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태원 참사 미규명 진실] ⑨ 피해자 모임, 정부는 방치했나 방해했나

Sep. 25, 2024, 11:22 AM.

Sep. 25, 2024, 11:22 AM.

2022년 10월 29일 밤 10시 15분, 서울 이태원에서 압사 참사가 발생했다. 시민 158명이 거리 위에서 사망하고, 334명이 부상 당했다. 참사 트라우마로 10대 생존자 1명이 목숨을 끊었다. 그로부터 약 1년 10개월이 흘렀지만, 아직 이태원 참사가 '왜' 발생했는지는 제대로 밝혀지지 않았다.
현재 이태원 참사의 원인은 파편적으로만 드러났다. 참사 직후 한 달여 간 진행된 국회 국정조사는 참사의 일부분만 다뤘다. 일부 공무원에 대한 수사가 있었고 재판에 넘겼으나, 책임자들의 '개인적·형사적 책임'을 입증하는 데 집중하고 있다. 참사를 일으킨 구조적 요인을 규명하기에는 역부족이다. 
지난 5월 2일, '10·29 이태원참사 피해자 권리보장과 진상규명 및 재발 방지를 위한 특별법'(이태원특별법)이 통과됐다. 이 법에 따라 곧 독립적 조사기구인 '특별조사위원회(특조위)'가 구성된다. 특조위는 이태원 참사와 관련된 각 기관의 관행과 책임, 구조적 한계, 시스템과 법령의 부재 등을 총체적으로 조사한다. 참사가 발생한 지 551일 만에야 이태원 참사 전반에 대한 진상규명 기회가 열린 것이다. 
그렇다면 특조위가 반드시 조사해야 할 진상규명 과제들은 무엇일까. 뉴스타파와 독립언론 '코트워치'는 이태원 참사와 관련된 국회 국정조사 기록과 책임자들의 형사재판 기록, 별도 입수한 정부 문건 등을 분석해 특조위에서 반드시 다뤄야 할 진상규명 과제들을 추출했다. 그 과제들을 연재기사로 제시한다. <편집자 주>
참사 피해자들(유가족·생존자 등)의 회복을 위해 '피해자 간 연대'는 필수적이다. 하지만 정부는 '이태원 참사' 이후 피해자들이 모일 수 있도록 전혀 노력하지 않았다. 피해자들이 먼저 만남을 주선해달라고 요청해도 들어주지 않았다. 어떤 이유에서였을까.  
'참사 이후'도 진상규명의 대상이다. 참사가 발생한 다음, 우리 사회와 정부가 어떻게 대응했는지, 피해자들을 위한 조치에 미흡한 점은 없었는지도 살펴야 한다. 그래야 비슷한 과오를 반복하지 않을 수 있다. 
이에 대한 조사는 이뤄진 적이 없다. 정부 내부에서 피해자 간 만남 기회 제공, 연락처 공유, 모임 결성 지원 등과 관련해 어떤 논의가 있었는지도 알려진 바가 없다. 현재 진행 중인 이태원 참사 책임자 재판에는 정부의 피해자 지원에 관한 내용은 포함되지 않았다. 이태원 참사 특별조사위원회의 조사가 필요한 이유다.

꼭 필요했지만, 만날 수 없던 이태원 참사 피해자들 

재난·참사 피해자에게 '같은 경험을 한 당사자'를 만나는 일은 매우 중요하다. '똑같은 참사를 경험한 사람'만이 줄 수 있는 위로와 애도가 있다는 게 전문가들의 의견이다. 특히 참사 이후 빈발하던 '2차 가해'를 견뎌내기 위해선 피해자들 간 만남을 통한 상호 '지지 집단' 형성이 필수적이다. 
유가족들은 경험 있는 전문가에게도 하지 못했던 얘기를 비슷한 고통을 겪은 유가족이나 생존자한테는 훨씬 쉽게 털어놓는다. 영국의 '힐즈버러 압사 참사' 이후 만들어진 단체인 '디재스터 액션'(Disaster Action)도 유가족이 모인다는 게 참사 시기에 제일 중요하다고 얘기한다. 피해자들이 모일 기회와 공간을 마련해주는 것은 추모·애도의 측면에서 굉장히 오래된, 당연한 과정이다.

