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태원 참사 미규명 진실] ⑤ 출동 안 하고 "출동했다" 보고... 112신고 기록은 왜 조작됐나

2024년 09월 11일 10시 00분

2024년 09월 11일 10시 00분

2022년 10월 29일 밤 10시 15분, 서울 이태원에서 압사 참사가 발생했다. 시민 158명이 거리 위에서 사망하고, 334명이 부상당했다. 참사 트라우마로 10대 생존자 1명도 목숨을 끊었다. 그로부터 약 1년 10개월이 흘렀다. 아직까지 이태원 참사가 '왜' 발생했는지는 제대로 밝혀지지 않았다.  
현재 이태원 참사의 원인은 파편적으로만 드러났다. 참사 직후 한 달여 간 진행된 국회 국정조사는 참사의 일부분만 다뤘다. 일부 공무원에 대한 수사가 있었고 재판이 진행 중이지만, 책임자들의 '개인적·형사적 책임'을 입증하는 데 집중하고 있다. 참사를 일으킨 우리 사회의 여러 구조적 요인을 규명하기는 역부족이다. 
지난 5월 2일, '10·29 이태원참사 피해자 권리보장과 진상규명 및 재발 방지를 위한 특별법'(이태원특별법)이 통과됐다. 이 법에 따라 곧 독립적 조사기구인 '특별조사위원회(특조위)'가 구성된다. 특조위는 이태원 참사와 관련된 각 기관의 관행과 책임, 구조적 한계, 시스템과 법령의 부재 등을 총체적으로 조사한다. 참사가 발생한 지 551일 만에야 이태원 참사 전반에 대한 진상규명 기회가 열린 것이다. 
그렇다면 특조위가 반드시 조사해야 할 진상규명 과제들은 무엇일까. 뉴스타파와 독립언론 '코트워치'는 이태원 참사와 관련된 국회 국정조사 기록과 책임자들의 형사재판 기록, 별도 입수한 정부 문건 등을 분석해 특조위에서 반드시 다뤄야 할 진상규명 과제들을 추출했다. 그 과제들을 연재기사로 제시한다. <편집자 주>
[이태원 참사 미규명 진실]
① 그날 경찰은 왜 기동대를 배치하지 않았나  
② 대통령실 이전은 경찰 대처에 어떤 영향을 미쳤나
③ 대통령실 이전은 용산구청에 어떤 영향을 미쳤나
④ 경찰, 수뇌부 방침 때문에 '안전유지업무' 회피했나 
⑤ 출동 안 하고 “출동했다” 보고…'112 기록 조작' 관행이었나
이태원 참사 전 '압사 위험' 등을 알린 112신고는 모두 11건이었다. 그런데 이 중 10건은 경찰에 의해 사건 처리 내역이 조작됐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 검경 수사 결과, 경찰은 112신고를 받은 뒤 현장에 가지도 않았으면서 '출동했다'고 보고했다. 또 신고자와 통화를 하지 않고도 경찰관을 배치했다는 내용의 통화를 했다고 보고했다. 
의문이 생길 수밖에 없다. 경찰의 출동 기록 조작 행위는 이태원 참사 당일에만 '특별하게' 발생했을까. 당시 근무했던 일부 경찰의 근무 태만 혹은 일탈이 주요 원인인 것일까 아니면 그렇게 할 수밖에 없었던 '또 다른 이유'가 숨어있을까. 

