지출했다. 같은 기간, 검찰총장 비서실이 지출한 특활비 총액은 51억 7,472만 4,000원이었다. 둘간의 금액 차이는 200만 원가량이다. 
2019년 특활비 지출도 확인했다. 대검 운영지원과는 2019년 1월부터 12월까지 매달 집행내용확인서를 생략하는 방식으로 현금 46억 7,694만 1,480원을 지출했다. 그해 검찰총장 비서실이 집행한 전체 특활비는 총 46억 7694만 1,000원이었다. 천 원 단위까지 금액이 일치했다. 
▲ 2018년 1월부터 대검찰청 운영지원과가 작성한 특수활동비 '집행내용확인서 생략' 영수증. 
이 같은 분석 결과는 ‘집행내용확인서’를 생략하는 방식으로 대검 운영지원과에서 검찰총장 비서실로 수십억 원대의 특활비가  전달됐을 가능성이 높다는 점을 보여준다. 더 정확한 확인을 위해 취재진은 집행내용확인서 생략이 아닌 또 다른 방식으로 특활비가 옮겨졌을 가능성도 추가 검토했다. 이 경우에도 검찰총장 비서실이 쓴 특활비는 대검 운영지원과에서 나왔다는 검찰 주장을 대전제로 삼았다.   
2018년 한 해 동안 대검 운영지원과가 지출한 특활비는 총 59억 7,422만 원이다. 집행내용확인서를 생략하고 쓴 특활비는 앞서 언급한 대로 51억 7,698만 7,680원. 나머지 7억 9,723만 2,320원은 집행내용확인서 생략이 아닌 다른 방식으로 집행됐다. 
대검 운영지원과 2018년 특활비 총 지출액(59억7,422만원)= 
‘집행내용확인서 생략’ 특활비(51억7,698만7,680원) + 
‘집행내용확인서 생략’ 외 특활비(7억9,723만2,320원)
결국, 집행내용확인서 생략을 통해 지출된 특활비를 빼면 대검 운영지원과가 검찰총장 비서실에 조달할 수 있는 남은 특활비는 7억 9,723만여 원뿐이다. 2018년 검찰총장 비서실이 쓴 특활비(51억 7,472만 4,000원)의 15% 수준이다. 집행내용확인서 생략으로 마련한 특활비 없이 검찰총장 비서실이 쓸 특활비 조달이 불가능하다는 결론이 나온다.  
▲ 2018년, 2019년 집행내역확인서가 생략된 특수활동비 총액과 검찰총장이 지출한 특수활동비 총액 비교. 금액 차이가 거의 없다. 
2019년도 마찬가지. 대검 운영지원과는 2019년 집행내용확인서 생략을 통해 46억 7,694만 1,480원을, 그 밖의 방법으로 10억 1,741만 2,640원을 집행해, 총 56억 9,435만 4,120원의 특활비를 썼다고 기록을 통해 밝혔다.  
대검 운영지원과 2019년 특활비 총 지출액(56억9435만4,120원)= 
‘집행내용확인서 생략’ 특활비 (46억7,694만1,480원) + 
‘집행내용확인서 생략’ 외 특활비(10억1,741만2,640원)
반면, 2019년 한 해 동안 검찰총장 비서실이 지출했다고 밝힌 특활비는 총 46억 7,694만 1,000원이다. 집행내용확인서를 생략하지 않고 대검 운영과가 검찰총장 비서실에 조달할 수 있는 특활비는 10억 1,741만 2,640원이다. 검찰 총장 비서실의 전체 특활비 지출액의 22% 남짓이었다.  

검찰총장 비서실이 쓴 특활비 70~80%, ‘집행내용확인서 생략’을 통해 조달 

그렇다면 아무리 보수적으로 계산해도, 2018년과 2019년 검찰총장 비서실이 쓴 현금 특활비 가운데 적어도 70~80%는 대검 운영지원과 계좌에서 ‘집행내용확인서 생략’을 통해 현금으로 조달됐다는 결론에 이르게 된다. 
▲ 2018년과 2019년 검찰총장 비서실이 쓴 현금 특활비 가운데 적어도 70~80%는 대검 운영지원과 계좌에서 ‘집행내용확인서 생략’을 통해 현금으로 조달한 것으로 추산된다. 