백종우 / 경희대학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
서울시의 '이태원 사고 부상자 현장지원 참고자료'(2022년 11월 배포)에는 유가족 대상 심리지원 방법의 하나로 '소집단으로 모여 슬픔을 나누고 대처하게 한다'고 나온다. 보건복지부가 매년 발간하는 '재난 정신건강 위기대응 표준 매뉴얼'에 따르더라도 심리적 응급처치의 핵심 요소 중 하나는 '다른 재난 경험자 혹은 지원단체 연결'이다.
치료에 가장 도움이 됐던 건 제 생각에는 유가족들을 만난 게 가장 도움이 많이 되지 않았을까 해요. 만나기 전에는 정부에서 하는 말들이 답답하고 그걸 지인이나 친구한테 얘기할 수도 없고, 답답한 걸 그냥 혼자만 갖고 있었죠. 또 가족들한테는 걱정시킬까 봐 쉽게 얘기할 수 없었고요. 그런데 유가족들 만나고 특히 (희생자의) 형제자매들을 만나면 진짜 속에 있는 얘기가 잘 나오고요. 그렇게 얘기하다 보니까 정말 스스로 깨달았어요. '이런 사회적 재난이나 참사가 있을 때 정신과 치료나 심리 상담보다 유가족들끼리 만나는 게 진짜 중요하구나'라는 걸 느낀 것 같아요. 

이태원 참사 유가족 겸 생존자 / 10·29 이태원 참사 인권실태 조사단 보고서 (2023.5.15)
이태원 참사에는 한 가지 특수성이 있었다. 피해자, 즉 유가족과 생존자들이 자체적으로 만남을 꾀하기 매우 어려운 환경이었다는 것이다. '세월호 참사' 때는 경기도 안산시, 단원고등학교 등으로 피해자 다수가 이미 연결돼 있었다. '대구 지하철 참사', '오송 참사'도 대부분 희생자의 평소 생활권에서 참사가 발생한 경우다. 
이태원 참사는 달랐다. 희생자 중 이태원에서 거주하거나 직장을 두고 있던 사람은 드물었다. 2022년 10월 29일 핼러윈 축제를 맞아 '특별히' 이태원을 찾았을 뿐이었다. 이들을 한데 엮을 수 있는 생활권·학교·직장은 없었다. 
희생자 159명의 등록기준지(본적)는 서울특별시 66명, 경기도 40명, 인천광역시 5명, 대전광역시 5명, 광주광역시 2명, 울산광역시 2명, 전라남도 3명, 경상북도 1명 등이었다. 외국인도 26명이었다. 희생자의 등록기준지가 유가족 생활권이라고 가정한다면, 희생자 159명 중 93명의 유가족은 이태원이 있는 서울 이외의 지역에서 살고 있었다. 
참사 발생 직후 희생자들의 시신은 전국으로 흩어졌다. 다음날인 10월 30일 오전까지 서울·수도권의 각 병원으로 이송이 완료됐다. 이에 따라 유가족들도 대부분 10월 30일에는 희생자의 시신이 안치된 병원에 도착했고, 시신을 확인한 뒤 바로 연고지에 있는 장례식장으로 이동했다. 이런 '분산 과정'은 참사가 발생하고 하루, 이틀 안에 마무리됐다. 이런 상황에서 유가족들이 서로의 연락처를 스스로 파악하는 건 사실상 불가능한 일이었다. 유가족들이 서로 모이기 위해선 정부의 도움이 필수적이었다.
2022년 10월 29일 발생한 '이태원 참사'의 피해자들은 한 지역으로 엮일 수 없었다. 거주 지역과 직장, 고향 등이 다 달랐다. 핼러윈 축제를 맞아 참사 당일 이태원에 들렀을 뿐이었다. 희생자들의 경우, 참사 발생 직후 전국 장례식장으로 흩어졌다. 

