튀는 기자로 가장 기억에 남은 사람은 신문사 입사 동기인 국흥주 기자이다. 그는 동아일보 체육부 기자로 일할 때, 당시 인기 절정이던 고등학교 야구와 월드컵 축구에 관한 장기 기획기사를 박학함과 독특한 문제, 그리고 열의로 버무려 동아일보가 그야말로 ‘낙양의 지가’를 올리게 했다. 혹시나 해서 인터넷을 검색했더니, ‘동아사태’ 이후에 동아일보사에 입사한 김기만 기자가 대통령 공보비서관 시절 월간 『시민체육 』 2002년 6월호에 쓴 글이 있다. ‘고교 시절 동아일보에 국흥주 기자가 월드컵 열전을 연재할 때는 너무나 재미있어서 수업이 끝나기 무섭게 제일 먼저 도서관에 뛰어올라가 신문을 읽고 또 읽고 나중에는 노트에 기사를 베껴 집에 가 외우다시피 하곤 했다.'
일간지 지면이 8면 체제이던 시절인 74년 1월부터 6월까지 무려 80회에 걸쳐 상당히 튀는 연재물 '월드컵 축구 발자취'를 게재했던 동아일보는 발행 부수를 대폭 늘려준 기자를 1975년 3월에 130여명의 동료 언론인과 함께 내쫓았으니…”튀는 기자가 없다, 언론중재 2004년 가을호 '위원칼럼'
“그러나 이 행사는 아무리 생각해도 이해하기 힘들다. 불편하다. 우선, 음식을 나눠준 쪽이 이 나라 최고 권력자요 국정운영 책임자인 대통령이고, 그 음식을 ‘더 주세요’ ‘감사합니다, 잘 먹겠습니다’라며 받아먹은 쪽이 그를 감시해야 할 기자들이어서 그렇다. 최고 권력자가 자신을 감시하고 비판하는 기자들을 불러 야외 잔디밭에서 바비큐 파티를 열었고, 수많은 기자들이 이 파티에 우르르 참석해 최고 권력자가 배식한 음식을 받아먹으며 박수를 치고 만찬을 즐겼다. 권력자와 권력 감시자의 관계가 정상적인가? 이게 권력을 감시하는 기자의 모습인가?”'김치찌개 더 주세요'라는 기자에 국민이 느낀 모욕감( 2024.05.26.), 시민언론 민들레
산양인가 하면 아니다
옛 연금술사의 도제인가 하면 아니다
막 시를 쓰기 시작했다
기자 노릇 그만둔 뒤
팔레스타인 시인들의 시 번역하고
라틴 아메리카
아프리카 시 번역했다
제3세계 문학으로 향한 그의 고즈넉한 눈
술자리에서
차츰
술꾼들의 소리 높아지는데
그는 가만히 처음 그대로였다
어쩌다가 웃을 일도 아닌데 싱긋 웃어 보이고
배꼽을 잡고 웃을 일이나
비분강개로 술상머리 내리칠 일에도
그는 가만히 처음 그대로였다
그렇다고 신선인가 하면 아니다
어디까지나
그는 구름 쓸어낸 하늘의 한쪽이었다
안개 걷힌 바다 복판의 파도 골짜기였다이종욱, 고은 '만인보' 중
원고 | 이종욱 동아투위 위원 |
디자인 | 이도현 |
출판 | 허현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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