무시된 112신고…경찰, 출동 안 하고 "출동했다" 허위 보고 

이태원 참사를 수사하는 서울 서부지방검찰청은 지난 1월 22일, 용산경찰서 소속 이태원파출소 순찰팀장 2명을 추가 기소했다. 피고인은 참사 당일 이태원파출소 순찰 1팀장이었던 A 경감과 순찰 2팀장이었던 B 경위다. 
A 경감은 참사 당일인 2022년 10월 29일 오전 8시부터 밤 8시까지, B 경위는 같은 날 밤 8시부터 다음날 오전 8시까지 파출소 업무를 총괄했다. 검찰에 따르면, 이들은 참사 당일 접수된 112신고에 부실 대응하고, A 경감의 경우 신고 처리 기록을 직접 조작하기까지 했다. 
취재진은 최근 이태원파출소 순찰팀장 2명에 대한 검찰 공소장을 입수했다. 검찰 공소장과 참사 당일 파출소 근무일지, 112신고 기록 등을 종합해 이태원파출소의 신고 대응 과정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참사 당일 '압사 위험'을 경고한 112신고는 모두 11건. 그 중 10월 29일 오후 6시 34분, 최초 신고가 순찰1팀장인 A 경감 근무시간에 접수됐다. "좁은 골목인데 사람들이 엉켜서 압사가 우려된다. 인원 통제 등 조치가 필요하다"는 내용이었다. 신고자 위치는 해밀톤호텔 왼쪽, 이태원 참사 현장이었다. 
'최초 신고 사건 처리 내역서'를 보면, 이태원파출소 소속 경찰관 2명이 '현장(신고장소)에 출동했다'고 나온다. 서울경찰청 112상황실에 접수된 신고 내용은 용산서 112상황실로 전달됐고, 저녁 6시 35분 이태원파출소로 지령이 떨어졌다. 이후 '순31호' 순찰차를 탄 경찰관 2명이 신고자 위치로 출동해 저녁 6시 39분 현장에 도착했다. 그리고 저녁 8시 11분 사건 종결처리를 했다. 사건 처리 내역서의 종결사항에는 '강력 해산조치'라고 적혔다. 인파 통제를 완료했다는 의미로 읽힌다. 기록상으로는 그렇다. 
하지만 검찰 공소장에 따르면, 이 사건 처리 기록은 조작됐다. A 경감은 31호 순찰차 근무자들에게 현장 출동을 지시하지 않았다. 현장 도착 시간이라는 저녁 6시 39분경, '순31호' 순찰자 근무자들은 저녁 6시 26분경 접수된 무전취식 신고 사건을 처리 중이었다. 위치는 이태원 참사 현장 길 건너 골목으로 150m 정도 떨어져 있었다.
A 경감은 지시를 내리지 않은 데 더해 용산서 112무전망에 "31호 순찰차가 출동한 뒤 현장에 도착했다"는 허위 보고도 했다. 또 저녁 7시 1분쯤에는 112시스템에 접속해 '강력해산조치'라는 거짓 내용을 입력했다. 
'이태원 참사' 발생 전 압사를 경고한 최초 신고의 사건 처리 내역서. 서울 용산경찰서 소속 이태원파출소 경찰관이 출동해 '강력해산조치'했다고 나온다. 하지만 수사 결과, 거짓이었다.

