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정부 8개월…“잘못하고도 고치지 않는다”

2022년 12월 29일 20시 00분

정부는 여러분에게 각자도생하라고 합니다. 개인의 안전은 개인이 책임지라고 합니다. 취업이 안돼도 생활고를 겪어도 사회로부터 외면받아 마음에 병이 들어도 길을 가다 목숨을 잃어도 정부는 심약한 너희들이 문제라고 합니다. 이 나라에는 책임지는 정부는 없습니다.

최선미 / 희생자 박가영 씨 어머니 (2022.12.13, 이태원 참사 유가족협의회 기자회견)
2022년 12월 13일 국회를 찾은 이태원 참사 희생자 유가족의 말이다. 이 말에는 현재 윤석열 정부가 시민들에게 어떤 정부로 여겨지고 있는지가 함축돼 있다. 교수들이 뽑은 2022년 올해의 사자성어로 빗대자면 ‘과이불개(過而不改) 정부’다.
▲ 교수들이 뽑은 2022년 올해의 사자성어, 과이불개(過而不改). 
과이불개란 “잘못을 하고도 고치지 않는다”는 뜻이다. 공자는 논어 ‘위령공편’에서 과이불개 시위과의(過而不改 是謂過矣) 즉, “잘못을 하고도 고치지 않는 것, 이것을 잘못이라고 한다”고 했다. 잘못을 인정하지 않고 책임지지 않는 것 또한 큰 잘못이라는 것이다. 출범 이후 약 8개월, 윤석열 정부가 저질러 놓고 고치지 않는 세 가지 잘못을 정리했다. 

1. 잘못하고도 고치지 않는 ‘인사’

이상민 행정안전부 장관, 한덕수 국무총리, 윤희근 경찰청장, 김광호 서울경찰청장. 2022년 10월 29일 서울 이태원의 한 골목에서 478명이 숨지거나 다쳤지만, 아무런 책임도 지지 않은 채 자리를 보전하고 있는 고위공직자 4명이다. 
▲ (왼쪽부터) 이상민 행정안전부 장관, 한덕수 국무총리, 윤희근 경찰청장, 김광호 서울경찰청장.
이상민 행정안전부 장관은 재난안전법에 따라 국가와 지방자치단체의 재난과 안전 관리 업무를 총괄하고 조정해야 하는 책임자다. 그러나 소방공무원 노동조합이 11월 13일 “참사의 실질적인 책임이 있는 총책임자”라며 직무유기와 업무상 과실치사상 혐의로 고발한 뒤에야 경찰에 입건됐다. 12월 11일 그의 해임 건의안이 국회 본회의를 통과했지만, 윤석열 대통령은 대변인을 통해 “해임 문제는 진상이 명확히 가려진 후에 판단할 문제다, 법적 책임 소재 규명이 가장 중요하다”고 발표했다. 국회의 해임 건의를 사실상 거부한 것이다.  
경찰법상 지역 생활 안전과 교통, 경비 사무의 책임자인 김광호 서울경찰청장과 이상민 장관은 업무상 과실치사상 혐의로 경찰청 특별수사본부의 수사를 받고 있다. 하지만 이 장관에 대한 소환 조사는 한 달 넘게 이뤄지지 않고 있다. 경찰의 수장인 윤희근 경찰청장과 행정부를 통할하는 한덕수 국무총리는 입건조차 되지 않았다.
▲ 2014년 당시 이시원 ‘서울시 공무원 간첩 조작 사건’ 담당 검사에게 질문하는 최승호 뉴스타파 PD. 
2022년 5월 취임 이후 윤 대통령은 책임을 지는 위치마다 ‘과이불개’ 인사들을 앉혀왔다. 이시원 대통령실 초대 공직기강비서관이 대표적이다. 이시원 공직기강비서관은 서울시 공무원 유우성 씨를 간첩으로 조작하고 증거까지 위조해 징계받았다. 하지만 반성은 없었고 공직 기강을 바로잡는 요직에 올랐다. 
이명박 정부 당시 군사 기밀을 유출한 혐의로 ‘국가안보에 악영향을 미쳤다’며 유죄가 확정된 김태효 씨도 안보 정책을 조정하는 대통령실 국가안보실 1차장에 발탁됐다. 4년 전 김 차장의 수사를 지휘했던 서울중앙지검장이 윤 대통령 자신이었다. 그러나 윤 대통령은 김태효 차장이 안보를 총괄할 자격을 갖춘 공직자인지 해명하지 않은 채 임명을 강행했고, 최근에는 그를 사면 조치했다. 
한동훈 법무부 장관은 장관 후보자 당시 장녀의 학술지 게재 논문이 표절로 드러났다. 뒤이어 처조카들도 표절과 데이터 조작으로 허위 스펙을 쌓았다는 사실이 확인됐다. 또 장인과 처남이 주가 조작 사건에 연루됐고, 이 주가 조작범이 검찰의 특혜를 받은 정황도 보도됐다. 그러나 자진 사퇴나 중도 낙마는 일어나지 않았다. 
복두규 대통령실 인사기획관과 윤재순 대통령실 총무비서관. 이 두 사람은 각각 대검찰청 사무국장과 운영지원과장을 맡았었다. 윤 대통령이 검찰총장일 때 검찰 특수활동비 업무를 담당했던 윤 대통령의 ‘금고 지기’들이다. 이 중 윤재순 총무비서관은 과거 두 차례의 성비위 전력이 드러났는데도, 대통령실 특수활동비 예산을 관리하는 공직에 임명됐다. 
참여연대 조사 결과와 언론 보도 등을 종합하면, 검찰 내부 인사를 제외하고 윤석열 정부에 포진된 검찰 출신의 고위 공직자는 15명이다. 장·차관급 인사 9명, 대통령실 비서관급 이상 인사는 6명이다. 검찰 요직도 일명 윤석열 사단과 ‘특수통’ 검사들이 독차지하고 있다. 윤 대통령과 가까운 검찰 출신 인사들이 권력 곳곳을 꿰차면서, 윤석열 정부는 곧 ‘검찰 정부’라는 비판이 계속되고 있다. 
이런 사태(이태원 참사)에 대해서 (공직자가) 정치적 책임을 지고 자신의 거취를 표명하는 것은 굉장히 중요한 정치 활동이에요. 근데 그것을 형벌로써, ‘형사 처벌을 안 받으면 괜찮다’라는 생각도 결국 아까 말씀드린 대로 사법 위주의 생각들, 그러니까 검찰의 경험을 토대로 검찰 중심의 법칙, 검찰식으로 보는 법치의 관점에 서 있기 때문인 거죠.

