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초 공개> '윤우진 뇌물사건' 경찰 의견서 & 검찰 불기소 결정문

2021년 10월 06일 09시 00분

경찰, 8건에 1억 3800여만 원 뇌물수수 혐의 포착...검찰은 전부 무혐의
윤우진에 8000만 원 건넨 육류업자, 세무조사서 수십억 특혜 정황
“윤우진은 몰랐다”... 검찰, 윤우진에 불리한 증거엔 눈 감아
윤우진, ‘갈비 100세트 뇌물’ 관련 부하직원에 허위진술 강요
검찰, 뉴스타파 ‘스폰서 폭로’ 보도 직후 특수부 투입...윤우진 최측근 구속
‘윤우진 전 용산세무서장 뇌물수수 사건’ 경찰 수사의견서와 검찰의 불기소 결정문을 뉴스타파가 입수했다. 2019년 윤석열 검찰총장 후보자 인사청문회 때부터 국회를 중심으로 공개 요구가 빗발쳤던 바로 그 자료다.
뉴스타파가 입수한 ‘경찰 수사의견서’는 2013년 8월 7일 작성된 67쪽 분량의 검찰 송치 서류다. 검찰은 사건을 넘겨 받고 1년 6개월 뒤인 2015년 2월 23일 윤우진과 이 사건 관련자들 모두를 불기소 처분하고 사건을 마무리한 바 있다. 검찰의 불기소 결정문은 표지 포함 총 11쪽으로 구성돼 있다. 불기소 결정을 내린 수사책임자는 조기룡 당시 서울중앙지검 형사 3부장이었다. 
윤우진 전 서장은 윤석열 전 검찰총장의 소위 ‘변호사 소개 의혹’ 당사자다. 2012년 뇌물수수 혐의로 서울경찰청 광역수사대 수사를 받을 때 윤석열 당시 대검찰청 중수1과장(부장검사)에게 변호사를 소개받았다는 의혹을 받아왔다. 윤우진은 윤석열 전 총장의 최측근으로 알려진 윤대진 검사장의 친형이다.
윤 전 총장의 변호사 소개 의혹이 아니어도 ‘윤우진 뇌물사건’은 그 자체로 미스터리한 사건이다. 경찰 수사 도중 현직 세무서장이 해외로 도피하는 초유의 일이 벌어졌음에도 검찰이 무혐의 처리해 논란이 됐다. 해외 도피 직후 국세청에서 파면됐던 윤우진은 검찰이 불기소 결정을 내린 직후 파면취소소송에서 승소했고, 국세청에 복귀해 정년퇴직했다.
‘윤우진 뇌물수수 사건’의 대략적인 얼개는 이미 널리 알려져 있다. 2010~2011년경 서울 마장동의 육류업자 김모 씨에게 3000만 원의 현금과 4000만 원이 넘는 골프비를 받은 의혹, 같은 시기 김 씨의 세무대리를 맡은 세무법인 대표에게서 5000만 원을 받았다는 의혹 등이다. 대부분 국세청이 육류업자 김모 씨에 대한 세무조사에 나서자, 이를 무마해 준다는 명목으로 받아 챙겼다는 의심이었다.
취재진은 이번에 입수한 경찰과 검찰의 사건처리 문서를 통해 ‘윤우진 뇌물사건’의 실체를 정확히 확인할 수 있었다. 분석 결과, 경찰수사로 드러난 윤우진에게 불리한 범죄 증거가 검찰 수사단계에서 사라지거나 억지로 외면된 정황이 곳곳에서 확인됐다.
윤우진 전 용산세무서장

