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화] 감사원, 기부금 비리 공기업에 '주의' 통보...예산 사유화 확인

2022년 05월 13일 10시 00분

지난해 뉴스타파가 보도한 공기업 낙하산 인사들의 기부·후원금 부정 사용에 대한 감사원의 감사 결과가 나왔다.  
감사원은 5월 2일 기부·후원금 부정 집행이 확인된 한국농어촌공사, 한국가스공사 사장에게 각각 ‘주의’ 통보를 내렸다. 뉴스타파가 보도한지 1년, 감사원이 공익감사를 벌인지 두 달 만이다. 낙하산 인사들이 기부금을 사유화하고 부정 사용해 온 관행이 사실로 확인된 것이다.

감사원, 한국농어촌공사·한국가스공사 기부금 부정 집행 확인

지난해 뉴스타파는 ‘투명사회를 위한 정보공개센터’ 등 시민단체 3곳과 함께 공기업·공공기관의 기부·후원금 오·남용 실태를 연속 보도했다. 
한국농어촌공사의 경우, 낙하산 사장의 개인적인 취미 활동에 기부금 1,000만 원을 집행하고, 공사 임원이 대표를 맡은 단체에 행사 후원 등 명목으로 2,000만 원을 지급한 사실을 폭로했다. 또 한국가스공사가 교수 출신 낙하산 사장과 이해관계로 얽힌 학회와 학술 포럼에 총 1억 3,000만 원을 기부한 사실을 밝혀냈다. 공적 예산인 기부금을 공기업 사장이 사유화한 예산 오·남용 비리였다. 
이 같은 보도에도 공기업이 잘못을 인정하거나 제도 개선에 나서지 않자, 정보공개센터는 올해 1월 19일, 감사원에 공익감사를 청구했다. 두 달 뒤인 3월 14일 감사원은 공익감사에 착수했다. 당시 감사원은 “청구 대상(공기업)에 대한 감사 필요성이 인정돼 공익감사 청구 처리 규정에 따라 감사를 실시하기로 결정했다”고 밝혔다. 
약 두 달간의 감사원 감사가 진행됐고, 비리는 모두 사실로 확인됐다. 먼저 농어촌공사는 최규성 전 사장과 임원 관련 단체에 기부금 3천만 원을 집행했는데, “기부금 지원 여부와 지원 규모에 대한 사전 검토 없이 임의로 기부금을 지출한 것”으로 확인됐다.

한국농어촌공사, 낙하산 사장이 설립한 단체에 깜깜이·묻지 마 기부 

감사원이 공개한 감사 보고서에 따르면, 농어촌공사는 비상임이사인 성효용 씨가 대표로 있는 임의단체에 후원금 1천만 원을 조건 없이 집행했다. 담당 실무자가 사업 계획서도 검토하지 않은 채 후원 금액까지 정했다. 이른바 ‘묻지 마’식으로 진행된 ‘깜깜이 기부’였다.
이런 식으로 기부받은 단체도 기부금을 대표 취임 관련 행사 등 공익성이 현저하게 낮은 일에 사용했다. 공익성이 있거나 공사의 목적 사업과 연관이 있는 사업에 기부금을 쓰도록 한 「한국농어촌공사 예산 집행지침」을 어긴 것이다.
또 농어촌공사는 기부금 집행 이후 증빙 서류를 제출받지 않아 기부금이 어디에 어떻게 쓰였는지 사실 확인조차 하지 않은 것으로 드러났다. 전임 낙하산 사장인 최규성 전 의원이 설립한 바둑 동호회에 기부금을 주면서도, 이 동호회가 법령이 정한 기부금 지원 대상에 해당하는지 검토조차 하지 않았다. 그뿐만 아니라, 기부금을 실제 썼다는 정산서도 받지 않았다. 전 사장이 설립한 단체에 대한 ‘묻지 마’ 기부였다. 감사원은 “일부 기부금 집행에 공정성과 투명성을 상실하였다”고 지적했다. 
감사원이 5월 9일 정보공개센터로 발송한 감사실시 결과 통지서

한국가스공사, 낙하산 사장 지시로 기부금 집행 절차 무력화

한국가스공사의 기부금 집행에서도 같은 비리가 드러났다. 가스공사는 이승훈 전 사장과 사적으로 연관된 단체에 기부금을 집행하면서 기부금 지원 여부와 지원 규모에 대한 심의 없이 1억 3천만 원을 지급한 것으로 드러났다. 당시 가스공사 사장인 이승훈 서울대 명예교수는 가스공사가 3천만 원을 후원한 학술대회에서 기조연설을 맡았다. 
특히 가스공사는 기부금 집행의 적절성을 심의하는 사회공헌사업심의위원회가 있었는데도 심의 없이 기부금을 지출한 것으로 확인됐다. 관련 심의위원회 「운영지침」에 따르면, 한국가스공사의 기부금 집행 사업은 그 내용과 지원 규모, 방법 등을 사회공헌사업심의위원회를 통해 사전 심의하도록 돼 있다. 하지만 낙하산 사장의 지시로 이런 절차는 ‘무력화’됐다.
이승훈 교수는 5월 10일, 뉴스타파와 통화에서 “내가 공익성이 없는 곳에 기부금을 주라고 한 것은 아니지 않느냐”며 “지금도 당시 집행에 아무 문제가 없다고 생각한다”고 주장했다.

