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계제로의 한반도, 김정은의 '파병 베팅'은 무엇을 노리나
2024년 11월 20일 18시 45분
2021년 7월 27일, 한국전쟁 정전협정일 68주년이 지났다. 한국전쟁의 포성은 멎었으나 전쟁은 아직 공식적으로 끝나지 않았고, 남북한 평화 프로세스는 여전히 교착 상태다. 상호 신뢰 회복이 중요하지만 한국언론의 무분별한 북한 보도는 종종 대화의 걸림돌이 됐다. 걸핏하면 북한 최고지도자를 ‘죽였다가 살렸고’, 고위 인사 처형설과 같은 대형 오보를 내놨다. 핵 관련 소식, 북한 내부 동향 뉴스에서도 ‘묻지 마’식 보도행태를 끝없이 이어가고 있다. 북한 관련 뉴스는 과연 누가 만들고, 어디까지 믿을 수 있는 것일까. 뉴스타파는 국내 22개 언론사의 북한 관련 기사 1년치, 8만여 건을 전수 분석해 북한 뉴스 ‘소스’를 추적하는 <북한 뉴스 해부 - 누가 북한 뉴스를 만드는가> 프로젝트를 시작한다-편집자 주 |
‘대북전단금지법’은 올해 1월부터 시행된, 군사분계선 일대에서 대북 전단 살포 및 대북 확성기 방송 등을 금지하도록 하는 법(남북관계발전법 24조)이다.
이에 앞서 남북 정상은 2018년 9.19 남북군사합의를 통해 군사분계선 일대에서 상호간의 모든 적대 행위를 금지하기로 합의했다. 그러나 탈북자 단체를 중심으로 대북 전단 살포 행위가 계속됐고 북한은 이를 두고 군사합의 위반이라며 반발하기 시작했다. 북한은 단순 반발에 그치지 않았고, 급기야 지난해 6월 남북공동연락사무소를 폭파했다. 이후 한국 정부는 위와 같은 내용의 ‘남북관계 발전에 관한 법률’ 24조(일명 대북전단금지법)를 신설했다.
그러나 탈북민 단체와 보수 야권 등을 중심으로 표현의 자유를 침해한다며 강하게 불만을 쏟아냈다. 일부 탈북 단체는 대북전단 금지법을 추진한 문재인 대통령을 유엔에 고소하겠다는 등 거세게 반발했다.
주목할 만한 건 이 법을 반대하는 목소리가 국내에 한정되지 않았다는 것이다. 반대 의견에 힘을 더한 건 국외, 특히 미국 측 반응이었다. 미국 선전 매체인 미국의소리(VOA)나 자유아시아방송(RFA) 등은 이 법 신설 움직임이 가시화되자 연일 대북전단금지법을 비판하는 기사를 쏟아냈다. 익명의 미 국무부 대변인실 관계자의 반대 의견이 미국의소리(VOA)를 통해 보도되고 이를 다시 국내 매체가 받아 쓰는 식으로 ‘미국이 대북전단금지법에 반대한다’는 프레임이 확대·재생산됐다. 이 같은 움직임의 연장선상이 지난 4월의 미 의회 청문회였다.
청문회의 주최는 미 하원의 ‘톰 랜토스 위원회’. 이 위원회의 공동 의장인 크리스 스미스 하원의원(공화당)은 청문회에 앞서 여러 번, 대북전단금지법에 대한 우려와 비판을 내비쳤던 인물이다.
청문회 주제는 <대한민국의 인권과 정치적 권리 : 한반도 인권에 미치는 시사점>이었다. 고든 창(‘핵 전쟁 : 북한이 세계와 싸우다’ 저자(Nuclear Showdown : North Korea Takes on the World))이라는 인물이 증인으로 청문회에 참석했다. 일부 국내 매체에서는 그를 ‘보수 논객’으로 표현하지만, 대다수 매체에서는 변호사·한반도 전문가·북한 전문가 등으로 묘사되는 인물이다.
대북전단금지법 관련 청문회였다고 하지만 그가 이 자리에서 한 발언의 대부분은 대북전단금지법과 딱히 관련이 없는, 문재인 정부를 비난하는 데 할애됐다. 그는 지난 2018년 청와대가 개헌을 추진했을 당시를 언급하며 한국 정부가 “한국 헌법의 자유민주주의에서 ‘자유’라는 단어를 빼려고 했다”고 말했다.
