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태원 참사 미규명 진실] ⑩ 정부는 피해자 '2차 가해' 왜 방치했나
2024년 09월 27일 10시 00분
뉴스타파 취재팀은 한수원에 핵발전소 건설 설비를 납품하는 한 업체를 찾았다. 이 업체는 지난 2009년부터 원전 사업에 본격 진출하면서 한수원 1급 간부 출신 3명을 잇따라 영입했다. 이 가운데 한 명은 현재 이 회사의 원전 담당 부사장을 맡고 있었다. 뉴스타파는 익명을 전제로 그와 1시간 가량 대화를 나눴다.
원자력 쪽에 진출을 하니까 원자력에 노하우를 잘 아는 사람을 고문으로 영입을 하자고 해서, 방침을 내서 이제 물어봤겠죠. (제의가) 저한테 온 거예요. 몇 개월 전부터 연락이 계속 왔어요. 00원전기업 임원(한수원 간부 출신)
그는 2011년 한수원에서 퇴직했다. 최종 직책은 핵발전소 본부장, 1급 고위직이다. 그는 퇴직 당일 이 회사에 재취업했다.
“(제가) 퇴직 대기 상태였을 때 아마 파악을 한 것 같아요. 그래서 (업체로부터) 연락이 왔는데 “가능하면 빨리 좀 오시는 게 좋겠다”라고 해서, 퇴직하고서 바로 왔죠” 00원전기업 임원(한수원 간부 출신)
이 업체는 한수원 간부 출신을 영입한 이후 사정이 확 바뀌었다. 2008년 7천 2백만 원, 2009년 단 한 건도 없던 한수원 납품계약 실적이 2010년에는 39억 원, 올해는 181억 원으로 수직 상승했다. 하지만 한수원 출신의 이 회사 부사장은 그저 열심히 일한 결과라고 말했다. 자신은 기술 자문과 원전 운영 노하우가 있기에 취업했고, 정당하게 입찰했고, 열심히 노력한 결과이고, 부정한 방법으로 입찰을 딴 것은 전혀 없다고 했다.
그는 30년 이상 한수원에 근무했던 사실에 자부심을 가지고 있었다.
그때는 정말 우리는 정말 국가를 위해서, 국가의 경제를 위해서 전력사업을 위해서 열심히 일했죠. 밤 낮으로 고생 많이 했어요. 공기업 사람들 전부 논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많은데 밤새워 일해요. 제가 한수원 본사 부장할 때도 새벽 6시 40분에 회사 도착해요. 항상 매일 그래서 별일 없나 보고 퇴근하면 8시 넘습니다 00원전기업 임원(한수원 간부 출신)
취재팀의 눈에 띈 것은 그의 집무실에 있는 응접 테이블에 유리 밑에 부착해 놓은 조직도였다. 자신이 근무하는 회사의 조직도가 아닌 한수원 2직급 이상 간부들의 조직도. 거기엔 한수원 간부들의 전화 번호가 빼곡히 기재돼 적혀 있었다.
아직도 이 (한수원) 전화번호를 갖고 있으세요? 이거는 저희가 일을 하면서 그쪽에 관련된 부서 사람들 있잖아요. 이런 사람들 이름이 필요하기 때문에 그런 거죠. 00원전기업 임원(한수원 간부 출신)
한수원을 떠난지 3년, 그러나 옛 한수원 부하 직원들은 그를 여전히 본부장으로 부른다고 했다. 그리고 지금도 한수원 직원들을 만나 입찰 등 주요 정보를 얻는다고 말했다.
모든 일을 원할하게 하려면, 모든 일은 사람 안면이잖아요. 아무도 모르는 사람이 한수원에 얘기할 수 있습니까? 얘기 못하죠. 아는 사람이, 그래도 얼굴 아는 사람이 가서 또 얘기라도 할 수가 있고, 얘기하다보면 어간 중에 좋은 정보도 얻을 수 있고 그런 것이죠. (옛 후배 직원들과) 얘기하다보면 소주도 한잔 하죠. “야! 뭐하냐? 점심이나 하자” 그래서 소주 한잔하다보면 얘기 어간 중에 그런 걸 알수가 있죠. 그러면 사전에 준비할 수도 있고. 00원전기업 임원(한수원 간부 출신)
뉴스타파 분석결과, 지난 2008년부터 현재까지 원전 관련 공기업와 관료 출신이 원전 관련 사기업에 재취업한 사람은 모두 72명으로 집계됐다. 이 가운데 본부장 등 1직급의 고위 간부 출신은 49명으로 68%였다. 뉴스타파가 만난 원전 관련 기업 임원들은 고위직 출신들을 주로 영입하는 것은 기술자문 보다는 수주 등 영업 활동에 도움을 받기 위해서라고 말했다.