수사 결과, 112신고 11건 중 10건 '처리 결과 조작' 의심

검찰 공소장에 따르면, B 경위 근무시간에 접수된 다른 10건의 112 신고 중 9건의 처리 내역도 사실과 다르게 기재됐다. 현장 출동 기록이나 신고자와의 통화 내용 등 112시스템상 조치 내용 대부분이 실제와 달랐다.
B 경위로 순찰팀장이 교대된 뒤인 저녁 8시 9분경. "사람들이 너무 많아 넘어지고 다친다"는 2번째 신고가 접수됐다. 이태원파출소 상황근무자들은 경찰관 2명이 순찰차를 타고 현장에 도착했고, "대상자들 인도로 안내 후 종결"했다고 112시스템에 입력했다. 하지만 수사 결과 이 신고로 출동해 현장에 도착한 경찰관은 없었다.
저녁 8시 33분경 접수된 3번째 신고에 대해서도 이태원파출소 측은 신고자에게 전화해 "세계음식거리에 경찰관 배치됨을 고지 후 종결"이라고 했지만, 실제 통화는 없었던 것으로 드러났다. 3번째 신고 내용은 "사람들이 너무 많아 압사당하고 있다. 아수라장이다"였다. 
저녁 8시 53분 4번째 신고는 압사 위험을 경고한 첫 번째 '코드1' 신고였다. 경찰의 112신고 대응 체계는 코드0~코드4로 나뉜다. 숫자가 적을수록 긴급한 사건을 의미한다. 코드1은 '생명·신체에 대한 위험이 임박·진행 중이거나 직후인 경우'에 해당한다. 이때 경찰은 다른 사건보다 '우선 출동'해야 한다. 
이태원파출소 측은 "신고자와 통화해 주변에 경찰관 배치됨을 안내 후 종결"했다고 사건 처리 내역서에 적었다. 그러나 수사 결과는 반대였다. 서류에 출동자로 기록된 경찰관들은 현장에 배치되지 않았다. 경찰 측은 사실과 다른 내용이 서류에 기재된 이유에 대해 '단순 실수'라고 국회 제출자료에서 주장했다. 
이태원파출소의 모습. '이태원 참사' 당일 파출소에 근무했던 순찰팀장 2명은 올해 1월, 112신고 사건 처리 내역에 허위 내용을 기재한 혐의로 기소됐다.
밤 9시경 5번째 신고는 '코드0'이었다. 코드0은 112신고 중 가장 긴급성이 높은 등급으로 경찰은 '최단시간 출동'해야 한다. 그러나 이태원파출소 측은 신고 접수 사실을 순찰팀원에게 고지하지 않았다. 현장 경찰관들로부터 조치 사항을 전달받지도 않았다. 그리고 112시스템에서는 "일대 시민 통제해 종결"이라며 사건을 종결 처리했다.  
밤 9시 10분경 접수된 8번째 코드1 신고의 처리 결과도 마찬가지였다. 이태원파출소는 현장 출동과 동시에 "상담안내 경비 인력 배치 요청"이라고 112시스템에 입력했지만, 사실이 아니었다. 검경 수사에 따르면 해당 신고 관련 이태원파출소가 용산서에 연락해 이태원에 대한 경비 인력 배치를 요청한 적은 없었다. 
참사 발생 직전인 밤 9시 51분과 10시에 접수된 9, 10번째 신고의 처리 결과도 허위였다고 검찰은 결론내렸다. 두 개 신고의 사건 처리 내역서에는 '신고자와 통화해 상황 설명 후 종결'이라고 기재돼 있다. 공소장을 보면, 당시 이태원파출소 측은 신고자에게 '곧 경찰관들이 출동할 것이니 기다리면 조치하겠다'는 취지로 말했다. 반면 검찰은 "아무런 조치를 취하지 않고" 112시스템에서 사건을 종결했다고 봤다. 
'이태원 참사' 발생 전 경찰에 접수된 '압사 경고' 112신고 11건의 내용과 사건 처리 내역, 이에 대한 검경 수사 결과다. 신고 11건 중 10건의 사건 처리 내역에 조작된 내용이 있다는 게 검경 수사 결과다.
검찰은 지난 1월 22일, 첫 번째 112신고의 사건처리 내용을 직접 조작한 의혹을 받는 이태원파출소 순찰1팀장 A 경감을 업무상과실치사상, 공전자기록 위작 등의 혐의로 기소했다. 또 두 번째 신고 때부터 이태원파출소의 상황 근무를 관리했던 순찰2팀장 B 경위에 대해서는 "순찰팀 상황근무자들이 112시스템 종결사항 등을 잘못 입력하고 있음에도 적절한 관리 감독을 하지 않았고, 신고에 대한 적절한 조치를 취하지 않았다"며 업무상과실치사상 혐의를 적용했다. 
동시에 검찰은 두 경찰관에 대해 "(112시스템 허위 입력 등으로) 서울경찰청, 용산경찰서 등 상급 경찰기관으로 하여금 이태원 일대의 인파 집중으로 인한 위험 상황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게 함으로써, 경찰력 동원을 통한 인파집중 상황 해소와 사고의 위험 예방이 실효적으로 이뤄질 수 없게 했다"고 밝혔다. 이태원파출소의 112신고 처리 결과 조작이 이태원 참사 발생에 영향을 미친 주요 요인 중 하나라는 얘기다. 
현재 순찰팀장 2명에 대한 1심 형사재판이 진행 중이다. 지난 7월 17일 서울서부지방법원에서 열린 1차 공판에서 A 경감은 112신고 사건 처리내역을 조작한 공전자기록위작 혐의에 대해 인정했다. 다만, 해당 조작으로 인해 이태원 참사가 발생해 다수 시민이 죽고 다쳤다는 업무상과실치사상 혐의는 부인했다. B 경위는 업무상과실치사상 혐의 공소 사실을 모두 부인했다. 