감사원, 한국중부발전은 ‘종결’ 처분… 이해충돌은 판단 안 해 

감사원으로부터 ‘주의’를 받은 이들 공기업과 달리, 감사원의 처분 대상에 빠진 공기업도 있다. 한국중부발전과 한국마사회다. 
정보공개센터는 지난 1월, 기부금 오·남용 비리가 드러난 공기업 4곳에 대해 공익 감사를 청구했는데, 농어촌공사와 가스공사 외에 중부발전과 마사회도 포함돼 있었다.
뉴스타파 취재 결과, 한국중부발전은 낙하산 상임감사가 졸업한 사립고등학교 동창회에 2백만 원을 기부한 것으로 확인됐다. 또 한국마사회는 일자리 창출 명목으로 1억 원의 기부금을 개인사업자에게 부실 집행한 것으로 밝혀졌다. 
그러나 감사원은 두 공기업에 대해선 징계 등 별도 처분 없이 감사를 ‘종결’했다. 그렇다고 두 공기업의 기부금 사용에 아무 문제가 없다는 뜻은 아니다.
두 기관의 기부금 비리에 대해 감사원이 종결 처리한 이유는 두 가지다. 하나는 공기업 임원이 직무를 수행할 때, 그가 사적으로 얽힌 이해관계 단체와 부딪칠 수 있는 ‘이해충돌’의 문제에 관해 판단하지 않았고, 또 하나는 감사원 감사 개시 전에 공기업 스스로 자체 감사를 진행했기 때문이다.
앞에서 밝힌 것처럼 중부발전은 상임감사가 졸업한 사립학교에 장학금 명목으로 기부금을 줬다. 중부발전이 이 학교에 기부금을 준 것은 이때가 처음이자 마지막이었다. 공기업 예산을 임원이 사유화한 것으로 이해충돌 가능성이 있는 기부금 집행이었다.
그러나 감사원의 판단은 달랐다. 감사원은 기부금 집행이 외부 추천을 거쳐 장학금으로 지급됐고, 다른 공립학교도 같은 절차를 거쳐 기부금을 받았기 때문에 위법·부당한 사안은 아니라고 판단했다. 기부금 집행 과정 등 절차적 정당성만 따졌을 뿐, 기부금 집행의 사유화는 물론, 공직자 이해충돌 문제는 판단하지 않은 것이다.
실제 뉴스타파 취재 결과, 전국의 수많은 사립학교 중 2018년 당시 중부발전이 장학금을 준 유일한 ‘사립학교’가 바로 중부발전 상임감사의 ‘모교’였다. 또 이러한 기부를 결정한 사람도 다름 아닌 ‘상임감사’였다. 이런 식의 기부금 집행은 공직자의 공정한 직무 수행에 지장을 주는 ‘이해충돌’의 대표적인 사례다.
그러나 감사원은 이해 충돌 위반 사안에 대해 적극적인 판단을 내리지 않았다. 이번 공익감사를 청구한 김예찬 정보공개센터 활동가는 “이해충돌 소지를 제대로 다루지 않아 아쉬움이 있다”고 말했다.
또 한국마사회의 경우, 위법·부당한 기부금 집행이 확인됐지만, 감사원은 「공익감사 처리규정」에 따라,  공익 감사를 종결 저리했다. 이렇게 된 이유는 마사회가 공익 감사를 개시하기 전에 스스로 내부 감사를 실시해서다. 「공익감사 처리규정」에는 동일한 부패행위에 대해 타 기관의 감사·수사 또는 조사가 끝난 경우, 공익감사를 종결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한국마사회, 자체 감사로 관리규정 보완…무더기 ‘통보’ 처분

지난 1월 21일, 마사회는 자체 조사를 통해 기부금 집행 및 관리의 문제를 확인하고, 알리오(공공기관 경영정보 시스템)에 감사 결과를 공개했다. 
마사회가 공개한 ‘2021년 중규모 특정감사 결과’에 따르면, 마사회 감사실은 기부금 부당 집행을 확인하고 담당 부서에 ‘통보’ 처분을 내렸다. 통보 내용은 현행 「기부금 관리규정」을 보완·개선하라는 권고였다. 뉴스타파가 보도한 마사회의 기부금 집행 비위가 사실로 확인된 것이다.
기부금 지원단체를 대상으로 기부금의 적정한 집행 여부를 점검하기 위해 현지 조사를 할 수 있는 방안을 검토하시고, 기부금 신청 사업에 대하어 구체적인 선정 기준을 마련하는 등 ‘기부금 관리규정’을 보완하시기 바람.