경찰, 윤우진과 뇌물공여자 3명 기소 의견...검찰은 전원 무혐의

경찰 수사의견서에 따르면, 2012년 초 시작된 ‘윤우진 뇌물사건’의 수사대상자는 총 5명이다. 뇌물을 받은 윤우진 전 서장, 윤우진에게 뇌물을 준 것으로 지목된 3명(육류업자 김모 씨, D세무법인 대표 안모 씨, 기업인 송모 씨)과 윤우진 뇌물 수수를 도운 국세청 직원 박모 씨다. 경찰은 이중 송모 씨와 박모 씨를 제외한 3명을 기소의견으로 검찰에 넘겼다. 하지만 2015년 2월 검찰은 이 5명 모두를 무혐의 처분하고 사건을 마무리했다. 검찰은 경찰이 특정한 8개나 되는 ‘윤우진 뇌물’ 혐의도 모두 무혐의 결정했다.
2012년 당시 경찰이 수사를 통해 확인한, 윤우진 전 용산세무서장의 8개 뇌물수수 혐의는 다음과 같다.
1. 2010년 3~4월경 육류업자 김OO에게 1000만 원 현금 수수
2. 2010년 7월 중순경 육류업자 김OO에게 1000만 원 수수
3. 2011년 2월 1일경 육류업자 김OO에게 1000만 원 상당의 LA갈비 100세트 수수
4. 2010년 11월 21일~2011년 12월 18일경 육류업자 김OO로부터 21회에 걸쳐 4000만 원 상당의        골프접대.
5. 2011년 9월 20일 내연녀 계좌를 이용해 아파트 구입대금 명목으로 D세무법인 안OO 대표에게            5000만 원 수수.
6. 2011년 10월 7일 내연녀 계좌를 이용해 가전제품 구입대금 명목으로 육류업자 김OO에게 1000만        원 수수.
7. 2004년 10월~2012년 3월 세무사 안OO에게 86회에 걸쳐 809만 원 휴대전화 요금 대납
8. 2021년 3~7월까지 (주)OOOO 송모 대표에게 휴대전화를 제공받아 58만 원 휴대전화 요금 대납 

윤우진, 총 8건에 1억 3800여만 원 뇌물 수수 혐의

윤우진이 받은 뇌물은 대부분 육류업자 김모 씨에 대한 세무조사와 관련이 있다. 2011년 9월 중부지방국세청이 106억 원에 달하는 출처 불명의 김모 씨 재산에 대한 자금출처조사에 나서자 윤우진이 이를 무마해 주겠다며 금품을 받아갔다는 게 경찰의 판단이었다. 
경찰은 이 세무조사 이전에 윤우진이 육류업자에게 받은 금품은 ‘미래에 발생할 세무조사 대비’, ‘성동세무서가 진행한 세원관리업무에서 편의를 제공’ 받고자 주고 받은 것으로 봤다. 위에서 나열한 윤우진의 뇌물 혐의 중 1~3번(현금과 갈비세트), 4번 골프비 대납 중 일부(1100만 원 가량)가 후자에 해당한다. 경찰 수사 의견서에는 2011년 9월 이전 윤우진과 육류업자가 주고받은 금품의 성격이 이렇게 설명돼 있다.   
“윤우진이 자신의 직위를 이용하여 장래에 발생 가능한 세무조사 및 민원사건과 관련하여 영향력을 행사하여 알선해 주겠다는 의사를 암묵적으로 표현하고, (육류업자) 김OO는 자신의 경제력을 바탕으로 그에 상응하는 대가를 제공해 주겠다는 의사를 묵시적으로 표현하는 등 서로의 의사를 묵시적이고 암묵적으로 표현하여 교환하였다.”
- 경찰 수사의견서 (2013.8.7.)
육류업자 김 씨가 자금출처와 관련해 중부지방국세청 세무조사를 받은 뒤 시작된 윤우진과 육류업자 측의 돈거래는 ‘윤우진 뇌물’ 사건의 핵심이다. 일단 규모가 이전보다 커졌고 대가성이 분명해 뇌물 혐의가 짙다. 아파트 구매대금 명목으로 D세무법인 안모 대표에게 받은 5000만 원, 가전제품 구매대금 명목으로 육류업자 김 씨에게 받은 1000만 원, 역시 김 씨에게 3개월간 제공받은 골프비 2900만 원이 여기에 해당한다.    
이 외에도 윤우진은 위 뇌물수수 항목에서 보는 것처럼, 세무법인 대표와 기업인에게 대포폰 2개를 제공받아 길게는 8년, 짧게는 4개월간 사용하면서 867만 원 가량의 전화요금을 대납시킨 혐의도 받았다.  
뉴스타파는 경찰 수사의견서와 검찰의 무혐의 결정문을 비교 분석해, ‘윤우진 뇌물사건’의 주요 혐의내용를 확인하고 문제점을 짚어봤다. 

