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타파와 시민단체는 <국회 세금도둑>을 6년째 추적하면서 ‘세금도둑’ 국회의원을 숱하게 찾아냈다. 그 중 단연 화제의 인물은 이은재 전 의원이다. 그가 세금을 빼먹은 행위는 노골적이고 뻔뻔했는데, 들통난 것은 작은 단서에서 비롯됐다.
2005년부터 국회의원이 의정 활동을 잘 하라며 ‘입법 및 정책개발비’ 예산을 도입했다. 일하는 국회가 돼 달라는 기대에 부응하기 위해서다. 한 해 300명 의원이 쓸 수 있는 정책개발비 예산은 120억 원가량, 이 중에 ‘소규모 정책연구용역’이 있다.
정책연구용역은 국회의원이 입법과 정책에 필요한 연구를 외부 전문가에 자유롭게 의뢰하고, 비용은 세금으로 지원한다. 보통 대학교수나 연구기관의 연구원, 시민단체 활동가 등이 연구용역을 맡는다.
그런데, 당시 이은재 의원은 특정 기관에 속하지 않은 이들만 골라 연구를 맡겼다. 뉴스타파 확인 결과, 이 의원은 ‘자유기고가’, ‘프리랜서’에게 4건의 용역을 줬다. 그 이유가 궁금했다. 그게 취재를 푸는 실마리가 될 거라고는 그때만 해도 생각지 못했다.
2018년, 이은재 의원이 맡긴 수상한 용역수행자의 정체 추적
<국회의원 보좌진의 역량 강화와 제도 개선> 2016년 이은재 의원이 했다는 정책연구용역의 제목이다. 국민 세금 500만 원이 들어갔다. 주제는 흠잡을 데가 없다. 국회의원으로서 당연히 할법한 연구 과제다.
다만 거슬린 건 연구 수행자의 직책이었다. 집필자 이 모 씨, 직업란에 ‘자유기고가’라고 돼 있다. 아래는 2018년 8월, 뉴스타파 기자와 이 모 씨의 통화를 간추린 것이다.
▲기자: 대학원에서 의회 전공을 하셨나요? ◆이 씨: 아니에요 ▲기자 : 일반 직장인이신 거죠? 자유 기고가로 돼 있던데요. ◆이 씨: 제가 시에서 이런 데서, 조금 시민단체 이런 데서 조금 보고 그런 거예요 제가 관심이 있는 분야예요. ▲기자: 전공이 의회나 정치 부분이 아닌데 어떤 이유에서 '국회 보좌진 역량강화 제도 개선' 용역을 맡은 걸까요? ◆이 씨: 어디 전공이어야 되나요? 정책이나 경제나 행정 쪽에 관심이 있으면 할 수 있는 거 아니에요? ▲기자: 할 수 있는데, 왜 하필 선생님한테 (용역이) 갔을까? 그게 궁금해서요 ◆이 씨: 일단 저는 돈을 받아서 썼고요. 끊겠습니다. (전화 끊음)
이 씨와의 통화는 5분 남짓. 더는 연결되지 못했다. 풀리지 않은 의혹은 여전했고 취재는 제자리걸음이었다. 게다가 당시에는 ‘자유기고가’ 이 씨가 썼다는 <국회의원 보좌진의 역량 강화와 제도개선>의 결과보고서를 볼 수 없었다. 지금은 국회의원들의 용역 결과보고서가 대부분 공개돼 있지만, 그 당시에는 비공개가 많아 확인이 불가했다. 취재진은 이은재 의원에게 결과보고서를 보여달라고 여러 번 요청했지만 매번 거절당했다.
이 씨의 취재를 잠시 접고, 또 다른 ‘자유기고가’ 홍 모 씨에게 연락했다. 이은재 의원은 2016년 홍 씨에게도 <국가 정보활동 관련 국내외 입법례 및 판례 동향 검토> 등 전문적인 주제의 연구용역을 줬고, 세금 500만 원을 지급했다. 그런데 앞서 이 씨와 달리 홍 씨는 솔직했다. 홍 씨와 나눈 대화 일부를 정리한 것이다.