수사기밀 유지의 최후 수단 ‘집행내용 확인서 생략’

뉴스타파가 ‘집행내용확인서 생략’이라는 특활비 현금 지출 방식에 주목하는 것은 그 특수성 때문이다. 특수활동비 집행과 관련된 국고금관리법 시행규칙 및 시행령, 기획재정부 예산 및 기금운용계획 집행지침 등은 한결같이 특활비의 현금 집행을 자제하라고 거듭 강조한다. 
카드나 계좌를 통한 결제가 아닌 현금 지출은 국민 세금으로 마련된 특활비가 적절히 집행됐는지 검증하기 힘들 뿐만 아니라, 공금횡령 등 사적으로 유용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기밀 유지라는 불가피한 경우에만 극히 예외적으로 현금 사용을 허용하고 있다. 또한 특활비를 쓰는 모든 정부 기관은 감사원의 특수활동비 계산증명지침에 따라 특활비 지급 사유, 즉 사용처를 기록해야 한다. 감사원 지침은 대부분 현금으로 지급되는 특활비가 어디에 쓰였는지 확인할 수 있는 마지막 수단이다. 
감사원 지침 적용에 단 하나의 예외가 있다면, 특활비 집행내용확인서 생략이다. 사용처를 기록으로 남겼을 때, 이 때문에수사 정보 활동에 현저한 지장이 생길 우려가 있을 경우에만 집행내용확인서 작성을 생략할 수 있다. 다만 이 때에도 기관장, 대검의 경우 검찰총장의 직접 결재가 필요하다. 
▲ 감사원의 특수활동비에 대한 계산증명지침. 극단적인 경우가 아니면 집행내용확인서를 반드시 작성해야 한다고 기재돼 있다. 
결국, 대검찰청은 관련 법규를 무시하고 극단적인 예외 조항을 남용해 집행내용확인서를 생략하는 방식으로 검찰총장 비서실에 한 해 수십억 원에 달하는 ‘현금 특활비’를 조달했다. 하승수 변호사(세금도둑잡아라 공동대표)는 “검찰은 어떤 목적으로 특활비가 쓰였는지조차 기록하면 안 될 기밀 수사 때문에 집행내용확인서를 생략한 것이 아니라, 검찰총장이 마음대로 특활비를 쓸 수 있도록 일종의 ‘현금 저수지’를 만드는 데 악용한 것”이라고 지적했다. 
뉴스타파가 검찰총장 비서실이 쓰는 특활비 조달 경로를 분석한 2018년, 2019년 당시 검찰총장은 문무일 전 총장, 그리고 윤석열 대통령이다. 
뉴스타파는 기밀 유지를 위해 마련된 집행내용확인서 생략 제도를 남용해 검찰총장 비서실로 특활비를 조달한 것이 사실인지, 이 같은 방식을 이용한 이유가 무엇인지 등을 물었으나 대검찰청은 답변하지 않았다. 
초법적이고 탈법적인 방식의 특수활동비 예산 집행이 단지 검찰총장 비서실만의 문제일까. 전국 전체 지방검찰청으로 취재를 확장한 결과를 4편 <‘특활비 저수지’ 전국 55개 검찰청에서 확인>에서 보도한다.  
제작진
검찰예산검증 공동취재단세금도둑잡아라, 함께하는시민행동, 투명사회를위한정보공개센터, 경남도민일보, 뉴스민, 뉴스하다, 부산MBC, 충청리뷰
취재임선응, 강현석, 조원일, 연다혜
데이터최윤원, 김지연, 전기환
촬영신영철, 정형민, 오준식
CG정동우
편집정애주
웹디자인이도현
웹출판허현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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