# 육류업자로부터 현금 2000만 원 수수 혐의

먼저 윤우진 전 서장 뇌물사건의 시작점이 된, 2010년 3~7월 사이 육류업자 김모 씨에게 현금 2000만 원을 받아 챙긴 혐의를 보자. 경찰은 뇌물 수수 과정을 이렇게 설명했다. 
“(서울 성동세무서장이었던) 윤우진은 자신의 부하직원 박OO을 통해 육류업자 김OO 회사 직원 N씨가 가져온 흰색 봉투에 담긴 현금 2000만 원을 두 차례에 걸쳐 받았다.”
- 경찰 수사 의견서 (2013.8.7.) 
이 의혹은 육류업자 김 씨 회사 직원 N씨의 제보로 시작됐다. 돈을 받은 것으로 의심될 당시는 윤우진이 서장인 성동세무서가 관내 사업체를 대상으로 ‘숨은 세원 찾기’ 일체 조사를 진행하던 때였다. 경찰은 육류업자가 윤우진 서장에게 ‘장래에 예상되는 세무조사를 무마할 목적으로 돈을 줬다’고 의심했다. 경찰 수사의견서에는 “윤우진과 육류업자가 2010년 1월 4일경, 윤우진이 성동세무서장 취임한 직후 누군가의 소개로 알게 됐다”고 적혀 있다.  
하지만 검찰은 육류업자에게 2000만 원을 받았다는 경찰 수사결과에 대해, 제보자 N씨의 진술을 믿을 수 없다는 이유를 들어 무혐의 처분했다. “N씨가 육류업자의 지시로 윤우진 측에 건넸다는 봉투에 돈이 들어 있었는지 불분명”하고, “N씨가 수사 도중 진술을 번복한 사실이 있다”는 등의 이유였다. N씨를 통해 돈을 전달받아 윤우진에게 건넨 것으로 의심받은 윤우진 부하직원 박모 씨가 수사과정에서 “나는 N씨를 모른다”고 주장한 것도 중요한 무혐의 근거로 삼았다.  

검찰, 윤우진에 불리한 증거는 모조리 외면

그런데 검찰의 불기소 결정문에는 하나 빠진 게 있었다. 돈을 주고 받는데 관여한 네 사람, 즉 육류업자와 N씨, 윤우진과 그의 부하직원 박 씨 외에 또 다른 증인이 있었다는 점이다. 육류업자 김 씨 회사의 전직 직원인 김OO 씨였다. 김 씨는 경찰 수사과정에서 “육류업자 김 씨가 윤우진에게 국세청 로비에 쓰라며 회사 법인카드를 줬다”, “성동세무서 직원인 박 씨와 육류업자 김모 씨가 잘 아는 사이다”라고 진술했다. 경찰 수사의견서에는 이렇게 적혀 있다.
“성동세무서에 근무하였던 (윤우진 부하직원) 박OO이 사무실로 자주 전화하여 (육류업자) 김OO를 찾았다.”
- 경찰 수사의견서(2013.8.7)
김OO 씨의 이런 주장은 “육류업자 회사 직원 N씨를 모른다”고 했던 뇌물전달자 박 씨의 주장을 의심케 한다. 심지어 검찰은 육류업자 사무실에서 박 씨의 명함이 나온 점, 제보자인 N씨가 박 씨의 전화번호를 정확히 알고 있는 점 등이 확인됐음에도 무혐의 결정을 밀어 붙였다. 윤우진에게 불리한 증거에는 눈을 감은 것이다.
경찰 수사의견서와 검찰 불기소 결정문을 통해 확인한 윤우진 전 용산세무서장의 뇌물 일지와 윤 전 서장에게 돈을 준 육류업자 세무조사 일지. 뇌물을 받은 시기와 세무조사 시기가 정확히 겹친다.

