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3년 9월 7일, 공직자들의 재산이 처음으로 대한민국 정부 관보에 공개됐다. 이후 30년 동안 ‘공직자 재산공개 제도’는 공직자의 부정부패를 막고, 공직 기강과 윤리를 바로잡는 버팀목 역할을 해왔다. 뉴스타파는 재산 공개 30년을 맞은 올해, <뉴스타파 공직자 재산 정보> 사이트를 대대적으로 정비해 30년간 공직자 재산 데이터를 모두 수집해 공개했다. 뉴스타파는 공직자 재산 30년 치 자료를 바탕으로 공직자들의 계층 변화의 양태와 이들의 재산 축적과 형성 과정에서 확인되는 사회·경제적 함의를 추적하는 연속 보도를 한다.
그러나 더 깊이 들어 가면, 국회의원이 속했던 정당별로 일정한 차이가 있음을 알 수 있다. 지난 30년간 여러 정당이 등장하고 사라졌는데, 당대의 정치 변화와 정당의 이념 성향에 따라 국회의원들의 재산 규모도 일정하게 변동했다.
군부 세력의 몰락과 이탈, 양당 재산 격차 좁혔다
뉴스타파는 지난 30년간 한국 정치의 주요 축이었던 양대 정당을 비교했다. 이른바 ‘보수계열’과 ‘민주계열’은 16대 국회를 변곡점으로 전반부와 후반부의 양상이 달랐다.
여기에서 ‘보수계열’은 국민의힘과 그 전신(민주자유당, 신한국당, 한나라당, 새누리당, 자유한국당 등)을 가리킨다. ‘민주계열’은 더불어민주당과 그 전신(민주당, 새정치국민회의, 새천년민주당, 열린우리당, 통합민주당, 민주당, 민주통합당, 민주당, 새정치민주연합 등)을 뜻한다.
▲ 1993년부터 2023년까지 보수 계열과 민주 계열 국회의원들의 재산 중앙값을 그래프로 그렸다. 중앙값은 국회의원을 재산 순서대로 일렬로 세웠을 때 가운데 있는 사람의 재산 값을 의미한다.
1993년 김영삼 정부에서 고위공직자 재산을 처음으로 공개했다. 당시 14대 국회에서 여당인 민주자유당 국회의원들의 재산 중앙값은 15.1억원, 제1야당인 민주당 국회의원들의 재산 중앙값은 4.1억원이었다. 무려 3배 이상 차이가 났다. 지난 30년 역사에서 양당 재산 격차가 가장 큰 시기였다.
그 뒤 14대에서 16대로 가면서 두 당 소속 국회의원의 재산 격차는 줄었다. 주된 이유는 민주자유당-신한국당-한나라당으로 이어지는 ‘보수계열’에서 신군부 세력과 민주정의당 출신들이 퇴장하거나 몰락했기 때문이다.
이번 국회의원 재산 분석에는 평균이 아닌 중앙값을 사용했다. 일부 의원의 재산이 압도적으로 커서 평균값에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
역사를 돌아보면, 1990년 3당 합당으로 민주자유당이 탄생했다. 당시 전두환-노태우의 민주정의당, 김영삼의 통일민주당, 김종필의 신민주공화당이 합쳐졌다. 부자가 가장 많았던 정당은 민주정의당이었다. 1993년을 기준으로 민주자유당 의원들의 출신별 재산 중앙값을 따져 보면, 민주정의당 출신 19억 원(97명), 통일민주당 출신 5.6억 원(25명), 신민주공화당 출신 4.2억 원(16명)이다.
▲ 1993년 재산이 94억원에 달했던 정호용 전 민주자유당 의원은 김영삼 정부에서 구속됐다.
재력도 사람도 많았던 민정계는 이후 민주자유당 내 권력 다툼에서 밀려난다. 군사정권의 핵심 인물 중 하나였던 정호용 전 민자당 의원의 퇴장이 대표적인 사례다. 하나회 출신으로 전두환-노태우 정권에서 육군참모총장, 국방부 장관 등을 지내며 부와 권력을 축적한 정호용은 1993년 당시 재산이 94억 원에 달해 국회의원 중 열 두 번째로 부자였다. 그런데 김영삼 정부 때 과거사 청산을 하며 구속됐고, 법원에서 내란죄로 징역 7년을 선고받았다.