경찰 "동일 사건이라 생각해 출동 안 했다"

경찰이 반복적으로 112신고 처리 결과를 조작한 경위는 무엇일까. 앞서 진행된 이임재 전 용산경찰서장 등 용산서 관계자들의 재판 과정에서 그 이유를 일부 짐작케하는 대목이 등장했다. 
지난해 11월 20일, 용산서 관계자들의 재판에 안 모 이태원파출소장이 증인으로 나왔다. 피고인 측 변호사가 "이태원파출소 상황요원 2명에게 왜 참사 당일 저녁 8시부터 코드1, 코드0 신고를 받고도 출동하지 않았는지 물어봤느냐"고 물었다. 그러자 안 파출소장은 "자세히 물어보지 못했지만, '다른 지역에 동일 사건으로 신고된 게 있어서 (신고 내용이) 이미 처리된 줄 알고 출동하지 않았다'는 취지로 이해했다. (순찰팀장들도) 동일 사건이라 착각해 출동하지 않았다고 한다"고 답했다. 
112 신고자가 모두 다른데도 경찰이 '동일 사건'으로 취급한 이유는 다른 용산서 관계자의 진술을 통해 알 수 있다. 참사 당일 용산서 112상황실에서 근무했던 곽 모 경찰관의 증언이다.
변호인 : 4번째 112신고내용(20:53경) 내지 8번째 112신고내용(21:10경)은 몇십m 범위 내의 근접한 장소에서 이뤄졌죠?

곽 모 용산경찰서 경찰관 : 예, 신고 시점 기준으로 보면 30미터~40미터 내외의 거리입니다.

변호인 : 증인으로서는 4번째 112신고내용(20:53경) 내지 8번째 112신고내용(21:10경)이 가까운 장소에서 짧은 시간 내에 이뤄져 사실상 동일한 사항에 대한 112신고 내용으로 인식하고 있었던 것이죠?

곽 모 용산경찰서 경찰관 : 예, 저희끼리 쓰는 용어로는 동일 사건이라고 명칭합니다.

2023.9.11 이임재 등 용산경찰서 관계자 재판 증인신문
위 두 가지 증언을 종합하면 다음과 같은 추정이 가능하다.
참사 당일 시민들은 압사 조짐을 인지해 계속 112신고를 했다. 반면 경찰은 비슷한 위치에서 신고가 계속된다는 이유로 여러 건의 압사 위험 신고를 '동일한 하나의 사건'으로 치부했다. '동일 사건'이라는 이유로 별도의 확인 절차를 거치지 않고 경찰관 출동 없이 사건을 종결 처리했다. 그러면서 112시스템에는 '출동', '현장 조치', '인근 시민 통제해 종결', '신고자와 통화해 종결' 등의 내용을 허위로 입력했다. 
'이태원 참사' 발생 직전 현장 골목의 모습. 인파가 가득 들어차 있다. 경찰은 11건의 인파 위험 신고가 들어오는 동안 10건의 신고에서 사건 처리를 조작했다는 혐의를 받고 있다.

경찰 법정 증언 "매뉴얼 대로 할 수 없었다"

문제는 참사 당일 이태원파출소 측이 '왜' 사실과 다른 내용을 112시스템에 입력하거나 허위로 사건을 종결 처리했는지다. 파출소 경찰관들의 무능이나 근무태만 때문일까. 
지난 8월 28일, 이태원파출소 순찰팀장인 A 경감과 B 경위에 대한 2차 공판이 열렸다. 이 자리에는 이태원파출소 소속이었던 최 모 경위가 증인으로 출석했다. 최 경위는 참사 당일 밤 8시 경부터 강 모 순경과 함께 파출소 상황근무자로 일했다. 용산서 112상황실을 경유해 들어오는 112신고를 접수, 상황 파악 뒤 순찰경찰관을 배치하는 게 임무였다. 이태원 참사를 경고한 신고 11건 중 9건(3번~11번 신고)이 최 경위 근무 중 접수됐다. 
증인 신문에서 B 경위의 변호인은 최 경위에게 왜 개별 112신고에 출동하지 않았는지 물었다. 특히 참사 직전인 밤 9시 51분과 10시에 각각 접수된 9, 10번 신고에 대해 물었다. 두 신고 모두 '비출동' 종결 처리됐다.
변호인 : B 경위에 따르면, 9, 10번 신고에 대해선 C, D 경찰관이 별건으로 인근에 이미 출동했고, 파출소 복귀해서 별일 없다고 보고했다고 합니다. 또 신고자와 B 경위가 연락했고, 별 문제 없어서 종결 처리했다는데 맞나요?