# 육류업자에 골프비 4000만 원 대납 혐의

경찰은 윤우진의 대포폰 통화내역, 기지국 분석 자료, 육류업자 김모 씨의 달력에 기재된 골프 약속 날짜 등을 분석해, 윤우진이 2010년 11월 21일부터 2011년 12월 18일까지 육류업자에게서 총 21회에 걸쳐 4000만 원 상당의 골프접대를 받거나 골프비를 대납시킨 혐의를 특정했다.
경찰 수사의견서에 따르면, 윤우진이 골프접대를 받은 시기는 뇌물의 성격상 두 개로 나뉜다.
앞서 언급한 것처럼, 육류업자 김모 씨가 106억 원의 출처 관련 세무조사를 받은 2011년 9월 15일 이전 10개월과 이후 3개월이다. 윤우진이 육류업자에게 받은 골프접대비 4000여만 원 중 2900만 원이 후자에 몰려 있다.
경찰 수사의견서에 따르면, 육류업자 김모 씨는 경찰 수사에서 윤우진에게 골프접대를 한 사실을 인정했다. 특히 자신에 대한 세무조사가 진행된 뒤인 2011년 11월 27일부터 같은 해 12월 18일까지 제공한 골프비 1700만 원 가량에 대해서는 아예 “내가 준 법인카드로 윤우진이 직접 결제한 것”이라고 진술했다. 육류업자 세무조사 무마 대가인지에 대한 판단은 따로 해 봐야겠지만, 최소한 윤우진이 육류업자에게 골프비를 직접 대납받은 사실은 당사자의 진술로 확인된 셈이다. 하지만 검찰은 이 문제 역시 경찰이 제시한 증언과 증거를 대부분 배척하는 식으로 윤우진을 도왔다.
우선 검찰은 육류업자에 대한 세무조사가 시작되기 전 윤우진이 받은 골프접대비(1100여만 원)에 대해서는 “윤우진이 성동세무서에서 진행된 세원관리업무에 관여하지 않았다”는 이유를 들었다. “세원관리업무는 성동세무서 담당 과장의 전결사항이어서 서장인 윤우진이 관여할 일이 아니었다”는 것이다. 하지만 당시 성동세무서가 진행한 관내 사업체에 대한 세원관리업무가 신임 국세청장의 지시에 따른 후속조치여서 기관장인 세무서장이 이를 모를 리 없었다는 정황에 대해서는 아무런 판단도 내놓지 않았다. 윤우진에게 불리한 정황은 배제한 것이다.
육류업자 김씨에 대한 세무조사 이후 윤우진이 받아 챙긴 골프비에 대한 검찰의 판단은 더 황당했다.

검찰, “윤우진은 육류업자 세무조사 몰랐다”