▲기자: 2016년도에 국정원 관련 입법 판례 동향을 용역 받으신 적 있으세요? ◆홍 씨: 아니요. 그런 적 없는데요. ▲기자: 국정원 관련 쓴 게 아니에요? ◆홍 씨: 제가 한 게 아니고 그냥 그 친구 놈이 통장에 이름 잠깐 빌려준 거예요. 그러니까 돈 받아야 하는데 자기 통장으로 못 받는다고 해서 내 통장으로 받아서 보내준 거예요. ▲기자: 친구분이 보좌관님이세요? ◆홍 씨: 네. ▲기자: 선생님이 받아서 돈을 쓰신 건 아니고요? ◆홍 씨: 그걸 제가 왜 써요. 남의 돈을. 처음 입금할 때부터 세금을 떼서 왔겠죠. 480만 원인가 그 돈 다 줬죠. ▲기자: 통장 이름만 잠깐 빌려주신 거예요? ◆홍 씨: 친구가 부탁하니까 안 할 수도 없고. ▲기자: 하나만 더 물어볼게요 ◆홍 씨: 지금 자야 되니까 나중에 전화해요. (전화 끊음)
전화 통화를 마치고 며칠 뒤 홍 씨가 사는 집 옥상에서 만났다. (2018년 9월)
이은재 의원실 보좌관 친구를 통해 세금 유용 비리 확인
믿기 어려운 말이었다. 홍 씨의 증언 외에 더 명확한 증거를 확보하기로 했다. 홍 씨와 계속 연락이 닿았고 집을 찾아 낮잠을 자던 그를 깨웠다. 집 옥상에서 운동복 차림의 홍 씨와 마주했다. 그의 손에 은행 통장이 쥐여 있었다. 결정적 범죄의 증거, 국회에서 받은 용역비를 곧바로 친구인 보좌관의 계좌로 보낸 입출금 내역을 확인했다.
이은재 의원이 세금을 빼먹는 방법, 보좌관 친구를 가짜 연구자로 만들어 국회 예산을 돌려받는 수법을 사용했다.
이렇게 이은재 의원이 '국회 세금도둑' 1호 당사자가 됐다. 2018년 10월 18일, 그를 다룬 방송이 나갔다. ① 이은재 의원 보좌관의 친구가 정책연구용역 계약을 맺은 것처럼 허위로 공문서를 작성해 ② 국회사무처를 속이는 수법으로 ③ 세금을 빼먹은 범죄를 저질렀다는 내용이었다. 현역 의원의 예산 비리를 생생하게 폭로한 탐사보도였으나, 한 가지 풀지 못한 게 있었다. 빼돌린 세금을 누가 어디에 썼느냐였다.
2018년 10월, 당시 이은재 의원의 보도자료
보도 나흘 뒤인 2018년 10월 22일, 이은재 의원은 "국민께 심려를 끼쳐드린 점 죄송하다"며 세금 1,167만 원을 반납했지만 사용처는 끝까지 말하지 않았다. 이를 밝히는 건 언론이 아닌 수사당국의 몫이었다.
이틀 뒤 10월 24일, 시민단체 3곳이 고발장을 들고 검찰청사에 나섰다. 이은재 의원을 포함해 강석진, 곽대훈, 백재현, 유동수, 황주홍 등 국회의원 6명을 고발했다. 범죄 혐의는 형법 제347조 사기죄였다. 하승수 세금도둑잡아라 공동대표(변호사)가 고발장을 썼다.
"피고발인들의 행위는 국가를 상대로 한 사기 행위이며, 국회의원이 헌법 제46조 제1항에 규정된 국회의원의 청렴 의무를 망각하고 국민 세금을 빼먹는 국민에 대한 배신 행위를 한 것입니다. 따라서 검찰은 최대한 신속하고 엄중하게 수사해서 처벌해야 할 것입니다." (2018년 10월 24일 이은재 의원 등 고발장 중)
2018년 10월, 국감장에서 만난 이은재 의원. 빼돌린 세금을 어디에 썼는지 물었지만 답변을 거부했다.