정부, '피해자 간 만남 기회' 제공한 적 없다

하지만 정부는 이러한 이태원 참사의 특수성을 무시했다. 유가족과 생존자들이 모일 수 있도록 기회를 제공한 적은 한 번도 없었고, 이들의 의견을 들으려는 노력도 하지 않았다.
대통령실과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이하 중대본)는 참사 직후 유가족과의 소통 대신 일방적 발표로 일관했다. 유가족 의견 청취 없이 정부 주도 합동분향소를 설치했고, 일주일의 국가애도기간을 선포했다. 정부가 일방적으로 꾸린 합동분향소에는 희생자의 위패도, 영정사진도 없었다. 유가족들을 상대로 한 설명회나 간담회 등은 한 번도 열지 않았다. 유가족에 대한 지원책을 발표한 것도 모두 언론 브리핑 자리였다. 중대본은 유가족과 아무런 소통도 하지 않은 채 2022년 12월 2일 해산했다. 
보건복지부가 피해자 대상 심리상담, 치료비 지원 등에 나섰지만 '개별 피해자 단위 지원'이 전부였다. 이태원 참사 피해자 심리지원을 전담한 국가트라우마센터와 지역별 정신건강복지센터는 1대1 상담만 진행했고, 피해자들이 서로 만날 수 있는 집단 상담 등의 프로그램은 추진하지 않은 것으로 확인됐다. 
반면 '세월호 참사' 때는 정부가 집단 상담과 치료를 지원했다. 참사 직후 보건복지부와 경기도가 절반씩 예산을 투입해 설립한 '안산 온마음센터'는 약 10년간 피해자들이 모여 함께 할 수 있는 프로그램을 제공해 왔다. 연극·공예·합창단 등 활동을 통해 유가족들이 함께 참사의 고통을 해소할 수 있게 했고, 다른 동아리 활동도 지원했다. 
결국 이태원 참사 유가족들은 스스로 수소문해 유가족 모임을 결성해야 했다. 정부는 뒤늦게 유가족 모임을 지원하겠다고 밝혔다. '이태원 참사 유가족협의회'가 꾸려지던 무렵인 2022년 11월 말이 돼서야 행안부는 유가족 모임을 지원한다며 '이태원 참사 지원단'(이하 행안부 지원단)을 설치했다. 행안부 지원단은 '유가족협의회 설립 지원', '추가 지원방안 검토' 등의 목표를 내걸었다. 하지만 놀랍게도, 실제 모임 결성에는 아무런 도움을 주지는 않았다. 
이정민 유가족협의회 운영위원장(희생자 고 이주영 씨 아버지)은 "행안부 지원단 측에 유가족 연락처를 알려달라고 했지만 계속 거부당했고, 아직 가입하지 않은 유가족들에게 유가족협의회에 대해 안내해달라고 해도 해주지 않았다"고 말했다. 
행안부 지원단은 생존자들에게는 더 무관심했다. 생존자들은 다른 생존자와 접촉할 수 있는 경로가 아예 없었다. 유가족 만남의 거점이 됐다는 장례식장·납골당·분향소 등도 생존자들과는 관계가 없었다. 2022년 12월 10일 유가족협의회를 출범시킨 유가족들과 달리 생존자들은 아무런 단체도 구성하지 못하고 있었다. 하지만 생존자 모임 지원 필요성에 대해 당시 행안부 지원단 측은 '생존자는 우리 소관 사항이 아니다'는 입장이었다. 
정부는 '이태원 참사' 이후 국가애도기간을 선포하고, 전국에 합동 분향소를 설치했을 뿐 피해자들이 모일 수 있는 기회는 한 번도 제공하지 않았다.
지방자치단체도 다르지 않았다. 각 지자체는 희생자별로 전담 공무원을 배치해 지원했다. 공무원들은 주기적으로 피해자와 연락하며 지원 사항 등을 안내하고, 애로사항을 청취했다. 그러나 공무원과 피해자만 서로 1대1로 연락했을 뿐이다. 역시 지자체 주도로 지역 단위 피해자 모임을 결성한 적은 없었다. 
취재진이 그동안 접촉한 유가족·생존자 약 30명 중 지자체로부터 '다른 피해자와 만남 의향' 등을 질문받은 경우는 없었다. 참사 후 피해 회복을 위한 기초적인 조치를 위한 사전 조사조차 이뤄지지 않은 것이다. 지난해 초 서울시 측은 뉴스타파 취재에 "(피해자) 집단 프로그램을 검토해 보겠다"는 입장을 밝혔지만, 바뀌는 건 없었다. 이처럼 '피해자를 흩어놓는' 정부 기조는 이태원 참사 이후 현재(2024년 6월 기준)까지 1년 반 넘게 변함없이 유지되고 있다. 