윤우진이 2011년 9월 시작된 육류업자 김 씨의 세무조사에 개입해 뇌물을 챙겼다는 의혹에 등장하는 인물은 총 3명이다. 윤우진, 육류업자 김 씨, 그리고 D세무법인 안모 대표다.
경찰은 우선 “윤우진이 2010년 1월 성동세무서장으로 발령받은 직후 육류업자 김모 씨를 알게 됐다”고 판단했다.
“(육류업자) 김OO는 자신의 고문세무사인 강OO에게 부탁하여 2010년 1~2월 사이 서울 용산구 소재 캐피탈호텔 앞 OO복집에서 피의자 윤우진을 소개받았다.”
- 경찰 수사의견서 (2013.8.7.)
윤우진과 D세무법인 안모 대표의 관계는 검찰의 불기소 결정문에 자세히 나와 있다. 윤우진이 안 씨로부터 8년간 대포폰을 제공받아 800만 원이 넘는 금전적 이익을 취한 것을 무혐의 처분하면서 검찰이 내민 논리였다. 미리 정리해 설명하면, 오랫동안 친하게 지낸 사이여서 밥 사고 술 산 대가로 대포폰을 제공받고 전화요금을 대납시킨 것은 이해해 줄 수 있다는 논리다.
“피의자 윤우진은 안OO이 자신의 세무 공무원 3년 후배로 1977년 함께 근무한 이래 37년 동안 친형제처럼 지내왔다…그 동안 자신(윤우진)이 선배로서 안OO을 위해 지출한 식대, 주대 등이 휴대폰 사용 대금보다 적지 않다며 대가성이나 직무관련성이 없다는 취지로 변명하고, (D세무법인 대표) 안OO도 같은 취지로 피의사실을 부인한다.”
- 검찰 불기소 결정문(2015.2.23.)
경찰은 육류업자 김 씨가 중부지방국세청으로부터 세무조사를 받게 되자, 윤우진이 세무법인 대표인 안모 씨를 소개한 과정을 이렇게 적고 있다.
“(윤우진은) 2011년 9월 중순경 (육류업자) 김OO의 106억 원 상당 세금누락분에 대하여 중부지방국세청에서 세무조사를 실시한다는 것을 알고, 전직 세무공무원인 D세무법인 대표인 안OO을 김OO의 세무조사 업무대행인으로 소개했다.”
- 경찰 수사 의견서(2013.8.7.)
결국 경찰과 검찰의 판단을 종합하면, 윤우진을 매개로 육류업자와 D세무법인 안모 대표가 알게 됐고 사건을 수임하는 사이가 됐다고 판단하는 게 합리적이다. 세무조사를 받을 당시 육류업자 김 씨는 별도의 세무대리인과 고문세무사를 두고 있었기 때문에 안 씨를 굳이 세무대리인으로 추가 선임할 이유도 없었다. 윤우진의 역할을 빼고는 이 세 사람의 관계가 설명이 안 되는 것이다. 그런데 검찰의 판단은 달랐다.
검찰은 윤우진이 골프비를 대납받았다는 혐의를 불기소 결정하면서 “육류업자가 윤우진과는 상관없이 D세무법인 안모 씨를 세무대리인으로 선임”했고, 나아가 “윤우진이 육류업자의 세무조사 사실 자체를 알았다고 볼 근거가 없다”고 판단했다. 육류업자가 세무조사를 받는다는 사실을 알지 못했으니 윤우진이 육류업자에게 자신과 가까운 세무법인 대표 안모 씨를 소개할 이유도 없었고, 육류업자 세무조사에 개입할 수도 없었다는 논리였다. 윤우진과 육류업자, 안모 씨가 입을 맞춘 듯 내놓은 주장만 그대로 받아들인 것이다. 검찰의 불기소 결정문에는 이렇게 적혀 있다.
“윤우진이 중부지방국세청의 (육류업자) 김OO에 대한 세무조사 사실을 알고 있었다거나 세무조사에 어떠한 영향력을 행사하였다고 볼만한 증거자료를 찾을 수 없다... (D세무법인 대표) 안OO은 (육류업자) 김OO와 개별적으로 쌓은 인연으로 윤우진과 관계없이 세무자문을 해 주었다고 진술하는 점에 비추어 볼 때…”
- 검찰 불기소 결정문 (2015.2.23.)
물론 검찰의 주장대로, 육류업자가 윤우진과는 관계없이 안 씨를 세무대리인으로 선임한 것이 사실일 수는 있다. 하지만 설사 그렇다해도 윤우진과 40년간 친형제처럼 지낸 사람과 윤우진에게 1년 넘게 4000만 원이 넘는 골프접대를 해 온 사업가가 사건을 주고받으며 윤우진에게 이 사실을 알리지 않았다고 생각하는 건 어떤 면에서 봐도 비상식이다. 하지만 검찰의 판단은 실제로 그랬다.
심지어 검찰은 육류업자가 쓰던 달력에 육류업자 세무조사 담당자와 윤우진의 이름이 동시에 적혀 있다는 사실이 확인됐는데도 이런 비상식적인 판단을 고수했다. 역시 윤우진에게 불리한 증거에는 철저히 눈을 감은 것이다.

검찰, 육류업자 달력에 적힌 ‘윤우진’ 이름도 외면

경찰이 압수수색을 통해 확보한 육류업자 김모 씨의 탁상용 달력에는 김 씨에 대한 세무조사가 시작된 직후 세무조사 담당자들과 윤우진의 이름이 여러차례 등장한다. 특히 2011년 11월 7일 기록에 윤우진과 함께 이름이 적혀 있는 정OO 씨는 육류업자 김모 씨 세무조사의 책임자였다. 윤우진이 육류업자 세무조사에 어떤 식이든 관여하고 있었음을 보여주는 결정적인 증거였다.
조선호텔, 오전8시, 윤우진 10시, 신OO국장, 정OO사무관, 임OO 조사관 (2011년 10월 27일)
정OO 윤우진 만남 (2011년 11월 7일)