2021년 마사회 중규모 특정감사 결과(2022.1.21)

마사회, 함께하는나라사랑 보훈처 기부금 집행 문제 확인

마사회가 자체 내부 감사한 내용 중엔 함께하는나라사랑에 집행된 기부금 처리의 문제도 포함돼 있었다. 지난해 뉴스타파는 함께하는나라사랑이 국가보훈처를 통해 공기업들로부터 기부금을 강제 모금하는 등 각종 비리에 가담한 사실을 확인해 보도했다. 함께하는나라사랑은 국가보훈처가 설립을 주도한 전관 단체다. 마사회는 함께하는나라사랑에 기부금을 지출한 공기업 중 하나였다.
마사회는 당시 함께하는나라사랑에 기부금을 주는 과정에 관리 미흡 등 문제가 있었음을 확인했다. 마사회 감사실은 본사 1개 부서와 전국 6개 지사에 대해 관련 기부금 업무를 철저히 하도록 ‘통보’ 처분을 내렸다.  
기부금 지원단체가 기부금 집행 결과를 보고하는 경우, 집행 결과보고서뿐만 아니라 수령자 서명, 금융거래 내역 등 관련 증빙자료를 누락하는 일이 없도록 관련 업무를 철저히 하시기 바람.

2021년 마사회 중규모 특정감사 결과(2022.1.21)

“‘기부금 비리’ 이해충돌방지법 시행되면 형사 처벌” 

공공기관·공기업의 기부금 비리는 일부 기관의 일탈이 아닌 구조적 폐단이었음이 뉴스타파의 보도로 여실히 확인됐다. 취약계층이나 공공성을 지닌 사업에 쓰여야 할 기부 예산이 낙하산 임원들에 의해 오남용된 사례는 뉴스타파가 확인한 것만 14건이다. 금액으론 28억 5천여만 원에 이른다. 
부정 집행한 금액보다 더 문제인 것은 ‘기부금 사유화’와 예산 오·남용이 공기업 ‘낙하산’들에 의해 관행처럼 이뤄졌다는 것이다. 역대 어느 정권도 낙하산의 폐해를 근절하지 못했다. 뉴스타파가 시민단체 3곳과 함께 공공기관 낙하산들의 예산 비리에 천착해 온 이유다.
이번 감사원의 첫 공익 감사로 공기업 기부금 비리가 일부 확인됐지만, 여전히 미흡하다. 앞서 지적한 대로 감사원은 공기업 기부금 비리를 감사하면서 사전 심의나 사후 확인 등 절차를 제대로 지켰는지에 감사의 초점을 맞췄다. 이런 접근 방식으론 공기업 기부금 비리의 핵심인 낙하산 사장들의 예산 사유화를 막을 수 없다. 공기업 사장들이 예산을 제 맘대로 쓰는 관행을 뿌리 뽑아야 한다. 
지난해 제정된 ‘이해충돌방지법’이 5월 19일부터 시행된다. 공기업 기부금의 사적 사용을 제한하고 처벌할 수 있는 법률적 근거가 생겼다. 김예찬 활동가는 “이번 감사로 공공기관의 부적정한 기부금 집행 관행을 확인할 수 있었지만, (법령 미비로) 감사가 내부 심의 또는 사후 증빙 절차를 제대로 지켰는지 확인하는데 그친 부분이 있다”며 “이해충돌방지법이 시행되면, 형사 처벌을 받을 수 있는 사안”이라고 말했다.
뉴스타파는 공공기관 낙하산 사장들이 기부 예산을 제대로 썼는지, 이 과정에서 예산을 사유화하지 않았는지 확인하기 위해 관련 예산의 정보 공개를 거부한 공공기관을 상대로 “기부금 내역을 공개하라”는 행정소송을 진행 중이다. 기부금 집행 세부 내역의 정보공개를 거부한 인천국제공항공사(인국공)가 대표적이다.

인국공, “기부처 공개할 경우 경영·영업활동에 상당한 지장” 

뉴스타파와 시민단체는 공공기관·공기업을 상대로 기부금 예산을 검증하고 있는데, 지금까지 100곳이 넘는 기관이 기부처(개인 이름은 제외) 또는 기부가 이뤄진 사업 이름을 공개했다. 그러나 인국공은 관련 예산 정보의 공개를 거부했다. 인국공이 5년간(2015~2019년) 쓴 기부 예산은 694억 원이다.
인국공과의 정보공개 행정소송 첫 재판이 오늘(5월 13일) 열린다. 인국공은 법원에 준비서면을 제출하면서 “기부·후원처 명칭을 제한 없이 공개할 경우 뉴스타파 보도와 같은 무리한 의혹 보도나 근거 없는 민원 제기에 일일이 대응하여야 하는 불필요하고 과중한 부담이 발생해 경영·영업 활동에 상당한 지장이 생길 것”이라고 주장했다.  
제작진
취재강현석
CG이도현
웹출판허현재
공동기획세금도둑잡아라. 투명사회를위한정보공개센터, 함께하는시민행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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