참사 직후, 정부는 '피해자 정보' 확보한 상태였다

참사 이후 국회에 나온 이상민 행안부 장관은 '왜 유가족들을 못 모이게 했느냐'는 질문에 '행안부는 유가족 명단이 없다'고 주장했다. 유가족 명단이 없었을 뿐, 고의로 모임 결성을 방치한 건 아니라는 뜻이었다. 
이상민 행정안전부 장관 : (유족) 명단을 서울시에서 갖고 있었는데, 개인정보 보호 때문에 서울시에서 넘겨주지 않는다고 실무자들이 여러 차례 답변했습니다.

더불어민주당 권칠승 의원 : 서울시하고 협조를 하든지 방법을 찾으셨어야 되는 것 아닙니까.

이상민 행정안전부 장관 : (서울시가) 명단을 안 주겠다고 하는데 저희가 어떻게 강제로 뺏어 올 수도 없지 않습니까.

2022.12.27. 이태원 참사 국회 국정조사 1차 기관보고
하지만 이 장관의 답변은 거짓말이었다. 참사 직후 정부는 이태원 참사 피해자들의 정보를 이미 파악하고 있었다. 피해자들을 모이게 할 능력도 있었다. 이를 입증할 자료는 차고 넘친다.
희생자들의 신원을 가장 먼저 파악한 것은 경찰이었다. 이후 경찰은 유가족 연락처도 파악했고, 직접 연락해 희생자의 사망 사실을 알렸다. 윤희근 경찰청장은 국회 국정조사에서 "경찰은 중대본(이태원 참사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에 유족 연락처를 넘겼다"고 말했다. 사고 수습 및 피해자 지원의 총 지휘기관이 중대본이었기 때문에 규정상으로도 당연한 조치였다. 
이태원 참사 관할 지자체였던 서울시 측도 "행안부에 유가족 연락처가 담긴 문서를 줬다"고 국정조사에서 발언했다. 
유가족 연락처를 저희들이, 사망자 현황 자료를 다 정리를 해서 행안부에다가 자료를 공유했습니다. 저희들이 정확하게 (지난해) 10월 31일부터 세 번에 걸쳐 자료를 제공했습니다. 