육류업자 김모 씨 다이어리 메모 내용
달력 말고도 윤우진이 육류업자 세무조사에 관여했을 가능성을 보여주는 정황증거는 더 나왔다. 예를 들어 윤우진이 평소 일면식이 없던 세무조사 담당 과장과 전화통화했고, 전화를 한 날이 바로 세무조사 기간이 연장 승인된 날이었다는 점, 이 담당 과장이 윤우진 뇌물 사건이 언론에 보도되자 윤우진의 연락처를 의도적으로 삭제한 점, 세무조사가 진행될 당시 중부지방국세청 국장이던 신OO 씨가 세무조사 주무팀장인 정OO 사무관에게 전화해 “김OO(육류업자) 자금출처 조사하나? 잘 검토해봐라”라고 전화 한 점, 윤우진이 중부지방국세청 조사1국장을 지낸 김OO 씨와 같은 시기 4번이나 골프를 치고 수시로 전화통화를 한 점 등이다. 당시 경찰은 윤우진이 ‘김OO 전 국장→신OO 국장→세무조사 담당자’를 거쳐 외압을 행사했다고 의심했다.
하지만 이런 정황증거들이 확인됐음에도 불구하고 검찰은 “윤우진이 육류업자 김OO에 대한 세무조사 사실을 알고 있었다거나 세무조사에 어떠한 영향력을 행사했다고 볼만한 증거가 없다”는 판단을 유지했다.
검찰은 중요한 쟁점 중 하나였던 ‘윤우진이 육류업자에게 골프접대를 받은 시점’에 대해서도 윤우진에 유리한 판단을 했다. 골프비를 대납한 육류업자 김씨가 수사 초기인 2012년 9월 경찰진술에서 이미 “(윤우진이 성동세무서장으로 재직하던) 2010년 11월경 OOO골프장에서 윤우진과 골프를 친 뒤, 윤우진이 추후 쓸 수 있도록 300만 원을 선납 결제한 사실이 있다”고 진술했지만, 검찰은 이를 무시했다. 검찰은 경찰 수사 도중 해외로 도피했던 윤우진이 돌아온 뒤 육류업자가 "골프접대를 시작한 시기는 2011년 1월 이후"라고 번복한 진술만 받아들였다. 윤우진이 성동세무서장 재직시부터 골프접대를 받았는지 여부는 뇌물죄 입증에 필요한 대가성과 직접 관련돼 있어 중요한 문제였는데, 윤우진에 유리한 증언만 취사 선택한 것이다. 검찰은 "육류업자가 윤우진에게 골프접대를 한 시기는 윤우진이 영등포세무서장으로 옮긴 2011년 1월 이후이며, 골프비는 윤우진이 아닌 언론사 기자들을 위해 사용한 것”이라고 판단해 윤우진의 혐의를 벗겨줬다. '기자들에게 골프접대를 하는 과정에서 비용의 일부가 윤우진을 위해 쓰인 것이지, 윤우진에게 로비를 하기 위해 제공한 돈이 아니었다'는 논리였다.   

윤우진에 8000만 원 건넨 육류업자, 세무조사서 수십억 특혜 정황

심지어 검찰은 윤우진이 육류업자의 세무조사에 개입한 대가로 돈을 챙겼음을 추정케 하는 결정적인 증언까지 무시했다. 경찰의 수사의견서에 따르면, 경찰이 검찰로 사건을 송치하기 3개월 전인 2013년 5월 육류업자 김 씨 회사의 전직 직원이었던 D씨는 경찰 조사에서 이렇게 증언했다.
2013년 5월 29일 참고인 D를 출석케하여 진술 청취한 바,
2011년 10월 21일 (육류업자) 김OO의 사무실에서 김OO로부터 '국세청에서 세무조사 받는다'는 이야기를 듣고 '회사를요?'라고 되묻자 '아니, 나 개인이야, 회사까지 건든다고 해서 골치아파'라고 말하였다는 것으로, 위와 같은 이야기는 김OO로부터 직접 들었고,
2012년 1월 19일에도 김OO의 사무실에서 김OO로부터 '내가 영등포세무서장 윤우진하고 OO세무서장한테 용돈 좀 주고 40억 나올 거 5억에 마무리했다', '국세청에 한번도 안 들어갔고, 윤우진한테 (법인)카드를 줬더니 천만원 넘게 사용해서 회수했다'라고 김OO가 자신에게 직접 이야기하였다고 진술하고,
김OO의 부하직원인 박OO으로부터 2억 원이 조금 넘는 세금이 나왔으며, 국세청 로비자금으로 사용키 위한 현금을 만드느라 힘들다는 이야기를 직접 들었다는 진술임.