1직급 이상, 처장급 이상 이런 분들은 어떠한 기술력 보다는 영업활동을 하기 위해서 재취업 되는 경우가 많이 있겠죠. 원전기업 이사 (업체 대표 구속 수감)
특히 폐쇄적인 원전 산업의 특성 상, 새롭게 시장에 진입하는 업체들의 경우 한수원 퇴직자 영입은 필수라는 이야기도 나왔다.
새로 신생 회사들 있잖아요. (그런 회사들은 정보가 )없으니까. 한수원 퇴직자들을 취업을 시켜가지고 인맥으로.. 사업 같은 거 따내려고. 신규 회사들이 많이 그런 쪽으로 하는 걸로 알고 있고. OO 원전기업 직원
경쟁이 치열해지다 보니 금품 제공 등의 비리도 심심찮게 일어난다. 지난해 불거진 원전비리가 대표적이다. 2012년부터 올 6월까지 업무 관련 금품 수수 등의 혐의로 기소된 한수원 직원은 77명에 이른다.(국회 송호창 의원실 자료) 같은 기간 어떤 공기업보다 기소 건수가 많다. 한수원 직원에 금품을 준 이들은 거의 대부분 납품업체 임원들이었다. 대부분 입찰을 따거나 납품 계약을 맺는 대가로 금품이 제공됐다.
뉴스타파는 지난해 한수원 직원에게 수천만 원의 금품을 건넸다가 대표가 구속된 한 업체를 찾았다. 이 업체 관계자는 익명을 전제로 원전업계의 실상을 이렇게 털어놨다. 그는 금품 제공을 “나쁜 관례”라고 말했고, 일종의 “영업력의 하나라고 생각해 왔다”고 말했다.
친밀감을 통해 이제 영업활동으로 이어지는 거고, 그래서 현금이 오갈 경우도 있고, 어떤 편의를 제공하는 경우도 있겠죠. (그거를 구체적으로 설명할 수 있을까요?) 그 부분에 대해서는 특별히 설명 드리자면, 관례 그러니까 관례라는 표현이 여기서는 참 부적한 표현이네요. 관례대로 물품 납품을 하면 고맙다고 인사한 적도 있고. 그런데 그 나쁜 관례를 쫓았던 거죠. 그게 어떻게 보면 지금까지는 영업력이라고 생각했던 겁니다. 대부분 업체들이 영업의 한 부분이다. 잘못된 거죠. 인정합니다. 원전기업 이사 (업체 대표 구속 수감)
그동안 원전업계에서는 한수원 직원에게 금품을 제공하는 것이 일종의 ‘나쁜 관례’였을 뿐이고, 또한 수주를 따내는 데 필요한 ‘영업력’의 하나로 생각해 왔다는 것이다. 그래서 폐쇄적인 ‘그들만의 리그’에서 금품과 향응 제공이 판쳐도 별 대수롭게 않게 여겨왔던 것은 아닐까?
하지만 그 피해는 고스란히 국민들에게 전가될 수밖에 없다. 불법적인 방법을 사용해서라도 수익을 챙기려는 탐욕이 원전 업계를 지배하는 상황에서 원전 안전은 공염불이 될 수밖에 없다. ‘핵피아’를 근절해야 하는 근본 이유다.
원전 업계에 엄청난 이익관계가 있어요. 원전 가동을 하면 하루에 10억 원 매출이에요. 하나 건설하는데 과거 1조 원이고 지금은 3조 원이 넘어요. 설비, 토목, 건설, 기기, 관련된 R&D, 거기 묶여있는 집단이 얼마나 많아요. 그 사람들이 그 이익관계로 묶여있는 거죠. 강력한 카르텔이죠. 그래서 우리가 마피아라고 얘기하잖아요 양이원영 환경운동연합 에너지기후팀 처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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