이후 고발인(하승수 변호사) 조사가 잠시 있었지만 그때뿐이었다. 검찰은 움직이지 않았고 의원들의 강제 수사도 없었다. 국회의원 임기를 마칠 때까지 검찰은 어떤 처분도 내리지 않았다.
검찰, 이은재 전 의원 벌금 500만 원 약식기소
3년이 지나고 2021년 12월 29일, 검찰은 전직 의원이 된 이은재 1명만 벌금 500만 원 약식기소했다. 나머지 5명은 증거불충분, 혐의없음. 또는 경찰로 수사를 넘겼다. 유일하게 기소된 이은재 전 의원은 정식재판을 청구해 현재 서울남부지방법원에서 1심 재판이 진행 중이다.
검찰이 시민단체에 보낸 이은재 전 의원의 고발사건 결정결과 통지서
검찰의 늑장 수사에도 이은재 전 의원의 기소는 그 의미가 가볍지 않다. 국회의원이 뇌물수수나 정치자금법 위반이 아닌 의원 본인에게 책정된 세금을 오·남용해 사기죄로 재판을 받는 사례는 매우 드물기 때문이다. 입법부에 대한 공직 감시의 역할과 세금 집행의 투명성이 높아졌다는 평가가 나왔다.
무엇보다 ‘세금도둑’ 이은재 전 의원을 공직에서 퇴출시키는 변화를 끌어낼 수 있었다. 이 전 의원은 21대 총선에서 공천받지 못했으며, 이후 공천 탈락에 반발해 탈당하며 갖은 방법으로 '여의도 입성'을 노렸으나 실패했다. 더욱이 '세금 범죄'를 저질러 재판까지 받고 있었기에 그의 ‘정치생명’은 곧 끝날 것처럼 보였다.
그러나 이 전 의원은 공직의 꿈을 포기하지 않았다. 지난해 8월 국민의힘에 복당 했고, 윤석열 정부가 들어서고부터 '이은재' 이름 석 자가 언론에 자주 오르내렸다. 급기야10월 12일, 전문건설공제조합의 새로운 이사장 후보로 최종 낙점됐다는 뉴스가 전해졌다. 전문건설공제조합은 운영위원 20명 가운데 정부가 추천하는 위원 9명, 국토부와 기재부의 국장급 당연직 위원 2명이 포함돼 있어 정부의 '입김'에서 자유롭지 않은 곳이다.
세금도둑잡아라, 함께하는시민행동, 투명사회를위한정보공개센터는 10월 13일 성명을 내고 “파렴치한 행위를 저지른 사람이 수억 원의 연봉을 받는 전문건설공제조합 이사장으로 선임된다는 것은 상식에 반하는 것으로, 최소한의 양심이 있다면 이은재 전 의원은 지금이라도 스스로 사퇴하기 바란다”고 밝혔다. 전문건설공제조합이 새 이사장을 공모하며 내세운 이사장의 자질과 덕목을 찾아보니, “청렴성과 도덕성 등 건전한 윤리 의식”을 가져야 한다고 돼 있었다.
11월 1일 3억짜리 이사장 선임의 날 vs 11월 17일 세금도둑 형사 재판의 날
다음 달인 11월 1일, 전문건설공제조합 총회가 열리는데, 이날 이은재 전 의원의 이사장 선임이 최종 결정된다. 약 보름 뒤인 11월 17일, 서울남부지방법원에서는 이 전 의원의 형사 재판이 열린다. 이날 하승수 변호사가 증인으로 출석할 예정이다.
연봉 수억 원짜리 이사장으로의 복귀일까. 추상같은 법의 심판일까. '세금도둑' 정치인 이은재에게 올해 11월은 어떻게 기억될 것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