경찰 수사의견서 (2013.8.7.)
한마디로, 육류업자 김 씨가 윤우진 등 국세청 사람들에게 금품을 주고 자신의 세무조사를 무마했다는 주장이다. 하지만 검찰은 이 증언에 대해서도 아무런 판단을 하지 않고 윤우진에게 면죄부를 줬다. 검찰의 불기소 결정문 어디에도 경찰 수사에서 이런 진술이 나왔다는 사실은 언급되지 않았다.
2012년 당시 경찰은 윤우진 등의 세무조사 무마 노력의 결과로 106억 원의 자금출처조사를 받은 육류업자가 40억 원 정도로 예상된 추징금을 3억 원 가량으로 줄일 수 있었다고 판단했다. 세무조사를 담당했던 정OO사무관이 2012년 11월 1일 경찰 조사에서 “육류업자가 제출한 소명자료를 제대로 확인하지 않는 등 당시 세무조사에 문제가 있었다”는 사실을 실토했지만, 검찰은 이 역시 문제삼지 않았다.
윤우진 전 용산세무서장의 최측근인 최모 씨. 인천 영종도에서 대형낚시터를 운영하는 최 씨는 변호사법 위반 혐의로 최근 검찰에 구속됐다.

# 세무사 안OO에게 5000만 원, 육류업자에게 1000만 원 수수 혐의

2011년 9월 20일, 윤우진이 자신의 국세청 동료였던 D세무법인 안OO 대표에게 아파트 구입자금 명목으로 5000만 원을 받은 의혹은 윤우진의 최대 아킬레스건이다. 일단 금액이 클 뿐 아니라 육류업자가 세무조사를 받게 되자 자신과 가까운 세무사를 소개하면서 받은 것이어서 대가성이 뚜렷하기 때문이다. 법조계에서 흔히 쓰는 용어로 ‘죄질이 매우 불량한 혐의’라 할 수 있다.
의혹은 여러 개다. 일단 윤우진은 이 돈을 자신이 차명계좌로 활용해 온 내연녀 명의 통장으로 받았다. 돈을 받기 전후 안 대표와 전화통화를 한 사실도 경찰조사에서 드러났다. 오전 11시 1분경 윤우진이 자신이 쓰던 대포폰으로 안 대표와 통화했고, 56분 후인 11시 57분경 안 대표가 윤우진 측에 돈을 보냈으며, 같은 날 오후 2시 58분 경 안 대표가 다시 윤우진과 통화한 사실이 확인된 것이다.
게다가 이 돈을 받을 당시 윤우진과 내연녀 이OO 계좌에는 적게는 6400여만 원, 많게는 1억 6000만 원이 넘는 돈이 있어 굳이 5000만 원을 빌려 아파트 구입대금을 치를 이유도 없었다. 빌린 게 아니라 받아 챙긴 것이란 의심을 더 해주는 정황증거였다.
하지만 검찰은 이런 사실은 살피지 않은 채 “D세무법인 안 대표에게 (윤우진 내연녀인) 이모 씨가 빌린 돈”이라는 윤우진의 주장을 받아들여 역시 무혐의 처분했다. 검찰은 이 대목에서 다시 “육류업자 김모 씨가 세무조사를 받고 있다는 사실을 윤우진이 알았다고 보기 어렵기 때문에 이 5000만 원을 세무조사 무마의 대가(뇌물)로 판단할 수 없다”는 논리를 반복했다.
심지어 검찰은 윤우진의 주장과 달리 내연녀 이모 씨가 경찰조사에서 “5000만 원은 내가 아니라 윤우진이 빌린 것이다”라고 증언한 사실까지 무시한 것으로 드러났다. 검찰의 불기소 결정문에는 윤우진과 내연녀 이모 씨가 5000만 원의 성격에 대해 서로 다른 주장을 했다는 내용이 전혀 등장하지 않았다.
D세무법인 안 대표에게 5000만 원을 받고 20일쯤 뒤인 2011년 10월 7일, 윤우진이 육류업자로부터 내연녀 명의 차명계좌를 이용해 가전제품 구입 명목으로 1000만 원을 받아챙겼다는 의혹 역시 이상하기는 마찬가지다.
돈을 받기 전후 윤우진이 육류업자와 전화통화를 하고, 이렇게 받은 돈으로 윤우진이 직접 가전제품을 구입한 사실이 드러났지만, 검찰은 “돈을 빌린 것은 윤우진이 아닌 내연녀 이모 씨”라는 윤우진의 주장을 받아들여 무혐의 처분했다. 검찰은 '내연녀인 이모 씨가 육류업자에게 1000만 원을 빌린 사실을 전혀 몰랐다'는 윤우진의 주장을 액면 그대로 받아줬다.