오병두 / 참여연대 사법감시센터 소장

2. 잘못하고도 고치지 않는 ‘영부인 리스크’

공직자가 아닌, 공식 직책도 없는 영부인 김건희 여사. 윤석열 정부의 신뢰도를 떨어트리는 뇌관으로 작용한다는 지적이 꾸준했다. 대선 전부터 김 여사는 도이치모터스 주가 조작 사건으로, 그의 모친 최은순 씨는 도촌동 땅 투자와 통장 잔고증명서 위조 사건으로 구설에 올랐다. 대선 정국에서 김 여사의 학위논문 표절과 허위 경력 논란이 불거지며 대국민 사과를 했다. 
과거의 잘못을 깊이 반성하고 국민의 눈높이에 어긋나지 않도록 조심 또 조심하겠습니다. 그리고 남편이 대통령이 되는 경우라도, 아내의 역할에만 충실하겠습니다. 

김건희 / 당시 윤석열 대선 후보 부인 (2021.12.26, 대국민 사과)
반성하고 조심하겠다고 했지만 대통령의 부인이 되자 또다시 논란의 중심에 섰다. “문제가 있는 인물들이 김 여사의 추천으로 대통령 취임식에 초청받았다”는 언론 보도가 잇따랐다. 김 여사가 연루된 주가 조작 사건의 주범인 도이치모터스 권오수 전 회장의 아들, 김 여사의 모친에게 잔고증명서를 위조해준 혐의로 유죄 판결을 받은 코바나컨텐츠 전직 감사, 모친을 수사했던 현직 경찰관, 패륜적 언행을 일삼는 극우 유튜버 안정권 씨 등이다. 
김 여사가 윤석열 대선 후보에게 고액의 정치후원금을 낸 민간인을 해외 순방의 수행원으로 데려간 사실도 드러났다. 코바나컨텐츠를 운영하며 인연을 맺었던 업체에 수의계약으로 대통령 관저 공사를 맡겼다는 의혹까지 나왔다. ‘비선 수행’, ‘지인 찬스’와 같은 비판적 조어들이 나오고 김 여사 주변에서 권력을 사유화하고 있다는 우려가 커졌지만, 대통령실은 자정의 움직임을 보이지 않았다. 
▲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 정상회의 참석을 위해 출국하는 김건희 여사와 윤석열 대통령.
이런 와중에 윤 대통령 취임 100일 동안 김 여사가 최소 20건의 비공개 일정을 진행했던 사실이 새롭게 밝혀졌다. 김 여사를 둘러싼 논란이 한창이던 지난 8월, 뉴스타파는 정부 정보공개 사이트에 올라온 정보목록에서 ‘여사님’ 단어를 검색해 여러 건의 기록물을 찾아냈다. 서울경찰청이 작성한 ‘여사님 중요행사 관련 근무인원 동원보고’라는 제목의 문건들이었다. 
뉴스타파는 김 여사가 어디를 가서 누구를 만났는지와 같은 비공개 행적이 기록돼 있는 이 문건들의 공개를 요구했다. 대통령 배우자를 관리하던 대통령실 제2부속실이 없어진 상황에서, 영부인에 대한 공적 감시가 필요하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 2022년 7월 한 달 동안 김건희 여사가 비공개 일정을 진행했던 날짜들.   