“이 움직임에 반대하는 사람들이 결국 승리했죠. 그러나 문재인 대통령은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그해 6월에 문재인 정부의 교육부는 한국의 중등 교과서를 바꾸려고 시도했습니다. 그리고 실제 교과서에서 ‘자유’라는 단어를 빼버렸습니다.”
그는 이러한 일들이 “한국을 북한으로 만드는 것 같다”고 주장하며 “가장 걱정되는 것은 문 대통령이 한국에서 지난 수십년간 진행된 민주화와 자유화의 움직임을 되돌리려고 하는 것이다. 한국이 정부 수립 초기로 되돌아가는 것 같다”고 말했다.
하지만 한국 정부가 교과서에서 자유라는 단어를 빼버렸다는 그의 주장은 사실과 다르다. 2018년 교과서 개정 당시 역사교과서에서 ‘자유민주주의’라는 표현과 ‘민주주의’라는 표현을 두고 논란이 있었지만, 이후 교육부는 두 표현을 모두 ‘병기’하는 것으로 결론냈기 때문이다. 미 의회의 공식석상에서 사실 확인도 안 된 이야기를 한 것이다.
고든 창은 이밖에도 한국과 미국 보수 단체의 각종 행사에 얼굴을 비추는 등 극우 성향을 지닌 인물이다. 지난 2019년 한미보수연합대회 행사에서는 2020년 예정돼있던 4.15 총선을 언급하며 청중에게 문 대통령을 끌어내릴 것을 주문했다.
“한국을 수호하고 여러분의 땅을 보호하기 위해 여러분은 문재인을 끌어내려야 합니다. 문재인은 반드시 (대통령에서) 내려와야 합니다. 문재인은 사라져야만 합니다.”
그는 한국의 정치 상황과 이념 논쟁에도 적극 개입하고 있다. 그의 발언은 북한 이슈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뉴스타파가 국내 정치와 관련한 그의 주요 발언을 모아 정리했다.
국내의 북한 관련 기사에는 미국 인사들이 발화자로 등장하는 경우가 많다. 미 국무부 등 정부 소속 인물일 수도, 싱크탱크나 인권단체 등 민간 기구 인사일 수도, 아니면 고든 창과 같은 인물일 수도 있다. 주로 북한 관련 분석이나 남북-북미 관계를 논평하는 기사에서 이들의 발언이 인용되는데, 독자들은 대개 기사의 내용만을 접하기 때문에 발화자의 정체나 기존의 발언 등을 속속들이 알기 어렵다. 고든 창 같은 인물의 정치적 발언 역시 종종 전문가의 시각으로 둔갑한다.
한국의 여러 언론사는 고든 창을 ‘북한 전문가’, 혹은 ‘한반도 전문가’로 인용했다. 지난해 12월 뉴시스는 미 국무부가 대북전단금지법을 우려한다는 기사에 고든 창이 문 대통령을 비난하는 발언을 인용하며, 그를 ‘미국 내 한반도 전문가’라고 지칭했다. 같은 날 나온 조선일보와 세계일보 기사 역시 고든 창을 ‘미국 내 한반도 전문가’로 소개했다. 중앙일보는 ‘북한·중국 전문가’라고 썼다. ‘보수 성향의 한반도 전문가(동아일보·한국일보)’, ‘동북아 전문가’로 인용되기도 한다. 주로 대북전단금지법 관련 기사에서 이 법안을 반대하는 쪽 의견으로 고든 창의 발언이 인용됐다.
김성해 대구대 미디어커뮤니케이션학과 교수는 뉴스타파와 인터뷰에서 “대북전단금지법 관련 기사 등에서 언론들이 내용을 정말 ‘있는 그대로’만 보도를 한다. 고든 창 같은 인물들이 나와서 하는 이야기를 그대로 기사화 한다”며 “(이런 보도 관행을 보면) 대한민국 언론이 맞나 하는 생각이 든다”고 말했다. 발언의 진위나 적합성을 따지지 않고 아무 말이나 그대로 중계한다는 의미다.
뉴스타파는 고든 창의 개인 홈페이지에 나와있는 이메일로 왜 사실이 아닌 이야기(교과서 관련 발언)를 하는지, 왜 4.15 총선 같은 한국 내 정치 이슈을 언급하는지 등을 물었으나 답변은 받지 못했다.