# LA갈비 100세트 수수 혐의

앞서 살펴본 뇌물 의혹에 비할 바는 아니지만, 윤우진이 육류업자 김모 씨에게 2011년 2월 LA갈비 100세트를 받아 챙겼다는 의혹 역시 중요한 쟁점 중 하나다. 결론부터 얘기하면, 검찰은 이 부분 역시 혐의가 없다고 판단했다. “갈비세트 100개를 뇌물로 받아챙겼다는 의혹은 사실이 아니며 16세트를 75만원에 샀다는 윤우진의 주장에 설득력이 있다”는 게 검찰의 판단이었다.
LA갈비 100세트 의혹은 육류업자 김모 씨 회사에서 일하던 N씨의 제보에서 시작됐다. 경찰 수사의견서에는 이렇게 적혀 있다.
“제보자 N은, (육류업자) 김OO가 2011년 2월 1일 오전 10시 50분경 (주)OO 사무실에서 '세무서 직원들이 올 것이니 갈비 100세트를 실어줘라'는 지시를 한 후, 10여분 가량 지났을 즈음 영등포세무서 세무공무원으로 추정되는 직원 4~5명이 산타페, 레조 등의 승용차량을 운전해 와 미국산 LA갈비 100세트를 실어 주었다며 구체적인 진술을 하고…”
- 경찰 수사의견서 (2013.8.7.)
그런데 이 사건에는 흥미로운 대목이 있다. 실제 N씨의 제보대로 ‘윤우진의 부하직원 4~5명이 차량 4대를 동원해 갈비세트를 가져갔다’는 건 검찰도 인정한다는 점이다. 여기서 의문이 하나 제기된다. ‘LA갈비 16세트를 실어 나르는데 4대의 차량과 4~5명의 국세청 직원이 필요했나’ 하는 점이다. 검찰의 불기소 결정문에는 이 단순한 의문에 대한 답이 들어 있지 않았다.
경찰 수사의견서에는 “LA갈비세트 수수 혐의를 감추기 위해 윤우진이 관련자를 상대로 허위진술을 강요했다”는 대목도 등장한다.
“윤우진과 (육류업자) 김OO는 자신들의 범죄사실이 명백히 드러나자 증거인멸을 목적으로 서울 영등포구 양평동 소재 OOO 식당에서 육류업자를 대동하여 영등포세무서 부하직원인 L씨를 만나 ‘2011년 구정 당시 갈비세트를 건네 받은 혐의로 조사를 받고 있는데 L 과장이 협조를 해주지 않아 사건이 꼬여가고 있다. 자네(L씨)가 이분(육류업자)에게 갈비세트 값을 건넨 것으로 하라’며 경찰에 허위 진술을 지시하고...”
- 경찰 수사의견서(2013.8.7)
심지어 육류업자 김모 씨조차 “윤우진이 L씨에게 허위진술을 부탁하는 것을 들었다”고 증언한 내용이 경찰 신문조서에 담겨 있었지만, 검찰은 이 증언 역시 외면하고 윤우진에 대해 ‘혐의 없음’ 처리했다.
한편, 이 문제의 갈비세트와 관련해 윤우진 전 서장은 지난해 12월 31일 뉴스타파와의 인터뷰에서 “갈비세트 16개를 언론사 기자들에게 뿌렸고 기자들 명단을 경찰에 제출한 바 있다”고 주장한 바 있다.

뉴스타파 보도 후 검찰 특수부 투입, 윤우진 최측근 구속

검찰의 무혐의 처분으로 끝났던 ‘윤우진 뇌물사건’은 현재 서울중앙지검 형사 13부가 재수사하고 있다. 2019년 7월 주광덕 전 자유한국당 의원의 고발, 지난해 10월 추미애 전 법무장관의 수사권 발동에 따른 조치다.
이와는 별도로 서울중앙지검 반부패·강력수사 1부는 윤 전 서장의 또 다른 범죄를 수사중이다. 지난 7~8월 뉴스타파가 인천의 사업가 Y씨의 증언을 토대로 보도한 내용이 단서가 됐다.
뉴스타파 보도 이후 서울중앙지검은 형사13부가 맡고 있던 Y씨 진정사건을 과거 특수1부에 해당하는 반부패·강력수사 1부에 재배당하고 본격적인 수사에 나섰다. 최근엔 윤 전 서장의 최측근 인사로 Y씨에게 정관계 로비자금 4억 3000만 원을 받아간 것으로 의심되는 인천지역 사업가 최모 씨를 변호사법 위반 혐의로 체포, 구속했다.
제작진
취재한상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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