이 무렵, 김종필 의원처럼 재산이 많았던 의원 일부가 민주자유당에서 자유민주연합으로 갈라져 나왔다. 이런 정치적 변화가 포개져서 보수계열 국회의원 재산 중앙값은 10년 만에 반토막이 난다.
2006년 부동산 폭등기에 양당 재산 폭증
서로 반대 방향으로 움직이던 보수-민주 계열 의원들의 재산은 17대 국회부터 엇비슷해지며 이른바 ‘동조화’되기 시작한다. 양당 의원 모두 자산의 70% 가량이 부동산이다. 2006~2007년 부동산 가격이 폭등하면서 국회의원들의 자산 규모가 급격하게 커진다.
2006년 당시 한나라당 대표였던 박근혜 전 대통령이 대표적인 사례다. 박근혜 대표는 서울 강남구 삼성동에 2층 양옥주택을 소유하고 있었다. 2006년 이 집의 공시지가는 10억 6천만 원이었다. 그런데 이듬해인 2007년 이 집의 공시지가는 20억 2천만 원으로 두 배 가까이 뛴다. 박근혜 대표의 자산도 2006년 11억 7648만 원에서 2007년 21억 7537만 원으로 오른다.
▲ 박근혜 전 대통령의 서울 강남구 삼성동 사저는 부동산 폭등기를 거치며 1년 만에 가격이 두 배 가까이 올랐다.
다만 세부적으로 들여다 보면, 보수와 민주 계열 사이에 미묘한 차이가 있다. 보수 계열은 17대 국회 중에 재산이 크게 증가했고, 민주 계열은 17대에서 18대로 넘어가는 과정에서 크게 상승했다. 보수 계열은 현직 국회의원들이 보유한 부동산 가격이 상승한 반면, 민주 계열은 회기가 바뀌면서 재산이 많은 사람으로 의원 구성원이 바뀐 영향이 크다.
현대적 이념 정당으로 재편되며 재산 격차 고착화
부동산 열풍이 가라앉고 19대부터 현재까지는 양당의 격차가 비교적 일정하게 유지되고 있다. 보수 계열의 재산이 민주 계열의 1.7배 정도다.
정치 전문가들은 한국 국회가 17~18대를 거치며 현대적 이념 정당으로 재편됐다고 말한다. 2012년 김석우 서울시립대 교수와 전용주 동의대 교수가 19대 국회를 분석해 발표한 ‘국회의원 이념성향 결정요인에 관한 연구’를 보면, “정당 조직과 구성원이 과거에는 소수 정치적 명망가의 정치적 동원에 의한 것이었으나, 최근 이념적 유사성을 갖는 정치엘리트와 당원들에 의해 구성되어 가는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고 적고 있다. 대체로 양당 재산 격차가 고착화되기 시작한 시점과 일치한다.
▲ 보수 계열과 민주 계열 국회의원들의 재산 분포를 대략적으로 보여주는 그래프. 막대에서 아래쪽 끝은 하위 25% 경계, 위쪽 끝은 상위 25% 경계, 가운데 원은 중앙값이다. 보수 국회의원들의 재산이 더 많고, 구성원간 차이도 크다.
보수 계열은 1993년부터 2023년까지 30년 내내 민주 계열보다 재산이 많았다. 민주 계열은 단 한 번도 재산 순위를 뒤집지 못했다.
2022년 기준, 정당별 국회의원 재산 중앙값은 국민의힘 20.5억 원, 더불어민주당은 13억 원이다. 일반 국민의 중위자산과 비교했을 때, 국민의힘은 8.3배, 더불어민주당은 5.3배다. 보수 계열은 민주 계열보다 구성원간 재산 격차도 더 크다.
부동산 비중 줄어든 민주계열, 변화 없는 보수계열, 채무 많은 진보계열
2006년부터 2023년까지 양당의 재산 상세내역을 분석해본 결과, 2006년 무렵엔 양당의 구성비가 비슷했는데 시간이 지날수록 달라지고 있다.