최 모 경위 : 그랬던 것 같습니다.

2024.8.28 이태원파출소 순찰팀장 재판 증인신문
또, 이태원파출소 측이 동일사건이라 판단해 따로 경찰관을 출동시키지 않거나 현장 경찰관의 보고없이 종결 처리한 4번~8번 신고에 대해서도 질문했다. 
변호인 : 경찰 수사에서 증인 진술에 따르면, 4번~8번 신고와 관련해서 (B 경위의) 개별적인 출동 지시는 없었다고 했는데 맞나요?

최 모 경위 : 없었던 것 같습니다. 정확히 기억은 안 납니다.

변호인 : 8번 신고에 대해서 B 경위가 C, D 경찰관을 현장으로 보내라고 했고, 두 경찰관이  별다른 보고가 없어서 종결하라고 했다는데 맞나요?

최 모 경위 : 그런 것 같습니다.   

2024.8.28 이태원파출소 순찰팀장 재판 증인신문
이날 재판에서 검사는 '경찰청 112신고 접수지령 매뉴얼' 중 일부 내용을 공개했다.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코드4(비출동 신고)를 제외한 코드0~3 신고는 출동이 원칙이다. 또 동시다발적으로 신고가 접수되고, 비슷한 지역에서 유사 신고가 접수됐어도 신고자나 신고 전화번호가 다르면 반드시 별도로 현장 출동해 확인해야 한다. 마지막으로 현장에 간 경찰관은 도착과 동시에 상황을 공유하고, 휴대전화 촬영, 문자 발송 등으로 중간 보고를 해야 한다. 지구대·파출소 상황실은 현장 상황을 확인 후 종결처리 의무가 있다.
즉 참사 당일 이태원파출소의 사건 처리 방식, 이미 근처에 나가봤다는 이유로 별도의 다른 신고 사건에 대해 따로 출동하지 않고, 현장 보고 없이 사건을 종결처리하는 것은 모두 '매뉴얼 위반'이다. 
최 경위도 매뉴얼 위반 사실을 인정했다. 하지만 '그럴 수밖에 없었다'고 주장했다. "왜 매뉴얼과 다르게 종결 처리가 된 것이냐"는 B 경위 측 변호인의 질문에 최 경위는 "매뉴얼이 현실적으로 가능했던 거면 제가 그렇게 말을 안 하겠는데 매뉴얼대로 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왜 매뉴얼대로 하지 않았냐고 하면 나도 할 말이 없다"고 말했다. 

"신고 폭주에 인력 부족"... 예상했으면서 방치한 용산경찰서

이어진 증인신문 과정에서 최 경위는 '매뉴얼을 이행할 수 없었던 이유'에 대해 "참사 당일 이태원파출소에는 신고량에 비해 인력이 턱없이 부족했다"고 설명했다. 
접수되는 신고량에 비해 근무자가 너무 부족했습니다. 통상 금·토·일요일 파출소에는 평균적으로 하루에 70~80건이 접수되는데, 10월 29일은 훨씬 많았습니다. 제가 상황근무를 서기 시작한 밤 8시 경부터 2시간 동안만 신고 약 70개가 들어왔습니다.