김상한 당시 서울시 복지정책실장 / 2022.12.29. 이태원 참사 국회 국정조사 2차 기관보고
서울시 주장은 사실이었다. 취재진은 실제 서울시가 행안부에 '사망자 현황 자료'를 3차례 보낸 이메일 전송 기록을 확보했다. 참사 이틀 뒤인 10월 31일, 11월 1일, 11월 2일 보낸 것이었다. 
서울시가 행안부에 10월 31일 전송한 '사망자 현황 자료'의 양식 문서도 확보했다.(개인정보보호법에 따라 내용이 삭제된 양식만 공개됐다) 양식에는 ▲희생자의 이름 ▲거주 광역자치단체 ▲주소 ▲성별 ▲생년월일 ▲국적 ▲안치된 병원 ▲장례식장 ▲유가족 연락 여부 ▲유가족 연락처(이름·가족관계 포함)를 적는 공간이 있었다. 
이 문서를 직접 만든 서울시 안전총괄과 측은 "유가족 연락처를 적는 공간에 성명·연락처가 모두 있는 것도 있지만, 가족관계와 연락처만 있는 경우, 이름 없이 연락처만 있는 경우도 있었다"고 설명했다. 정리하면 일부 유가족의 이름이 빠져 있는 경우는 있었지만, '희생자별 유가족 연락처'는 빠짐없이 기재됐다는 얘기다. 
2022년 12월 27일 '이태원 참사' 국회 국정조사에 나온 이상민 행정안전부 장관의 모습. 이 자리에서 이 장관은 '서울시로부터 유족 명단을 받지 못 했다'고 주장했지만, 거짓이었다.
또 취재진이 확보한 '대전 지역 이태원 사고(사망, 부상) 현황' 자료에는 피해자 이름과 거주지, 유가족 연락처 등이 상세히 기재돼 있었다. 이 자료는 중대본이 넘겨준 자료를 대전시가 가공해 10월 31일 공무원들에게 배포한 것이다. 당시 대전시 측은 "유가족 이름과 관계·연락처는 모두 적혀 있었고, 여기에 담당 공무원 정보만 추가했다"고 설명했다. 중대본이 참사 이틀 뒤인 10월 31일 전에 이미 지역별 유가족 연락처를 파악하고 있었다는 뜻이다. 
대전시청이 갖고 있던 대전 지역 내 '이태원 참사' 사상자 명단. 참사 이틀 뒤인 2022년 10월 31일 오후 2시 작성된 이 문서에는 유가족 연락처가 모두 기재돼 있었다.
이외에 취재 과정에서 확보한 다른 여러 자료와 증언을 종합하면, 정부는 늦어도 10월 31일에는 전국의 유가족·생존자 연락처를 파악했다. 이에 따라 각 지자체는 피해자별로 전담 공무원을 배치했다. 
뉴스타파가 기본소득당 용혜인 의원실을 통해 확보한 전국 지자체의 '피해자별 1대1 공무원 매칭' 자료에 따르면, 각 지자체는 늦어도 10월 31일, 11월 1일에는 지역 내 생존자·유가족 현황을 파악한 뒤 전담 공무원을 배치했다. 전담 공무원들은 피해자에게 주기적으로 연락했다. 연락은 피해자의 개인 휴대전화로 문자를 보내거나 통화하는 방식으로 이뤄졌다. 중앙정부와 지자체 모두 의지만 있었다면, 피해자들 간의 만남을 주선할 수 있었다는 뜻이다. (참고 기사 : '유족 명단 없었다' 이상민 장관의 거짓말 증거 입수... 서울시 내부 자료)

피해자 '연락처 공유' 불가능하지 않았다

유가족들은 참사 직후부터 '다른 피해자들을 만날 수 있게 해달라'고 여러 차례 정부에 요청했다. 각 지자체 전담 공무원들에게 또는 11월 4일 중대본에 설치된 '이태원 사고 원스톱 통합지원센터'에 연락해 부탁했다. 정부가 유가족 만남을 주선해 줄 것이라는 기대로 정부 연락을 기다렸던 유가족도 있었다. 
저는 일단 유가족 모임, 유가족한테 연락해서 유가족이 모일 수 있는 장소를 한번 마련하겠다는 그런 전화를 기다리고 있었어요. (중략) 그러니까 그게 (유가족을 만나는 일이) 진짜 위안이 돼요. 내 딸은 이런 애였는데 또 다른 분 딸들은 뭐 이랬다… 그런 부분에서 서로 공감이 이루어지니까. 다른 데서는 이런 공감을 할 수가 없어요. (중략) 일단 1순위로 유가족들 모임 장소를 마련해 준다든가, 연락처를 준다든가, 이런 부분이 선행돼야 하는데... 