보수계열은 2006년부터 현재까지 부동산 자산 비율이 70% 수준으로 비교적 일정하게 유지되고 있다. 반면 민주계열은 재산에서 부동산 비중이 70%에서 60% 수준으로 줄었다. 특히 건물 비율이 10%p 가량 줄었고 토지 비율은 거의 사라졌다. 대신 예금 비율은 높아졌다.
진보계열의 경우, 최근 부동산 자산 비율이 급증하는 추세다. 그리고 보수-민주 계열과 달리 자산에서 채무가 차지하는 비중이 큰 편이다.
▲ 보수 계열은 2006년부터 2023년까지 재산 중 부동산(건물과 토지)이 차지하는 비중이 크게 변하지 않았다. 반면 민주 계열은 부동산 비율이 점차 줄고 대신 예금 비율이 늘었다. 진보 계열은 재산 중 부동산 비중이 크게 줄었다가 빠르게 커지는 추세다.
중도는 재산도 양당 가운데, 진보는 가장 적었다
제3지대 정당은 어땠을까. 양당과 뚜렷한 노선 차이를 보였던 세 계열의 국회의원 재산을 확인해 봤다.
▲ 충청 계열은 일부 시기를 제외하고 가장 재산이 많았고, 진보 계열은 가장 재산이 적었다. 중도 계열은 보수와 민주 계열의 중간 정도 수준이었다.
먼저 자유민주연합, 국민중심당, 자유선진당 등 충청지역 기반 정당(충청계열)은 15~16대, 18대 국회에서 보수계열보다 재산이 많았다. 이들은 대체로 보수계열보다 더 보수성향으로 평가된다.
민주노동당, 통합진보당, 정의당 등으로 이어진 ‘진보계열’은 모든 계열 중 가장 재산이 적었다. 2022년 기준 정의당 국회의원 재산 중앙값은 일반 국민 중위자산의 1.5배 수준이다.
국민의당과 바른미래당으로 이어진 이른바 ‘중도계열’은 재산 수준이 양대 정당 사이에 위치했다. 정당별 재산 중앙값을 계산했을 때, 대체로 정당간 이념성향과 재산 수준이 비례하는 경향이 보였다. 보수 성향일수록 재산이 많았고, 진보 성향일수록 재산이 적었다.
유권자도 ‘계층 투표 현상’, 재산 많을수록 보수 성향으로
재산 수준에 따라 정치적 성향이 변하는 건 국회의원뿐 아니라 유권자도 마찬가지다. 경제적 지위는 현대 한국 정치에서 중요한 변수로 떠오르고 있다.
집값과 투표 성향의 상관성을 분석한 실제 사례가 있다. 2022년 강원택 서울대 정치외교학부 교수와 김수인 연구원이 한국정치학회에 투고한 ‘자산과 투표 선택 : 수도권 지역 유권자를 중심으로’ 연구에 나타난 결과다.
2018년 지방선거, 2020년 국회의원 선거, 2021년 서울시장 보궐선거에서 공통적으로 m²당 아파트 평균매매가와 주요 정당 득표율 간의 높은 상관관계가 발견됐다. m²당 아파트 매매가가 높은 동일수록 보수 정당에 투표했을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또 재산이 많을수록 보수 정당에 투표했다. 같은 연구진이 2020년 국회의원 선거에 투표한 수도권 거주 유권자들을 자산을 기준으로 다섯 집단으로 나눈 뒤 이들의 정치적 정향과 투표 선택을 분석한 결과, 자산 수준이 높을수록 이념적으로 더 보수적인 것으로 나타났고, 보수 정당에 투표할 확률도 높은 것으로 확인됐다. 연구진은 “수도권의 경우 지역주의보다 부동산 가격으로 대표되는 자산과 같은 경제적 변수의 요인이 갖는 영향이 커질 수 있음을 시사”한다고 밝혔다.
정치인이든 유권자든 재산에 따른 이념 성향이 분명해지고 있다. 한국의 정치를 예측하고 분석하는 데 있어, ‘재산 변수’가 미치는 영향도 그만큼 커졌다는 뜻이다. 뉴스타파가 공직자의 ‘재산’에 천착하는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