최 모 경위 ('이태원 참사' 당일 이태원파출소 상황근무자) / 2024.8.28 이태원파출소 순찰팀장 재판 증인신문  
최 경위의 주장은 상당 부분 사실에 부합했다. 국정조사 당시 경찰이 국회에 제출한 자료에 따르면, 10월 29일 저녁 6시부터 참사 발생 시점인 밤 10시 15분 직전까지 모두 93건의 112신고가 이태원파출소에 접수됐다. 이중 65개가 최 경위 근무 때인 밤 8시부터 10시 15분 사이에 접수됐다.
핼러윈 축제 때는 112신고량이 폭증한다는 사실은 용산서도 알고 있었다. 용산서의 '22년 이태원 핼러윈 데이 종합 치안대책' 문건에는 '핼러윈 데이 주말 이태원파출소 112신고 건수는 10월 평균보다 약 2배 이상으로 급증한다'고 나온다. 또 '요일별로 보면, 금·일요일의 경우 통상 주말과 큰 차이가 없으나 토요일과 핼러윈 데이 당일은 112신고가 대폭 증가한다'고 적혀 있다. 마지막으로 용산서 문건에는 '시간대별로는 밤 8시부터 새벽 3시가 전체 일일 신고 건수의 76%를 차지한다'는 내용과 함께 지난 2019년, 2021년 핼러윈 축제 때 토요일 밤 7시~8시부터 신고량이 급증하는 양상의 그래프도 첨부돼 있었다.
그렇다면 2022년 10월 29일 토요일 밤 8시 이태원파출소의 상황은 어땠을까. 이태원파출소 근무일지에 따르면, 10월 29일 밤 112신고 접수 및 대응 업무는 순찰2팀 11명이 전담했다. 팀장은 B 경위였고, 상황근무자는 최 경위를 포함해 2명이 전부였다. 출동 지령이 떨어지면 현장을 가야할 순찰경찰관도 4개조, 8명뿐이었다. 평소와 똑같은 인력 구조였다. 순찰1팀 등에서 자원근무를 나왔지만, 대부분 이미 주간 근무를 12시간 넘게 선 뒤였다. 파출소에 머무는 대기조거나 밤 9시가 넘어 이태원 일대를 도보 순찰하는 역할만 부여받았다. 
결국 신고가 쇄도하는 상황에서, 현장 출동을 나갈 수 있었던 것은 고작 4개 조뿐이었다.(파출소 현장경찰관은 2인 1조 출동이 원칙이다)
'이태원 참사' 나흘 전인 2022년 10월 26일 서울 용산경찰서가 작성한 "22년 이태원 핼러윈 데이 종합 치안대책" 문건. 10월 29일 토요일, 이태원파출소에 112신고가 몰릴 것이라는 사실을 예측했다. 하지만 이런 사실을 알고도 용산경찰서는 별다른 조치를 취하지 않았다. 

"용산서에 인력 부족 사실 알렸지만, 인력 충원 없었다"

거기다 핼러윈 축제였던 10월 29일, 이태원파출소로 접수되는 112신고 중에는 여러 '범죄 의심', '강력' 신고 등 꼭 출동이 필요해 보였던 것들이 많았다. 밤 8시부터 참사 시점인 10시 15분까지 접수된 신고 93건 중 매뉴얼상 출동 의무가 없는 코드4를 제외한 코드 0~3 신고는 모두 62건이었다. 이태원 참사 관련 신고 10건을 제외하면 '출동해야 할 신고' 52건이 더 있었던 것이다. 
특히 이 중에는 교통사고(밤 8시 35분 신고), 불법촬영(밤 8시 59분 신고), 강제추행(밤 9시 1분 신고), 절도(밤 9시 16분 신고), 차량 뺑소니(밤 9시 22분 신고), 쓰러진 여성 보호조치(밤 10시 8분 신고) 신고도 있었다. 최 경위는 "구체적으로 이미 위험성이 발생한 신고들에 안 갈 수가 없었다. 이런 걸 먼저 처리하는데도 바빴다"고 말했다.
불법촬영 등 사건을 출동하지 않고 처리를 안 하면 당장 직무유기가 될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런 사건에 1개 조를 붙여 놓으면 1시간~2시간이 소요됐습니다. 인파 관리를 해달라는 신고에 경찰관을 보내기 위해서 범죄 신고에 투입 안 할 수는 없었습니다.