이태원 참사 유가족 / 10·29 이태원 참사 인권실태 조사단 보고서 (2023.5.15)
하지만 정부는 아무런 연락도 없었다. 오히려 '다른 피해자의 연락처를 알려줄 수 있겠느냐'는 피해자들의 요청을 거부했다. 개인정보보호법 위반 소지가 있다는 이유였다. 서울시는 '연락처를 알려주지 말라'는 내부 지침도 배포했다. 용혜인 의원실을 통해 확보한 서울시의 '이태원 사고 부상자 현장지원 참고자료'에는 "연락처는 개인정보 사항이라 공유 불가능함을 (피해자들에게) 안내 부탁드립니다"라고 적혀 있다. 
2022년 11월 서울시청이 내부 공유한 '이태원 사고 부상자 현장지원 참고자료.' '이태원 참사' 피해자의 연락처는 같은 피해자끼리도 공유하지 말라고 공지했다.
실제로 동의 없이 타인에게 연락처를 알려주는 건 개인정보보호법 위반 소지가 있다. 다만 우회 방법은 얼마든지 있다. 지자체별 전담 공무원이 개별 피해자에게 연락해 '개인정보 제공 동의서' 등을 받은 뒤, 동의한 피해자에 한해 연락처를 공유하는 것이다. 
또 정부 및 지자체 주도로 모임을 기획·공지하고, 모임 장소에 나온 피해자들이 서로 연락처를 공유하게 할 수도 있었다. 문제는 이런 노력도 전혀 하지 않고, '연락처 공유는 안 된다'는 말로만 일관했다는 점이다. 
뉴스타파가 확인한 결과, 정부가 '연락처 공유에 대한 법적 검토'를 한 것은 참사 발생 1달이 넘어서였다. 행안부 지원단은 12월 2일 개인정보보호위원회에 공문을 보내 "유가족의 성명 및 연락처를 다른 유가족에게 공유하는 게 법적으로 가능한지" 유권해석을 요청했다. 또 "사망자의 성명, 유가족의 성명 및 연락처를 공개·공유하는 경우 어떤 절차를 거쳐야 하는지와 그 법적 근거"를 질문했다. 유가족들이 첫 공식 기자회견(11월 22일)을 하고, '연락처를 알려달라', '만나게 해달라'는 호소가 언론을 통해 주요 뉴스로 다뤄진 뒤 열흘이 지나서야 뒤늦게 행동에 나선 것이다. 
1주일 뒤인 12월 7일경 개인정보위는 행안부에 답변 공문을 보냈다. 공문에는 "이태원 참사 사망자와 유가족의 성명·연락처를 상호 간에 공유케 하는 것은 모두 개인정보의 제3자 제공에 해당한다. 정보 주체의 동의를 받은 경우 제3자 제공이 허용된다"고 적혔다. 
하지만 행안부 지원단은 이후에도 유가족들에게 연락해 '정보 제공 동의'를 받은 적이 없다. 이에 대해 지원단 측은 "당시 개인정보위 유권해석을 바탕으로 유가족들에게 정보 제공 동의를 받기 위해 연락해도 될지 유가족협의회에 문의했지만, 답변이 없었다. 그래서 하지 않은 걸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행안부 차원에서 각 유가족에게 정보 제공 동의를 구하는 노력을 할 수도 있는데, '유가족협의회' 답변이 없었다는 이유로 결국 아무것도 하지 않은 것이다. 
취재진은 재차 행안부 지원단에 연락해 '유가족협의회의 답변을 듣지 못해 피해자 간 연락처 공유를 하지 않은 게 맞는지, 그게 사실이라 해도 개별 유가족에게 연락해 정보 제공 동의를 받는 등 다른 방법도 있었던 것은 아닌지' 물었다. 행안부 지원단은 아무 답변도 하지 않았다.  

피해자가 '알아서' 모여야 했다

결국 유가족들은 정부의 방치 속에서 '알아서' 모여야 했다. 장례식장·납골당에서 우연히 다른 유가족을 만나면 연락처를 물었고, 자신을 인터뷰한 기자에게 "다른 유가족을 만나면 내 연락처를 넘겨달라"고 부탁하기도 했다. 전국에 설치된 정부 합동분향소를 찾아 하염없이 다른 유가족이 오기를 기다렸다는 유가족도 있었다. 
유가족들은 참사 직후부터 유가족이 모일 수 있도록 연락처를 공유해달라고 요구했다. 연락처 공개에 동의한 이들의 연락처라도 공유해달라는 요청에도 정부는 응답하지 않았다. (중략) 유가족들은 답답함에 직접 납골당을 찾아다니거나 주변의 장례식장에 연락처를 남기는 등 다른 유가족에게 가닿고 연결되기 위해서 노력해야 했다.