3. 잘못하고도 고치지 않는 ‘비공개’

그러나 윤석열 정부는 이 공공기록물을 공개하지 않았다. 안보와 같은 국가의 중대한 이익을 해칠 수 있다는 핑계를 댔다. 더 나아가 정부 정보목록에 서울경찰청이 작성한 ‘여사님 문건’을 올려놓지 않기 시작했다. 
취재진은 정보공개 사이트에서 ‘여사님’ 단어를 다시 입력해봤다. 뉴스타파가 김건희 여사의 비공개 일정 20건을 보도했던 8월 18일 이후에도 ‘여사님 문건’이 계속 정보목록에 올라왔는지 확인했다. 지금까지(12월 28일 기준) 검색 결과, 단 한 건도 조회되지 않고 있다. 알리고 싶은 정보만 알리고, 알리고 싶지 않은 껄끄러운 정보는 가리는 ‘불통 정부’의 모습이다. 
12월 15일 “검찰 특수활동비 예산 자료를 공개하라”는 2심 판결이 나왔지만, 윤석열 정부의 검찰은 국민의 알권리 대신 대법원 상고를 택했다. 검찰이 국민의 세금을 어느 곳에 어떻게 썼는지 검증의 길이 다시 막혔다. 
▲ 대통령기록관에서 확인한 대통령 취임식 관련 공문의 일부. 코드 번호 440에 “대통령 특별 초청(친지 등)”라고 쓰여 있다.
이뿐만이 아니다. 대통령 취임식 초청 명단, 대통령비서실의 수의계약 내역과 직원 명단. 행정 감시를 위해 언론과 시민단체들이 공개를 요구했지만 번번이 거부당했다. 이태원 참사 이후 윤석열 정부의 불통과 비밀주의는 악화하고 있다. 결국 뉴스타파를 비롯한 언론과 시민단체들은 비공개를 일관하는 윤석열 정부를 상대로 정보공개 소송을 시작했다. 
이태원 참사, 핼러윈 이런 것과 관련해서 지금 중앙부처 어느 기관의 정보를 찾아봐도 정보가 없어요. 국무총리실 같은 곳에서 (정보목록에) 핼러윈, 이태원 이런 거 검색해도 정보가 안 나와요. (국회의원에게는) 그게 국가 안보라거나 어떤 민감한 사안이 아니라면 그냥 자료들을 제출을 해야 하거든요. 국회의원들한테 정보공개법을 들어서 비공개하는 건 말도 안 되는 거예요. 그 법을 이해하지 못했거나 국회의원을 무시하는 거예요. 

정진임 / 투명사회를 위한 정보공개센터 소장
어떠한 부분이 문제가 있고 어떤 부분이 잘못되었다고 이런 것을 알려주고 또 오해가 있는 부분들은 풀어주고 해명하고 이런 노력이 있어야 하는데, 전혀 그런 노력을 하지 않고 어떻게 보면 남의 일처럼 방관해 버리는 그런 행태에 유가족들이 굉장히 분노하는 거거든요.

이정민 / 희생자 이주영 씨 아버지
2023년에 임기 2년 차를 맞는 윤석열 정부. 8개월여 동안 저지른 잘못을 인정하고 책임 있는 자세를 보여줄 수 있을까. ‘과이불개’라는 오명에서 벗어날 수 있을까. 시민들은 지켜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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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상 취재이상찬 오준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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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허현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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