최 모 경위 (이태원 참사 당일 이태원파출소 상황근무자) / 2024.8.28 이태원파출소 순찰팀장 재판 증인신문
만약 52건 신고에 모두 출동한다고 가정하면, 순찰경찰관 1개 조는 밤 8시부터 밤 10시 15분까지 평균 13번 출동해야 한다. 출동 한 번에 평균 10.4분만 쓴다면 가능한 얘기다.
그러나 10월 29일 이태원은 인산인해였다. 한 번 출동 때마다 평소보다 훨씬 더 많은 시간이 소모됐다. 최 경위는 "평소 순찰차로 3분이면 되는 거리도 인파가 너무 많아서 30분 이상 소요됐다. 경찰관을 현장에 보내면 최소 1시간은 두절된다고 생각해야 했다"고 법정 증언했다. 또 최 경위는 "이태원파출소 순찰경찰관 2팀 4개조 8명은 1, 2분 쉬는 시간도 없었던 것으로 기억한다"고 말했다.
여기에 용산서는 또 이태원파출소를 방치했다고 한다. 이런 정황은 증인신문 과정 전반에 걸쳐 확인된다.
검사 : 신고에 대해 어떻게 처리가 됐는지 기억하시나요?

최 모 경위 : 신고가 몰려오는 상황이었고 말씀드렸다시피 출동 가능한 가용 인원이 없었던 걸로 기억합니다. 그런데 용산경찰서 중 이름이 기억은 안 나는데... 순찰하는 이런 센터 쪽에 '사람이 부족하다'는 식으로 피드백을 줬었는데 인원 충원이 없었습니다. (중략) 

B 경위 변호인 : 사고 당시 위험 파악하기 위해서는 몇 명 필요했다고 보나요?

최 모 경위 : 구체적 판단은 어렵고, 용산경찰서 전체 관할하는 쪽에서 판단해야 합니다. 당장 출동해야 하는데 사람이 없으니까 그런 사실을 전달했는데도 시정이 이뤄지지 않았습니다. (중략)

재판장 : 당시 상황이 예사로운 상황이 아니었던 것 같은데, 그렇다면 다른 곳에 지원을 요청하거나 이럴 수 있었을 것 같은데 어떤가요?

최 모 경위 : (교통)기동대나 중간에 투입된 서울경찰청 소속 형사 등 경력이 있는 건 아는데 경찰도 군대와 같은 지휘 체계다 보니까, 제가 그분들하고 연락할 수 있는 수단도 없었고 이건 경찰서장이 얘기하는 겁니다. 저는 제 직속 위인 112상황실에 이런 사실을 알리는 걸로 대신했던 것 같습니다.

재판장 : 직접 증원을 요청할 생각이나 이런 건 생각하지 못 했나요?

최 모 경위 : 상황근무자 명의로 지원을 요청하는 권한은 없었습니다. 이런 사실이 있다는 걸 112상황실에 전파했습니다.

최 모 경위 (이태원 참사 당일 이태원파출소 상황근무자) / 2024.8.28 이태원파출소 순찰팀장 재판 증인신문
서울 용산경찰서의 모습. 지난 8월 28일, 이태원파출소 소속 최 모 경위는 "참사 당일 밤 일하면서 용산경찰서에 인력 부족하다고 알렸는데 인력 충원은 없었다"고 법정 증언했다. 
최 경위는 또 '용산서의 112신고 배분도 합리적으로 이뤄지지 않았다'는 취지로 주장했다. 다른 파출소·지구대를 출동시킬 수 있는데도 이미 과부화 상태였던 이태원파출소에 사건을 배정했다는 뜻이었다. 용산서의 '22년 이태원 핼러윈 데이 종합 치안대책'에는 '핼러윈 데이 주말 이태원파출소 112신고 건수는 급증, 이태원 외 지구대·파출소는 평균 수준과 유사'라고 적혀 있다.
불법촬영 신고가 들어온 녹사평역 쪽이 이태원파출소 관할 경계였습니다. 그래서 다른 파출소에 지령이 가길 원했습니다. 이런 부분을 얘기했는데도 이태원에서 (경찰관을) 보내라고 했습니다. 실제로 출동했더니 가는 데만 20분이 걸렸습니다. 그 사이 불법촬영을 했다는 사람은 인파 속으로 사라졌고, 피해자만 남아 있어서 피해자가 엄청 화를 냈다. 싹싹 비는 수준으로 응대를 해야 했습니다. 