이태원 참사 유가족 / 10·29 이태원 참사 인권실태 조사단 보고서 (2023.5.15)
유가족들은 참사 후 한 달 넘게 '다른 유가족 찾기' 노력을 지속한 끝에 12월 10일 '이태원 참사 유가족협의회'를 출범시켰다. 
유족분들 연락처를 확보하려고 여기저기 미친 듯이 돌아다녔습니다. 행안부와 서울시에 우리 유가족들이 서로 위로하고, 극단적인 선택을 하지 않게 할 수 있는 방법은 다른 유족분들을 만나서 대화하고 서로 울고 껴안고… 그렇게 해야만 트라우마 치료할 수 있다고 제가 말씀드렸습니다. 그런데 '정신과 치료받아라', '정신과 약 먹어라', '상담받아라'... 아무 소용 없었습니다. 서울시, 행안부, 여당(국민의힘)에 계속 말씀드렸고 매일 사정하다시피 했습니다. 연락처 좀 주십시오. 지금도 연락처를 주지 않고 있습니다. 행안부는 저희에게 의견을 물어보시지도 않고 중대본을 해체했습니다.

이종철 씨 / 이태원 참사 희생자 고 이지한 씨 아버지 (2022.12.10. 유가족협의회 출범 기자회견)
'이태원 참사' 유가족들은 정부의 방치 속에서 '알아서' 서로 연락했고, 2022년 12월 10일 유가족협의회를 출범시켰다.
유가족협의회가 출범된 이후에도 정부는 다른 피해자와 유가족협의회를 연결해 주지 않았다. 아직 연락이 닿지 않은 피해자에게 유가족협의회 측 연락처를 알려주기는커녕, 유가족협의회와 연락하고 싶다는 피해자들의 요청을 무시하기도 했다. 이런 점 때문에 정부가 유가족의 만남을 방해한다는 의혹까지 나왔다. 
이태원 참사 시민대책위가 발간한 '10·29 이태원 참사 인권실태 조사단 보고서'에는 유가족 모임을 방치한 정부에 대한 증언이 여럿 등장한다.  
문자가 왔었어요, 용산구청에서. 혹시 유가족협의회를 만들면 거기에 참여하시겠냐. 그래서 당연히 참여하겠다고 내가 보냈죠. 그런데 연락이 없는 거야. 나를 인터뷰한 기자가 용산구청에 문의도 했다는데 이후에 연락 없이 끝이었죠. 

이태원 참사 유가족 / 10·29 이태원 참사 인권실태 조사단 보고서 (2023.5.15)
유가족협의회가 발족을 해서 '저기 들어가면 되겠다.' 그런데 어떻게 (연락처를) 찾을 줄 몰라가지고 아들 친구 변호사한테 연락해서 민변(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 모임)이 어디냐 해가지고 전화번호 간신히 받아가지고 연락해서 들어간 거예요. 

이태원 참사 유가족 / 10·29 이태원 참사 인권실태 조사단 보고서 (2023.5.15)
유가족들이 좀 모이면 정부에서 이렇게 해줄 줄 알았는데… 전화가 왔었어요, 행안부 원스톱 지원센터에서 유가족협의회 결성에 찬성하냐 반대하냐 이렇게요. 거기에 대부분 찬성했다고 말을 들었는데도 그 이후에 전혀 연락처를 서로 공유를 해준다든가 연결을 해준다든가 모임 장소를 제공해 준다든가 이런 게 전혀 없었거든요. 그래서 그냥 찾아다닐 수밖에 없는 거예요. 

이태원 참사 유가족 / 10·29 이태원 참사 인권실태 조사단 보고서 (2023.5.15)
취재진이 직접 만난 유가족과 생존자들은 모두 '알아서' 유가족협의회와 연결됐다고 말했다.
외국인 유가족도 마찬가지였다. 앞서 뉴스타파가 보도한 오스트리아·노르웨이·이란·프랑스인 유가족들 가운데서도 '유가족협의회와 접촉하는 과정에서 한국 정부의 조력을 받은 경험'을 말한 사람은 없었다. 이들은 유가족협의회 측이 올린 SNS 글을 보고 연락하거나, 유가족협의회를 지원한 민변 사무실 번호로 전화하거나, 아니면 외국인 희생자의 한국 지인을 통해 유가족협의회가 먼저 접촉한 경우였다.  
참사 후 1년 반 이상이 흐른 지금도 유가족협의회는 여전히 30여 명의 유가족과 접촉을 하지 못하고 있다. 이정민 유가족협의회 운영위원장(희생자 고 이주영 씨 아버지)은 "희생자 30여 명의 유가족에게는 연락을 해본 적이 없다. 전화번호도 모른다. 정부에서는 알려주지도 않않다. 정부가 대신 이들에게 연락하거나 문자를 보내 유가족협의회에 대해 설명하고, 가입 의사를 물어봐 줄 수도 있지만, 그렇게 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용혜인 의원실을 통해 확보한 자료에 따르면, 행안부 지원단은 지난해 3월 딱 한 차례 '유가족협의회 연락처 안내 문자'를 유가족들에게 발송했다. 