뉴스타파는 이밖에 ‘북한 뉴스 해부’ 프로젝트의 데이터베이스(2020년 4월~2021년 3월 사이 생산된 북한 관련 기사)에 등장하는 ‘인물’ 출처(기사 소스) 가운데 국내외 극우보수 단체, 혹은 보수 매체 등과 연결 고리가 있는 인물들을 추려냈다.
고든 창이 대북전단금지법 청문회에 참석했을 당시 그 자리에는 수잰 숄티(북한자유연합 대표)라는 인물도 증인으로 참석했다. 뉴라이트 원로 학자로 유명한 이인호 교수(전 주러시아 대사)도 증인으로 얼굴을 비쳤다.
수잰 숄티는 이 청문회에서 박근혜 전 대통령과 문재인 대통령을 비교하며 “박 전 대통령은 북한 사람들이 꿈을 좇을 수 있도록 한국으로 오라고 손을 내밀었지만 문 대통령은 김정은이 그의 꿈을 이루도록 돕는 데 더 흥미를 갖고 있다”고 발언했다.
또 “김정은은 한국의 자유 민주주의가 아니라 자신의 왕조로 남북을 통일하려고 한다는 것을 잊어선 안 된다”, “문 대통령은 북한 탈북자 단체를 억압하면서 김정은 정권과 함께 일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이밖에 보수 매체 펜앤드마이크서 공개된 인터뷰 기사(2020.6.26.)에 따르면 그는 “종전선언을 추진한 의원들은 북한에 우선적으로 처형을 당할 것”이라는 극언도 쏟아냈다. 수잰 숄티는 국내 매체에서 ‘북한자유연합 대표’ 혹은 ‘미국의 북한 인권운동가’, ‘탈북자 대모’ 등으로 인용된다.
지난 2018년, ‘구국재단’이라는 국내 단체가 주최한 행사에 이 두 인물과 이인호 교수가 모두 참석한 바 있다. 구국재단은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 국면 때 이른바 ‘태극기 집회’에서 탄핵 반대를 주장하던 김평우 변호사가 만든 재단이다. 구국재단의 ‘국제학술대회’에 참석한 인물 가운데 한국언론사의 북한 관련 뉴스에 종종 인용되는 사람은 데이비드 맥스웰(미국 민주주의수호재단 선임연구원)과 그렉 스칼라튜(북한인권위원회 사무총장)다.
데이비드 맥스웰이 소속된 미국 민주주의 수호재단(Foundation for Defense of Democracy)은 네오콘 성향의 조직이다. 미국의 ‘군사주의자’나 기관을 감시하는 독립 출판 프로젝트(Militarist Monitor)는 이 기관을 “911 테러 이후, 중동과의 ‘테러와의 전쟁’과 ‘친 이스라엘 정책’을 추진하기 위해 설립된 네오콘 성향의 조직”이라고 정의하고 있다.
데이비드 맥스웰은 지난 2019년 열린 ‘보수정치행동회의’(CPAC)의 한 세션에 참석해 “만일 북한이 전쟁을 시작한다면 우리는 끝내야 한다”고 말했다.
“저도 전쟁을 억제하기를 언합니다. 한미동맹이 전쟁을 시작하진 않을 거라고 생각해요. 그러나 만약 북한이 전쟁을 시작한다면, 우리는 끝내야죠.”
그렉 스칼라튜의 소속 기관인 북한인권위원회는 북한의 수용소 폐쇄, 북한 국경 개방, 북한 주민 정보 제공 등이 단체의 목표라고 밝히고 있는 미 워싱턴 기반의 인권단체다. 수잰 숄티가 공동부의장을 맡고 있고, 데이비드 맥스웰 또한 이 기관의 이사진에 들어 있다.
뉴스타파는 ‘북한 뉴스 해부’ 프로젝트로 수집한 데이터베이스(2020년 4월~2021년 3월)에서 이 미국의 극우보수 인사들이 한반도 전문가 등으로 포장, 인용된 기사 데이터를 공개한다. 독자들은 어떤 인물이 어떤 발언을 했고, 어떤 식으로 한국언론의 기사에 인용됐는지를 아래에서 확인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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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이터 | 최윤원 김지연 |
데이터 입력 | 황다예 이준엽 김이향 이종현 |
촬영 | 최형석 |
편집 | 박서영 |
CG | 정동우 |
디자인 | 이도현 |
웹출판 | 허현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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