최 모 경위 (이태원 참사 당일 이태원파출소 상황근무자) / 2024.8.28 이태원파출소 순찰팀장 재판 증인신문

"112시스템 셧다운 반복" 주장도 나와

마지막으로 최 경위는 '112시스템 자체에 문제가 있었다'고도 주장했다. 112신고를 전산상 접수·처리하는 경찰 112시스템이 밀려드는 신고량을 버티지 못해 계속 오류가 발생했고, 오류를 당장 해소하려면 기존 신고를 '확인 없이라도' 종결 처리해야 했다는 얘기다.  
B 경위 변호인 : 동일 시간에 새로운 신고가 계속 접수되면 (112시스템에) 오류가 발생하는 경우는 없나요?

최 모 경위 : 기본적으로 오류가 자주 나기도 했고, 기억하기로는 5번~10번 정도 오류가 나서 셧다운 되기도 했습니다. 제대로 기능은 안 했습니다. 

B 경위변호인 : 그런 시스템상 오류를 막기 위해서는 기존에 들어온 112신고를 종결 처리하는 것 밖에 방법이 없나요? 

최 모 경위 : 그렇게 했던 것 같습니다. 

최 모 경위 (이태원 참사 당일 이태원파출소 상황근무자) / 2024.8.28 이태원파출소 순찰팀장 재판 증인신문
뉴스타파와 통화한 서울의 한 지구대 소속 현직 경찰관은 최 경위의 주장에 '일리가 있다'고 주장했다. 해당 경찰관은 "컴퓨터도 과부화되면 강제로 창을 닫기도 하지 않나. 112시스템도 비슷하다. 오류가 나면 새로 들어온 신고 내용을 확인할 수도 없는데, 그럴 때는 기존 신고를 일단 종결 처리해서 없애야 시스템 부하가 줄어 다시 돌아가기도 한다”고 설명했다.

처벌만으로는 원인 규명 불가... 파출소 인력 배치, 112시스템 전반 조사 필요  

정리하면, 참사 당일 이태원파출소는 압사 위험을 알린 112신고 11건 중 10건을 사실과 다르게 사건 종결 처리하는 조작을 저질렀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 그리고 이태원파출소 상황근무자였던 최 모 경위는 일부 사건이 매뉴얼을 어긴 채 종결 처리됐다는 사실을 인정했다. 하지만 "그럴 수밖에 없었다"며 △인력 부족 △용산경찰서의 방치 △사건의 비합리적 배분 △112시스템 오류가 그 이유라고 주장했다. 
물론 최 경위의 주장이 '재판 피고인 신분인 동료 경찰을 도와주려는' 목적에서 나왔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다만 취재진이 확보한 여러 자료와 최 경위 주장 중 일맥상통하는 부분이 있는 것도 사실이다. 
국회 국정조사는 경찰의 112신고 처리 문제를 아예 다루지 않았다. 국정조사 계획서가 채택된 것은 2022년 11월 24일인데, 112신고가 조작됐을 수 있다는 최초 보도는 12월 2일이었다. 국정조사 후반부인 지난해 1월 경찰 등에 대한 추가 청문회를 열 것인지도 논의됐지만, 유가족·목격자·전문가에 대한 공청회만 진행됐다. 
이태원파출소 순찰팀장 2명에 대한 형사재판이 진행 중이긴 하지만, 역시 한계가 뚜렷하다. 재판의 쟁점은 피고인인 두 팀장 개인이 '어떤 의무 있는 일을 하지 않아 참사로 연결된 것인지'에 국한될 뿐이다. △왜 용산서가 이태원파출소 인력을 증원해주지 않은 것인지 △참사 당일 최 경위가 도움을 요청한 곳은 정확히 어디고, 왜 무시한 것인지 △정말 112시스템 오류가 발생한 것인지 등은 재판을 통해 확인할 수 없을 가능성이 크다. 범위를 넓혀, 다른 지구대·파출소가 유사 문제를 겪은 적이 있는지 등을 확인해 경찰의 112신고 사건 접수·배분·처리 시스템 전반을 건드리는 것은 아예 불가능에 가깝다.
특별법에 따라 "이태원 참사의 원인 및 책임소재 규명에 관한 사항"이라면 무엇이든 조사할 수 있는 특조위만이 가능하다. 
제작진
취재홍주환(뉴스타파) 최윤정(코트워치)
디자인이도현
출판허현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