왜 못 모이게 했나… '의도'인가 '과실'인가

정부의 방치는 피해자들에게 어떤 영향을 줬을까.  
먼저 추정할 수 있는 것은 생존자들의 '지속된 고립'이다. 생존자들은 참사 현장에서 직접 희생자들의 사망 모습을 목격하고, 본인이 사망할 가능성에도 놓였던 이들이다. 참사 이후 찾아온 신체적·정신적 부상으로 트라우마와 우울감 등을 느끼거나 경제 활동, 일상생활에 어려움을 겪었을 확률이 높다. 한 생존자는 과거 취재진과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공황을 겪고 있어요. 지금은 그냥 답답한 걸 못 견디겠어요. (여성용) 속옷을 입을 때도 조금만 가슴에 닿는다 싶으면 너무 답답하더라고요. 버스를 타기 전에도 전광판에 '혼잡', '여유', '보통' 중 뭐가 뜨는지 눈여겨 보고요. 지하철도 그런데, 의사 선생님은 그럴 때 그냥 보내버리라고 하시더라고요. 거기에 탔다가 (공황) 증상이 더 심해질 수도 있잖아요. 약을 모르고 안 먹고 나갔다가 힘들었던 적도 많아요.

이태원 참사 생존자 김 모 씨 / 2023.9.3. 뉴스타파 인터뷰
앞서 설명했듯 생존자들은 유가족보다 서로를 더 만나기 어려운 조건이었다. 만날 거점도, 계기도 부족했다. 이런 문제는 이후에도 전혀 해소되지 않았고, 결국 지금까지도 생존자들은 매우 파편화돼 있는 상태다. SNS 등에 자신의 피해 경험 등을 올린 생존자들(10명 미만으로 추산) 중심으로 연락이 닿아 산발적인 소규모 모임이 있었던 게 거의 전부였다. 유가족협의회 차원에서 생존자와 접촉한 경우가 간혹 있지만, 소수였다. 행정안전부 공식 집계(지난해 7월 기준)에 따르면, 이태원 참사 생존자는 한국인 281명, 외국인 53명이다. 
'이태원 참사' 이후 사고 골목의 모습. 참사 이후 많은 시민은 피해자들을 위해 추모했지만, 정부는 피해자들이 가장 빨리 회복할 수 있는 방법인 '연대'에 무관심했다. 그 이유는 무엇일까.
정부는 왜 피해자 모임을 결성해달라는 요청을 무시했을까. 왜 피해자 간 서로 연락처를 공유할 수 있는 방법을 적극적으로 알아보지 않았을까. 피해자들이 전국에 흩어져 있는 이태원 참사의 특수성을 고려하긴 했을까. 피해자들이 만날 수 있는 모임·설명회·간담회 등을 고민했던 적은 있을까. 이상민 행안부 장관은 왜 끝까지 '유가족 명단'이 없다고 거짓말을 했을까.
현재로서는 이러한 의문점을 밝힐 방법이 없다. 지난해 1월 국회 국정조사특별위원회가 이상민 장관을 "유가족 명단이라고 볼 수 있는 일부 유가족의 성함· 연락처가 포함된 파일을 서울시로부터 받았음에도 받지 않았다고 증언했다"며 위증 혐의로 고발했지만, 같은 해 4월 경찰은 무혐의(불송치) 처분을 내렸다.
이태원 참사와 관련해 기소된 책임자들의 혐의 중에 '피해자들의 만남 기회 박탈'과 관련된 내용은 없다. 여전히 미궁 속에 있는 정부의 피해자 모임 방치 혹은 방해의 이유는 특조위에서 풀어야할 과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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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홍주환(뉴스타파) 최윤정(코트워치) 조원일
영상취재신영철
디자인이도현
웹출판허현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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